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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우리 교회 신자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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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향 [cpark] 쪽지 캡슐

2006-06-05 ㅣ No.100367

 

어제 성령강림 주일 미사 강론에서 저희 본당(아현동) 이정호 보좌 신부님께선 ‘성령의 본질은 사랑이시다 말씀하신 후, 이웃 형제, 자매들,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우리들 각자 각자가 자신의 재능, 품성 등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텔런트를 최선을 다해 발휘하며 사는 것”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 실천 방법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의미 깊게 생각하며 마음 깊이 새기는 중, 문득 우리 가톨릭 교회 형제, 자매님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우선 아래와 같은 세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자기 자신 능력의 한계가 있는 존재임을 께닫고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들라 할 때,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을 들 것이다. 안 믿는 사람들은 슈바이쳐, 아인슈타인, 부처, 맹자 등등 인간들 중 하나를 들겠지만 우리 신자들은 인간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휼륭한 인간을 선택할 지라도, 근본에 있어 그는 모든 면에서 한계가 있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나와 똑같은 인간들 중 하나일 뿐이기에 절대적 존경의 대상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가 아무리 득도를 하였다 하나 죽음과 함께 삶이 끝나버린 유한한 존재이었을 뿐이고, 공자, 맹자가 아무리 훌륭한 윤리 철학을 설파했다 해도 죽음과 함께 무로 사라져 버린 이제는 없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사상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방편적 도움을 주었을지 모르나 죽음과 내세 앞에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무력함과, 허무, 허탈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인 동시에 하느님이시기에, 인간으로서의 모든 한계성을 초월한 초월자이시기에, 전지, 전능, 전선하신 존재이시기에, 죽음도 없으시기에 우리의 절대적 신앙의 대상이 될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추고 계신다.

 

비록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한계를 지닌 유한자이지만 이러한 절대자, 예수님를 믿고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지혜롭고 행복하다. 

 

둘째, 우리 신자들은 원초적 불안인 죽음의 공포로부터 초탈하여 살아갈 수 있어 지혜롭다.

 

위에 말한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께선 우리가 하느님께 순종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굳게 믿는 우리들로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아무 의미가 없게됬으며, 그 결과 지금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중,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리의 지상 여정이 끝나가 어느 순간 죽음이 찾아 온 순간에도, 불멸의 삶을 보장 받고 있기에 죽음에 대한 생각, 공포에서 초탈, 해방되어 살아갈 수 있다.

 

오히려, 죽음의 순간에도 곧 뵙게 될 하느님과 천국에 대한 생각으로 기쁨가운데 행복한 마음을 지니며 이를 맞이할 수 있다. 즉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선, 현세나 내세 모두 하느님만을 믿고 사랑하며 그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갈 경우, 근본에 있어 본질적 차이가 없는 똑 같은 세계들로, 어느 시점에 있든 상관이 없다. 하이데커, 야스퍼스, 샤르틀르, 까뮈, 부처, 노자 등등 동, 서양의 온갖 사상가들이 삶과 죽음을 초탈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신조들을 내놓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한계성을 지닌 인간 머리로 제시된 생각들은 아무리 훌륭한 사상일지라도 유한자인 인간 지성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의 진리에는 결코 버금할 수 없는 한계성을 지닌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우리 신자들은 최상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최고의 인간 관계의 법칙아래서 살아가기 때문에 지혜롭다.

 

하느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인간 관계의 법칙은 ‘형제 사랑, 아가페적 사랑’이다. 동서 고금 위대한 사상가, 현인들이 제시한 윤리 사상, 법칙은 인간을 중심으로 개진한 생각들이기에 인간적인 한계성을 지닌다. 또 서로간의 이해관계에 기초하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갈등과 대립 요소를 포함한다. 따라서 인간 모두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인간 모두를 화해,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보편적인, 완전히 조화롭고 이상적인 법칙을 창안해 내기는 생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반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인간 관계의 법칙은 ‘형제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받칠 수 있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신적 사랑이기에 우리가 이를 따르기에 합당한 절대성과 보편성을 지닌 인간 관계의 법칙이다. 이 같은 사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현하신 사랑으로 ‘죄로 인해 멸망 상태에 빠진 우리들을 구하시려 대신 죽으시고, 그 결과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 주신 사랑”이다.

 

이러한 예수님 사랑은 하느님께서 대가없이 주시는 너무나 숭고한 이타적, 신적 사랑,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는, 그러한 가이없는 사랑이기에 우리를 한없이 감격시키며 하느님께로 향한 회심으로 향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사랑, 아가페적 사랑을 우리도 실천하기를 명하시며, 그래야 우리가 하느님, 예수님과 일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같은 예수님 사랑 실천의 가르침을 잘 께닫고 실천하는 우리 신자들은 지혜롭고 행복하다.

 

좋아하지 않거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에 개의치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함을 추구하는 사랑인 아가페의 원천은 예수님으로서, 예수님께선 특히 영성체 때 자신을 주시는 은총을 통해 이 같은 사랑을 드러내신다. 이 같은 사랑의 원천에서 힘을 얻은 우리 신자들은 자신의 형제, 자매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해 사랑을 드러내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 노력하며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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