베스트 더보기
2026년 11월 6일 (금)
(녹)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자유게시판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스크랩 인쇄

강점수 [sooyaka] 쪽지 캡슐

2006-04-01 ㅣ No.97518

사순 제5주일     2006년 4월 2일 


요한 12, 20-33


오늘 복음에는 그리스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제자들에게 청하고 제자들은 그 말을 예수님에게 전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그들을 실제 만나셨는지 여부는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전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보전할 것이다.’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이런 말씀들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육칠십 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일종의 신앙 명상록입니다. 오늘 복음이 그리스 사람을 등장시켜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들을 전혀 모르는 비 유대인이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영광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인물이 영광스럽게 된다는 말은 사람들이 그 인물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그것을 큰 감동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영광스럽게 되셨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으로 그분의 중요성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그 사실에 공감하고 그것을 큰 감동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이 왜 그리 중요하고 감동스런 것인 지를 구약성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합니다. 그분의 죽음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은 것이며, 그 밀알이 제자들 안에 많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로 끝난 그분의 생애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삶을 배워 실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밀알이 썩어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또한 예수님의 입을 빌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도 말합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그분의 삶을 실천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들 안에 살아 계시기에, 이제부터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그분을 따르는 신앙인들의 삶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삶의 특징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예수님이 하셨던 실천을 하는 데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실패와 죽음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모두 그렇게 실패하고 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실패의 최후를 맞이하신 것은 그 시대 유대 사회의 실세였던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던 것과는 다른 하느님을 믿으셨고, 그 하느님의 일을 공공연히 실천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율사와 제관들은 율법의 문자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벌을 주시는 지엄하신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 하느님은 자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비하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믿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의 새를 보아라.’ ‘들의 백합꽃을 보아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새와 꽃도 돌보아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6,33). 자기 한 사람의 목숨만을 소중히 생각하지 말고, 자비하신 하느님에게 신뢰하면서 그 자비를 스스로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유대교 전통이었습니다. 단,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예수님은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계시며 돌보아주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생명을 이어받아 실천하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이를 고치셨습니다. 유대교가 말하듯이 병은 하느님이 주신 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교도인 백인대장의 종(루가 7,1-10)과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딸(마르 7,24,30)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은 병을 주어 사람을 벌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종교가 다르다고 외면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당신 안에 일하고 계셨습니다(요한 5,17 참조). 예수님에게는 당신 한 몸보다 가난한 사람, 우는 사람, 병든 사람,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 이런 불행한 생명들이 더 소중하였습니다. 그들도 하느님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유를 지녔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존중할 인연의 범위를 자기 스스로 자유롭게 택합니다. 자기 한 사람만을 소중히 생각하고 살 수 있습니다. 가족도 직장 동료도 모두 자기 한 사람을 위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 가족만을 소중히 생각하고 살 수도 있습니다. 자기 가족 외의 다른 모든 인연을 백안시하고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인연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하느님이 아끼시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끼며 사랑합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삶이었고, 예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혁명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양극화를 부르짖으면서 사람들 간의 대립과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셨습니다(요한 15,15 참조). 제자들이 떠나가서 각자 자유로이 열매 맺을 것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존경스런 호칭으로 혹은 독선적이고 위압적인 복장으로 제자들 위에 군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벗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일을 보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서 예수님과 같은 열매를 맺겠다고 약속한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신앙은 자기 한 사람이 잘 되고 존경과 찬양을 받는 길이 아닙니다. 신앙은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하게 처세하여 비굴하게 입신출세하고, 그것이 하느님이 주신 특권이라고 주장하는 속물근성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예수님을 따라 맺은 열매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실천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오게 하는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하느님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주변의 생명들을 소중히 여깁니다. 허약한 생명들, 외로운 생명들, 고통 받고 있는 생명들을 특별히 소중히 돌봅니다. 하느님은 그들도 행복할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버려진 이웃들을 백안시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 열매 맺는 신앙이 아닙니다. 주변의 생명들이 우리와의 인연으로 기뻐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125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번호 제목 등록일 작성자
97520 [4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기일 2006-04-01 장병찬
97519 오늘의 포토뉴스(04/01)|6| 2006-04-01 정정애
97518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2006-04-01 강점수
97517 사랑이 있는 눈은 아름답습니다 ♣♡|1| 2006-04-01 박명숙
97515 - 내 조국 - 2006-04-01 유재천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