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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로님의 영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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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979aaa] 쪽지 캡슐

2006-06-17 ㅣ No.100922

제목   바울의 영성 (1)
글쓴이 관리자 E-mail 번호 55
날짜 2006-02-24 조회수 26 추천수 0

영성연구의 주제 용어는 바울 저작에서 출처



영성과 카리스마 용어는 바울의 글에 집중 등장

바울영성을 가톨릭 수덕적 영성전통에서 다루어

오늘날 모든 영성 운동은 바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현대 카리스마 운동이 바울 공동체의 예수의 보조자로서의 성령론에 대한 조명보다는 누가와 사도행전을 잇는 공동체 혹은 마가와 마태 공동체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초대 카리스마 공동체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날 ‘영성(Spirituality)’이라는 주제와 ‘카리스마(Χα、ρισμα)’라고 하는 모든 주제가 오직 바울의 글에 집중되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영성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영성에 대한 연구와 관련해서 특히 카리스마와 관련해서 오늘날 영성 연구의 주제가 되고 있는 각 용어들이 모두 바울의 저작으로부터 출처(出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자기용어로 사용한 ‘아스케오’(행 24:16), ‘굼나제’(딤전 4:7), ‘카타 프뉴마’(갈 5:16, 롬 8:3-16, 갈 4:23, 29), 그리고 ‘카리스마’(롬 1:11, 5:15, 16:23, 11:29, 12:6, 고전 1:7, 7:7, 12:4, 9, 28, 30, 31, 고후 1:11, 딤전 1:14, 딤후 1:6의 16 곳 외에 단 한 곳, 벧전 4:10에 만 오직 카리스마가 사용되었다.) 라는 용어들이 오늘날 영성학의 주된 테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의 관심사는 바울의 여러 용어들, 즉 오늘날 가톨릭의 수덕영성(修德靈性)의 전통과 관련된 아스케오와 카타 프뉴마와 관련된 기독교 전통적 해석, 그리고 전통적인 신비사상과 관련된 신비적 합일(Unio-mystica), 즉 그리스도와 일치(Unio cum Christo) 사상, 그리고 현대 카리스마 운동과 관련된 카리스마 개념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선적으로 바울의 영성은 가톨릭의 수덕적 영성의 전통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1656년 폴란드 출신 프란체스코 도보로시엘스키(Dobrosielski) 신부가 ‘신비신학’에 대항하여 수덕신학(Theologia ascetica)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두루 학계에 퍼지게 되었다. 본시 수덕(a、scetica)이라는 말은 서양 신학에서 수련이라는 말로 사용되었다. 원어로 ‘아스케인’은 꾸미다 ‘노동하다’라는 말이 어원이었는데 ‘정신적으로 준비하다’ 혹은 ‘특별히 운동 기술을 위해 신체적으로 단련시키다’(gymnaze, 딤전 4:7)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점점 뜻이 바뀌어 철학을 연구하거나 덕을 닦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의미에서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6)라고 말한다. 바울에게서 모든 수련(a、scetica)은 운동선수의 신체 단련에 비유된다. 실로 그에게서는 영성 생활이란 신체단련을 위한 모든 노력과도 같은 것이다(고전 9:24-27, 빌 3:13-14, 딤후 4:28, 딤전 4:7-8, 히 5:14, 12:11).
바울의 아스케인은 초대교회 당시 금욕주의적인 수도사들에 의해 전수되었는데, 자신의 정욕을 거슬러 정절을 지킨 사람들에 의해 수덕주의자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고, 은수자(隱修者, anachoreta)나 봉쇄 수도원(封鎖 修道院) 중심으로 영적 훈련을 위해 적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아스케인, 즉 ‘아세티카’라는 말은 그리스 말의 사본을 제외하고는 중세 라틴어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세 시대를 통하여 아스케인은 육체적 삶의 훈련을 한다는 의미로부터 철학이나 신학을 연구함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성 안셀럼(Anselm)의 저작인 ‘프로스로기온’(Proslogion)이 왜 기도의 형식으로 쓰여 있는지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가톨릭 전통의 신학은 5세기 헬라 주교 포디키의 디아도쿠스(Diadochus)의 말처럼,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영적 훈련이자 “하나님의 영광을 정확하게 추적해 내는 학문”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청교도 신학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교리”로 정의한다. 초기 경건주의자들은 신학을 “신학은 실제적 훈련이다”라고 생각함으로써 아스케인의 행위로 생각했다. 이제 영성훈련(practicum)으로서 아스케인은 “영혼이 영적 생활을 시작하여 완전함에 이르기까지의 진보과정을 설명하는 신학의 한 분야”로 받아들여졌고, 가톨릭에서는 정화(purgation), 조명(illumination), 연합(unio)의 순서적인 도식(圖式)을 통해, 예컨대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150-215)는 영적 성장의 세 단계로 정화(purification), 조명(illumination), 합일의 삶(the life of unity)을 강조했다. 그리고 오리겐(Origen, 185-254)은 윤리적 단계, 자연과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의 단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관상(觀想)의 세 단계를 주장한다.
교부시대의 마지막 신비주의자였던 디오니수스 아레오파지트(Donysius Areopagite, 500년경)는 클레멘트와 같이 정화, 조명, 합일의 세 단계를 영성 발전의 단계로 생각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이라고 하는 소명, 칭의, 성화, 영화라고 하는 발전과정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이 바울의 아스케인과 관련된 개념들은 역사 속에서 경건주의 운동과 청교도운동, 그리고 18/19C의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에서 발견되어지며, 그리고 오늘날 가톨릭과 개신교의 수덕영성과 소위 영성의 실천적인 면에 속하는 ‘영성 훈련’의 핵심으로 전수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영성과 관련하여 바울은 ‘수덕’(아스케인) 이외에 다른 용어, 즉 영을 따라서(κατα、 πνευ、μα, 갈 5:16, 롬 8:3-16, 갈 4:23, 29)를 ‘육신을 따라서’(κατα、 σα、ρκα)라는 말의 댓귀로 사용한다(갈 5:16, 롬 8:3-16, 갈 4:23, 29, 롬 4:1, 9:3). 바울은 영(πνευ、μα)이라는 말을 ‘성결’(α、γιωσυ、νη)이라는 말과 함께 자주 사용한다. 바울의 “영을 따른다”는 말은 “육신을 따른다”는 말의 댓귀로서(갈 5:16, 롬 4:1, 9:3), ‘영육 이원론’의 윤리적 문맥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영과 육이라는 대조어(對照語)가 천상적 영역과 지상적 영역을 뜻하던지, 아니면 한 존재의 두 양면 즉, 신앙인이 지닌 삶의 두 영역 간에 갈등구조를 뜻하던 간에 중요한 점은 오늘날 일반적인 영성개념, 즉 ‘영을 추구함’(κατα、 πνευ、μα)이라는 개념과 일치하는 의미가 바울에게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결의 영’(α、γιωσυ、νη πνευ、μα)이라는 말 역시 현대 카리스마적 영성운동-웨슬리 이래 제3의 물결에 이르는-에 나타나고 있는 ‘성화’ 개념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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