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안보를 위해 로마군인을 모시고 다니셨나요? 그러셨을리가 없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님은 약자를 보호하시고 최대의 공권력을 가졌던 최고위원들을 향해 위선자들이라고 비난을 퍼부으셨소이다.
제가 소수의 자국민의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한다하여 하느님의 신성한 게시판을 모독한 것이요?
가톨릭이 지금껏 부패속에서도 아름다웠고 생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약자에대한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요.
미사때 조용히 미사보를 쓰는 경건성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경건성이란 평화를 갖도록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잊지 말았음 싶소이다.
결과가 어떻게 결말이 나건 중요한 건 카인의 악한 심보라는 과정이 아니라 살인자 카인마저도 용서를 해 주신 하느님의 선하신 사랑이 왜 평택미군기지로 인한 생존터를 몰수당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소수에 대해서 누구나 냉정한가 하는 바로 그 점입니다.
강제성을 띤 법 집행이 범죄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들은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민주국가에서 있을 법이나 한 것입니까?
어차피 더 나은 민주화로 가는 한국의 정치현실일지라도 우리의 민주적인 합의 과정을 무시하고 무작정 정권이 업무 추진을 이유로 사람을 밀고 들어오는 것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요.
원칙이 무너지면 살 수 있는 사람 하나도 없소이다.
정부의 업무도 미군도 그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해 있고 그대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요.
그것을 잊으면 지상에 남을 것은 바로 사단 하나 뿐일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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