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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소수파(주, 교황 무류성 교의 반대파)는 처음엔 몰랐다.
그들은 여전히 마지막 순간의 절충을 기대했고, 7월 15일 대표단을 교황에게 보내어
"교회의 증언에 의지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첨가해 주기를 청했다. 비오 9세는 그
일은 모르는 척 회피하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사람을 홀리는 기막힌 재주를 발휘했는데,
이것이 대표단이 환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총회에서 소수파는
결정적 환멸을 맛보게 되었다. 소수파가 바라던 대로 수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전문위원회는 "교회의 동의에 터해서가 아니라"의 첨가 여부를 표결에 부치자고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이제 소수파는 저항의 표시로 정식 최종 표결에
불참하고 귀향 길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7월 18일, 최종 표결의 결과는 찬성 533표,
반대 겨우 2표였다. 아무튼 그리하여 교황 무류성 교의가 장엄하게 선포되는 동안,
천둥 번개가 심하게 내리쳤고, 교부들의 "찬성"이라는 외침은 천둥소리에 거듭 잘려
먹혔다.-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진노의 표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예컨대 뵈이요나 [치빌타 카톨리카] 동아리는 교황의 무류성이 시나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질 때처럼 정말로 번개와 천둥 속에서 선포되었다고 생각했다. 교부들은
그해 11월 11일까지 휴가를 가졌다.
(ㄹ) 공의회 이후
"기쁜 날의 슬픔"- 당시 로마에 머물던 뵈이요가 7월 18일에 관한 글에 붙인 제목이다.
"큰 기쁨이 큰 슬픔과 섞여 있다. 이날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임박한 독일-프랑스 전쟁과 관련되어 있었으니, 바로 다음 날 그
전쟁이 발발했던 것이다. 전쟁이 공의회에 끼친 영향은 전쟁의 수행 및 종결과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했다. "
316-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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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공의회사 신학 텍스트 총서 24 클라우스 샤츠 저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2005 초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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