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4일 (금)
(녹)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자유게시판

몽골방문기 (完) 순한 양의 죽음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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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6-06-12 ㅣ No.100724

 

사흘 째 되는 날은 승마체험을 하기도 했다. 아침부터 관광객을 상대로 말을 태워주는 유목민들이 우리가 묵고 있는 게르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안내인의 말만 듣고 용감무쌍하게 말 안장에 올라탔건만 네 발 짐승의 움직임에 두 발을 가진 사람이 호흡을 맞춰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초보자로서 연습이 없이는 쉬운 알이 아니었다. 그것도 10분 20분이 아니고 무려 1시간 40분을 말을 타고 강가를 거슬러 자갈밭을 지나고, 초원의 언덕을 넘고, 빨리 그리고 천천히 마치 내가 서부영화에 나오는 카우보이라도 된 양 없는 폼을 잡다가 결국 나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니 온 삭신이 쑤셔서 견딜 재간이 없었다. 말상이며 말띠인 내가 말의 고향에서 말을 탔는데 말이다.


그날 오후에는 칭키스칸의 고향 땅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특별히 우리 일행을 위해 현지인들이 마련해준 미니 나담축제를 관람했다.

나담축제는 몽골의 대표적인 전통문화행사로서 몽골의 독립기념일인 7월11일에 해마다 개최하는 남자들만 하는 범국가적인 체육경기로서 말달리기와 활쏘기 그리고 씨름대회를 갖는 것을 말한다.

몇 명이 안 되는 우리일행을 위해 여러 부락에서 사람들이 모여와서 말달리기 경기와 씨름경기를 하는 그들을 보면서 경기내용보다도 자신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긍지를 느끼는 것 같은 그네들의 마음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기가 아니라 승부에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모습에서 뿌듯한 감동이 느껴졌다.

몽고씨름은 선수가 입장할 때 마치 새의 날개짓 같은 흉내를 내며 한쪽 사람만 샅바를 차고 상대방은 샅바가 없이 경기를 하는 것이 특이했고 동시에 여러 팀이 한꺼번에 경기를 하는 것도 이채로웠지만 허리를 꺾는 것이며 다리를 거는 기술도 우리네 씨름과 거의 흡사했다. 하지만 우리씨름은 손을 땅에 짚으면 지는 것이 되지만 몽고씨름은 상체가 땅에 닿아야만 지는 것이  약간 달랐다.

씨름선수들이 앞가슴을 내 놓고 등만 반쯤 가리는 몽골 전통적인 문양의 이상한 옷을 입고 경기에 임하였는데 선수들이 그런 옷을 입게 된 데는 까닭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왕(부부트칸)이 나담축제에서 씨름경기에 1등을 한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었는데 알고 보니 1등을 한 사람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고 한다.

왕이 크게 놀라면서 “다음부터는 여자는 나담에 출전치 못하게 하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젖가슴이 보이도록 윗옷의 앞쪽을 터서 훤히 보이도록 하라” 명하여서 그리되었다고 한다. 


저녁 때 숙소인 휴양소의 게르로 돌아와 울란바토르에서 우리들을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달려와 준 몽골전통예술단의 특별공연을 관람했다.

마두금이라는 악기는 우리의 전통악기인 아쟁을 연상케 했고 우리네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와 피아노의 원리를 이용한 악기도 눈에 띄었다.

예쁜 가수가 나와 몽골의 전통민요를 불렀는데 가사 내용은 자세히 알 수가 없었지만 멜로디며 창법이 마치 요들송처럼 끝부분에 떨림이 있는 것은 소리를 좀 더 멀리 보내려 함이리라 여겨졌다.

개울이라고 하기에는 넓고 강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좁은 강이 바라다 보이는 게르 앞마당 초원에서 서른 명이 채 안 되는 우리 일행만 보기에는 너무 너무 아까운 공연이었다.


나흘째 되는 다음날 서울로 되돌아오기 위해 초원을 떠나면서 눈을 감으니 며칠 동안 체험한 여러 장면들이 활동사진처럼 펼쳐졌다. 그 중에서 딱 한 장면, 우리가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게르 촌에 방문했을 때 집주인이 우리를 대접하기 위하여 자기가 돌보던 양을 잡던 장면이 자꾸만 리바이벌 되면서 머릿속에 떠올라 잊히지 않았다.

양은 그 어떤 동물보다 온순한 동물이다. 사슴이나 소처럼 뿔이 있어서 싸움질을 하거나 말처럼 뒷발질을 하는 동물도 아니다. 태어나서 그저 땅의 풀만 바라보고, 앞에서 걸어가는 다른 양의 궁둥이만 쳐다보며 졸졸 따라다니다 보니 하늘을 볼 기회가 한번도 없다.

고작해야 언덕을 오를 때 하늘끝자락이나 조금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러던 양이 죽는 순간에 평생 처음으로 단 한번 하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유목민들을 양을 잡기 전에 반드시 경건한 의식을 치른다. 마치 정인(情人)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의식이었다.

순한 양은 그 순간까지도 자기 주인이 지금 저한테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고 순하디 순한 표정에 해맑은 눈만 껌벅껌벅할 뿐이어서 보는 내가 애처롭기만 했다.

주인이 양을 하늘을 향해 눕히자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네 다리를 하늘로 향해 벌렁 누웠다. 주인이 칼로 양의 복강경 부분을 열십자(十)로 찢는 순간 양이 약간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어서 주인의 손이 그 십자로 그어진 부분의 털가죽 안을 비집고 들어가서 양의 허리를 돌아가며 양 가죽과 살갗 사이를 파고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 꿈틀 꿈틀거리며 보이는데도 양은 그저 평온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양은 그 부분에 신경선이 없어서 감촉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주인의 손이 양의 털가죽 안에서 옴지락거리며 양의 목 부분에 닿는 순간, 주인이 양을 품에 안아 하늘을 바라보게 하면서 숨통부분을 끊는 것이었다. 순간적인 행동이었지만 양은 아주 평화로운 표정으로 주인의 품에 안긴 체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참으로 경건한 죽음을 보는 순간이었다.

개 한 마리를 잡아도 온 동네가 시끌벅적한 우리 모습을 생각하니 “착하고 순한 동물은 죽을 때에도 저렇게 순하게 죽는 구나” 하는 생각과 주인이 그동안 정들여 보살폈던 양을 거두어 하늘로 되돌려 보낼 때 비록 동물이지만 예의를 다하는 그 모습이 너무 정겹게 느껴져 내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나를 저렇게 잠들듯이 품에 안아 거두어 가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양처럼 순하고, 착하고, 한길만 바라보고 오직 그렇게만 살면 내 주인이신 그분께서 나를 거두어 가실 때에 나도 저렇게 평안케 해 주실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4박 5일의 여행을 끝내고 귀국을 위해 수도 울란바토르 다시 돌아와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라마불교의 총본산이라고 하는 간등사원으로 가는데 우리 일행이 탄 버스 옆에 놀랍게도 서울 청계 6가에서 신설동을 거쳐 천호동을 가는 570번 시내버스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게 뭐야? 저 버스 타면 장안동, 우리 동네를 거쳐 가는 건데 난 그만 여기서 내려서 저 버스타고 우리 집으로 가 버릴까?”하여 일행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서울에서 쓰던 중고버스가 겉면에 노선번호며 한글표시 딱지 같은 걸 덜 지운 채 수입되어 울란바토르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내버스로 그냥 쓰이고, 중고 승용차가 몽골로 수출되어 거리에 나다니는 차도 한국산 현대, 기아 차량이 대부분이었다.

그날 밤 0시가 넘어 인천으로 향발하는 KAL비행기를 타기위해 우리 일행이 저녁식사 후에 시간을 죽이면서 울란바토르 번화가에 있는 카페 레스토랑인 ‘블로이 하우스’에 둘렀을 때였다.

손님은 대부분 20대 젊은이들이었고 1층과 2층에 약 150여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들어섰을 즈음부터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연주를 하며 생음악으로 노래를 하기에 내가 밴드마스터에게 부탁하여 무대에 올라 잠시 동안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이다. 한국의 문화원에서 온 28명이 몽고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4박5일 동안 몽골국립박물관을 방문하고 게르에서 잠도 자고 말도 타보고, 뭉근머리트에도 가 보았다. 내가 다시 또 다른 나라를 여행한다 하드라도 나는 오래 동안 몽골, 이 나라를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당신들의 얼굴과 내 얼굴이 너무나 같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재 서울에는 약 2만 명의 몽고인이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양국의 우호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길 바라면서 여러분을 위해 기념으로 노래 하나를 부른다.”며 인사를 하고 나서 박수 속에 노래 한 곡조를 불렀다. 5박 6일의 몽골여행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내가 보고 느낀 몽골은 무한한 잠재력을 숨겨놓은 나라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지하 수백 미터를 파고 들어가야 발견되는 석탄이며 니켈, 주석 등의 광물이 노천에 쌓인 것만도 아직 채굴이 덜 된 상태라고 한다. 노천과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광물만 140여종, 그러나 자본력이 부족하고 또한 인구마저도 얼마 되지 않은 그들로서는 개발을 서둘러야할 힘도, 까닭도 없다고 한다.

실제로 몇 해 전에 몽골 고비사막에서 매장량이 대규모로 추정되는 석유유전이 발견되었지만 몽고정부는 탐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경제성이 없다고 발표하면서 덮어 버렸다고 한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개발을 서두르다가는 인구 260만의 몽골이 외세에 결코 견딜 수 없음을 몽골 지도자들이 스스로 아는 것은 아닐까?

칭키스칸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가 바라보이는 페르시아 만까지 정벌했던 몽골의 힘은 유목민 특유의 용감무쌍한 투지와 월등하게 뛰어난 기마기동력이었을 것이다.

현재는 거대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서 숨을 죽이고 있지만 먼 훗날 몽골은 반드시 다시 일어날 무한한 잠재력을 대륙 깊숙이 묻어두고 있는 나라였다.

오보와 성황당, 남근석과 돌로 만들어진 장승, 돌하르방, 족두리와 금줄 등 등....우리와 너무나 닮은 문화에 체형과 얼굴모습까지 우리와 닮아서 정감이 더 솟구치는 나라였고 백성들이었다.

몽골사람들은 예로부터 한국을 가리켜 솔롱고스, 즉 무지개(솔롱코)와 해가 뜨는 동쪽나라라고 부른다고 했다. 어쩌면 그들 또한 우리에게 한족이나 만주족과는 다른 정감을 표시함이 아닐까?

더구나 근세사의 와중에서 옛 영토를 외세에 빼앗긴 동병상린의 마음까지 앓고 있으니 앞으로 한국과 몽골 양국 간의 우호가 더욱 돈독해 지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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