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같았으면 돈을 받지 않았을 거예요"
요즘은 차 운전을 할 때 지난 13일의 일을 더러 떠올리곤 한다. 신호등 앞에서 대기를 할 때 앞차의 꽁무니를 보게 되면 그 날의 일이 떠올라서 절로 웃음을 짓곤 한다. 반은 쓴웃음이기도 하고, 반은 재미있는 웃음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오후에 또 한 번 논산을 갔다. 일본에서 귀국한 아들 녀석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 오전 11시쯤 부산항에 도착했다는 아들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오후 5시쯤 논산 도착 예정이라고 했다.
미리 논산의 D고에 가 있다가 아들 녀석을 맞을 요량으로 오후 2시쯤 태안을 출발했다. 내가 사는 태안에서 논산까지는 대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차량 통행이 별로 없는 새벽에는 15분 정도 단축되기도 한다.
이태 전인가, 당시 천주교 대전교구장이셨던 경갑룡 요셉 주교님께서 내 아들 녀석을 논산의 D고로 보내라고 하신 바람에(그 분은 그것을 기억도 못하실 테지만), 다시 말해 노인 주교님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신 말씀을 잘 받든 탓에 내가 적잖이 고생을 하는 셈이다.
태안에서 논산을 가려면 천수만 제방 길로 해서 홍성과 청양, 부여를 통해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것 같다. 한번은 '내비게이션'의 아가씨에게 안내를 부탁했더니, 내 기대와는 영 딴판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천까지 내려가게 만들더니, 부여로 비스듬히 올라가게 만들고, 거기에서 논산 길을 잡아주는데, 완전히 지그재그였다.
또 돌아올 때는 자꾸만 서해안고속도로 쪽으로 가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 내비게이션 아가씨와 싸우기가 싫어서 아예 길 안내는 부탁하지 않고, 단속 카메라나 잘 알려달라고 하면서 홍성-청양-부여를 통과하는 길로만 다닌다.
충남에서 가장 작은 군이고 산골 동네인 청양을 통하는 길은 비교적 한산하다. 홍성과 청양 사이의 길은 차량 통행이 그전보다 많이 늘었지만, 청양과 부여 사이의 길은 가뭄에 콩 나듯이 차량 통행이 뜸하다. 그런 길을 달릴 때는 묘하게 기분이 좋다.
그런데 부여와 논산 사이의 길을 달릴 때는 번번이 한심한 생각이 들곤 한다. 이제야 4차선도로 건설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 공사가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고, 백제의 고도 부여와 백제의 유서 깊은 동네 논산 사이의 도로가 여태까지 낙후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게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래도록 '핫바지' 푸대접을 받은 건지,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종필씨가 잘 나가던 시절에도 자기 고향(부여)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은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앞으로 나는 3년 동안 그 길에다가 어지간히 기름 값을 깔게 생겼다. 그래도, 아들 녀석을 보러 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기분도 좋다. 그렇게 한참 만인 것도 아닌데, 아들 녀석을 보러 갈 때마다 마음 설레는 듯 기분이 좋은 것은, 나 역시 '부정(父情)'이라는 것을 안고 사는 아비인 탓일 터…. 또 늦게 결혼하여 늦게 자식을 얻은 탓도 있을 터….
그 날도 기분이 좋은 상태로 운전을 했다. 4박 5일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 녀석에게서 바가지로 받을 이야기 선물에 대한 기대도 내게 묘한 설렘을 안겨 주는 듯싶었다. 그런 흥겨운 기분으로 운전을 하다가 청양의 외곽도로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게 되었다. 부여, 공주, 보령, 홍성으로 각기 뻗은 길이 서로 만나고 나뉘는 사거리였다.
나는 먼저 신호를 받고 있는 흰색 승용차의 꽁무니 뒤에다 내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약간 졸음도 오고 입도 고프고 해서 뭐 먹을 것이 좀 없나 하고 운전석 뒤를 살폈다. 그때 나는 핸드 브레이크 설치를 깜빡 잊었다. 그냥 브레이크 페달 위에 발만 살짝 올려놓은 상태로 상체를 돌려 운전석 뒤를 살폈는데, 다음 순간 약간의 충격 진동을 느꼈다.
도로가 평지인 줄로 착각한 나머지 브레이크 페달 위에 올려놓은 발에 힘을 주지 않은 탓이었다. 아주 완만한 경사 위에서 차바퀴가 조금 움직인 탓이었다. 정말 약간의 충격 진동이었지만, 내가 그것을 느꼈으니 앞의 승용차에 탄 사람도 그것을 느꼈을 터였다. 그리고 내 차의 앞머리가 앞차의 뒤꽁무니에 닿은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승용차 운전자가 차를 앞으로 조금 움직이더니, 아니나다를까 차에서 내렸다. 나도 차에서 내리고 앞차 쪽으로 갔다. 내 차는 살필 필요도 없었다. 승용차의 뒤꽁무니를 살피니 다행히 찌그러진 데는 없었지만 한 군데 손톱만큼 칠이 벗겨진 부분이 보였다. 일부러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듯싶은 정도였다.
승용차 운전자는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안경을 쓴 얼굴이 유순한 인상이었다. 나는 그의 유순하게 뵈는 인상에 모종의 기대를 머금으며 잠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차 꽁무니의 손톱만한 흠을 확인한 그는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한 삼만 원쯤 들겠는데요."
나는 지체 없이 지갑 속에서 3만원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3만원은 내가 예상을 한 금액이었다. 얼마 전에도 한번 경험을 한 일이었다.
해미 성지 물을 길어다가 여러 집에 나누어주는 일을 할 때였다. 한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물통 두 개를 내려서 한 집 대문 안에 넣어주고, 차에 올라 후진으로 골목을 나오다가 검은색 승용차의 앞 모서리를 살짝 건드렸다. 20년 운전 경력도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려서 살펴보니 찌그러진 데는 없고 앞의 한쪽 모서리가 약간 칠이 벗겨져 있었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지만 하늘을 이고 사는 처지에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두 집의 문을 두드린 끝에 차 주인을 찾았는데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밖에 나와 차를 살펴보더니 고맙게도 만원만 달라고 했다. 남의 차를 건드리고 만원 소액을 물어보기도 처음이라는 생각을 하며 반갑게 만원을 주고 고마운 인사까지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는데, 부분 도색을 하느라고 3만원이 들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두 말 할 것 없이 그에게 2만원을 주고 또 한 번 고마운 인사를 했다.
그런 경험이 있는 터라 나는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3만원을 예상했고, 내 예상대로 흰색 승용차 운전자가 3만원을 요구해서 두 말 할 것 없이 3만원을 꺼내 주었다.
그리고 차에 오르니 아내가 한마디 했다.
"삼만원 쓰기 참 쉽네요."
"한 순간에 차를 폐차장에 보내는 수도 있어. 또 저번 때처럼 해미 성지 물 때문에, 좋은 일을 하다가 손해를 보는 수도 있고…."
그리고 신호가 바뀌어서 차를 움직이는데 아내가 또 한마디 했다.
"당신 같았으면 그 정도 칠 벗겨진 걸 가지고 돈을 받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일단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런 일을 당하면 그 정도의 흠집을 가지고 돈을 요구하지는 '못할' 터였다.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이 먼저 돈을 준다면 못 이기는 척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내 쪽에서 먼저 요구를 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왠지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 내 쪽에서 먼저 돈을 요구하는 일은 차마 못하리라는 생각이 묘한 슬픔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그런 이상한 기분 때문에 나는 굳이 아내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좀 전에 한 말 무슨 뜻이야? 당신 같았으면 돈을 받지 않았을 거라는 말…."
"왜요?"
"설마 내가 너무 강건하지 못하고, 유약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뜻은 아니겠지?"
"내가 왜 그런 뜻으로 말하겠어요."
"그럼…?"
"당신은 우리 차의 손톱만한 흠집보다도 상대방의 삼만원 손실을 더 중요한 일로 보고 안타까워할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럼,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겠네."
"착한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이니까요. 당신은 유약한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놀랍네."
"뭐가요?"
"당신이 그런 멋진 말까지 다 할 줄 알고…."
"당신 마누라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기분 좋군. 마누라한테서 뭔가를 인정받는다는 거…. 정말 괜찮은 기분이야."
나는 한 손으로 아내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을 불러들이며 심호흡을 했다. 어이없는 3만원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청양(靑陽) 땅의 맑은 공기가 더욱 맑아지는 것 같았고, 맑은 정신으로 운전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06-05-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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