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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유리 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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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을 처음 본 건 여섯살 때로 기억된다. 그전에도 혹시 본 일이 있을지 모르나 내 기억으론 그때가 처음이었다. 농촌에서 층층시하에 시집살이 하는 어머니가 친정에 다니러 갈 기회도 없었겠으나 워낙 교통이 나쁘던 시절이라 친정 나들이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란이 외가집 나들이를 하게 만든 것이었다. 친가에서 150리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외가집으로 피란을 갔다.
외삼촌을 처음 보았을 때 참 낯설었다. 내가 그때까지 보아왔던 고향의 시골사람들과는 너무 달라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키가 큰 사람은 그때 처음 보았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도 나중에 커서 사진으로 보니 독일사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외삼촌은 선생님이었다. 두어 장면 기억나는 것중의 하나는 축음기를 틀고 동요를 들려주던 모습이었다. 기억력이 좋았던 나는 금방 따라 불렀는데 외사촌은 따라 하지 않았다. 외삼촌은 내 아명을 부르며 "희정이는 잘하는데 너도 한 번 해봐" 라고 했지만 외사촌은 끝내 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그리고 외삼촌이 집 옆의 골목길을 휘청거리며 걸어가던 모습이 참 낯설게 느껴져서 지금도 기억난다.
외삼촌이 준거라며 어느날 외할머니가 헝겊 주머니에 가득 찬 유리구슬을 주셨다. 아마 한 30개쯤은 되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퍼렇고 거무티티하고 커다란 값싼 막구슬만 보았던 나에게 현란한 색채의 그 조그맣고 앙증스런 고급 유리구슬은 환상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 아름답고 오색이 영롱하던 유리구슬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황홀하고 행복해서 어린 마음이 벅차도록 뛰었던 기억이...... 형형색색의 구슬속에 하얀색 무늬가 박혀있던 그 구슬들은 아마도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었을 것이다. 인천항을 통해 무역을 하셨다는 외조부님께서 사온 것인지 아니면 외삼촌이 따로 구입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난 난생 처음 외할머니가 주신 드롶프스의 새콤달콤한 맛에 놀라며 "이거 외아저씨 하나 줄까?" 하니까 "주면 좋지" 하던 외할머니와의 대화 한토막이 기억난다. 어린 마음에도 구슬을 주신 외삼촌에 대한 고마움이 컸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외삼촌을 다시 본 건 3년쯤 후였다. 외삼촌이 입원해 있는 수원의 병원에 어머니와 함께 찾아갔을 때였다. 수원은 고향에서 사십리쯤의 거리로 가깝고 버스도 있었다. 나중에 다 안 사실이지만 그때 외삼촌은 계속 수혈을 받아 목숨이 연장되는 불치병에 걸려 서울대병원에서 오랫동안 입원해 있다가 수원도립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초가지붕을 얹은 입원실의 방문을 열고 나오던 외삼촌은 누렇게 뜨고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있어 전에 보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활짝 웃으며 "희정이 왔구나!" 하던 모습이 선연하다.
그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을 하나 만들었다. 어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마루 끝의 기둥을 잡고 돌던 나는 기둥을 받친 주춧돌에 얼굴을 박고 넘어졌다.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마 한 쪽이 주춧돌 모서리에 찍혀 찢어졌는데 난 병실로 옮겨져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그때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던 서너명의 남자 여자들의 얼굴이 마치 괴물처럼 두려웠던 기억... 발버둥을 치며 비명을 지르자 한 남자가 " 튿어졌잖아? 또 그러면 또 꿰매야 한다" 하는 소리에 놀라 두번째의 봉합땐 눈을 꼭 감고 참았던 기억.... 결국 외삼촌은 그 몇달 후에 퇴원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내 이마 한 쪽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았다. 어머니보다 두 살 위인 외삼촌은 그때 서른 한살이었다니 내 나이는 아홉살이었다.
내 이마의 흉터를 보면 축음기를 틀어주며 웃던 외삼촌의 지금 생각해보면 참 멋지고 잘생겼던 모습과 수원병원에서 보았던 누렇게 뜨고 퉁퉁 부었던 얼굴이 겹쳐진다.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만 다정했던 웃음은 같은 느낌으로 그 두가지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외할머니도 아드님이 떠난 다음 해에 세상을 버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유리구슬을 주던 장면과 "주면 좋지" 하던 한마디 뿐이다. 그 유리구슬은 몇년동안 아끼고 아꼈는데 열한살 때,분가하면서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외삼촌과 외할머니와 유리구슬은 이마의 흉터와 함께 이렇게 단단한 기억의 축으로 엮이면서 오래도록 나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답던 유리구슬의 황홀함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그리움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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