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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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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josemaria] 쪽지 캡슐

2020-08-27 ㅣ No.220845

신약 성경 갈라티아서 2장 16절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이 죄(원죄 및 본죄)의 용서를 받고, 의롭게 된 신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죄를 용서받은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즉 '인간의 믿음'인 것처럼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오역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죄의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의 위업이고 예수님이 중재하신 신비인데, 이러한 잘못된 번역으로 마치 인간의 믿음으로 인간의 죄가 용서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고, 자칫 하느님의 거룩하신 위업에 먹칠을 할 가능성이 있어,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우선 우리 인간의 원죄 및 본죄가 어떻게 용서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죄의 용서'는 인간이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이 근거가 되었다 


바오로의 서간문들을 종합하면, 인간이 '죄의 용서'를 받고 의롭게된 구속(redemption)은 2중 구조로 되어있는데, (1)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죄가 용서된  구속의 '육적 원리'와 (2)  하느님께서 인간의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믿음에 의한 의화' 원리이다. 그런데 구속의 육적 원리는 하느님의 인간의 믿음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루셨다. 즉 하느님의 조건없는 죄의 용서를 의미한다.(로마3,24; 1요한2,2) 죄인이든 아니든,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구별없이 전 우주적으로 죄를 용서하셨는데,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순간부터 하느님은 인간의 영혼을 예수께로 옮겨 주시어(콜로1,13-1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분 안에서  인간을 속량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강생하기 전에 이미 살다가 죽은 인간 뿐만아니라 현재 및 미래의 모든 영혼이 그분께 옮겨져, 그분이 돌아가실때 까지 그분 안에서 속량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믿음과는 무관하게 이루신 신비이다. 갈라티아서와 로마서의 기록을 비교해 보자.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갈라2,16)”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5,19)”

위의 갈라티아서(2장 16절)와 로마서(5장 19절) 본문은 다같이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이 죄의 용서를 받아 의롭게 되는 원리를 증언하는 기록인데, 문제는 두 본문의 뜻이 서로 반대의 의미이다.  즉 갈라티아서에서는 사람이 의롭게 된 것은 인간의 믿음 때문이라고 하고, 로마서에서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구속(속량) 진리에 관한 가르침인데, 서로 상반된 가르침이 한 사람의 성경 저자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는 우리말 성경의 두 본문 중 하나는 명백한 오역이다. 


갈라티아서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는 우리말 번역은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 ‘πίστις Χριστοῦ(피스티스 크리스투)’를 번역한 것인데,  '피스티스 크리스투'는 그리스도 자신의 믿음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즉 ‘인간의 믿음’이라고 번역한 것이 문제가 된다. 라틴어나 영어 성경에 보면, 각각 fidem Jesu Christi 및 the faith of Jesus Christ로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올바르게 번역되어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는 ‘인간의 믿음’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루셨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죄의 용서 신비는 하느님께서 예수의 순종을 근거로 전 우주적으로 거저 죄를 용서해 주신 불가사의한 신비이기 때문이다.(로마3,24 참조) 여기에서 ‘거저’라는 말은 어떠한 조건도 없는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신 업적이며, 따라서 인간의 믿음과는 관련이 없이 온 세상의 죄를 용서하였다는 뜻이다. (1요한2,2) 갈라2,16뿐 아니라 로마3,22.26; 갈라2.20; 3,22 및 필리3,9 등에도 7번이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번역하여, 하느님의 ‘구속 위업’의 내용이 전도(轉倒)되어, 마치 인간의 믿음이 근거가 된 것처럼 왜곡되어 전해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순수한 하느님의 위업이 인간의 믿음으로 이루셨다는 오류는 대표적으로 개신교에서 ‘오직 인간의 믿음’만으로 인간이 의롭게 되었다는 주장과 흡사하다.  

 

로마8,3ㄴ에, “하느님께서는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다.”는 가르침이 있다. 그리고 코린토1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때의 표현인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라는 말이며, 하느님께서 예수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의 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신 속량의 기본 원리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로마5, 18-19) 라고 하는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아담과 우리 인간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각각 아담과 예수님 안에서 우리 인간이 결합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적이거나 추상적이 아니라, 실제로 아담 안에 그리고 예수님의 인성 안에 인간의 영혼이 결합되어, 아담과 함께 죄를 지었고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되어 그분의 피로 인간이 의롭게 되었다. 

 

인간의 믿음에 의한 의화 원리는 예수님의 사후 하느님과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구속의 지적원리이다. 개신교에서는 이 원리만 가지고 ‘오직 믿음’ 교리를 만들어 지난 500년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에 의한 ‘죄의 용서’인 구속의 육적 원리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믿음에 의한 의로움인 지적 원리인 '이신칭의'만을 주장하며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 헬라어 πίστις Χριστοῦ(피스티스 크리스투)는 직역하면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뜻인데, 로마서 5장 19절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말로 통한다. 그래서 그 해석은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체가 된 믿음, 즉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 자신의 믿음’이라고 번역해야 올바르다.


주석 성경에서도 풀이하고 있듯이, ‘죄의 용서’가 우리 인간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순종 즉 예수님의 믿음에 근거한다. (주석성경, 신약, 699쪽, 주석번호20번 참조) 따라서 갈라2,16에 두 번뿐 아니라, 로마서 및 갈라티아서 필리피서등에 합쳐서  7번이나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분명한 오역으로 판단됨으로,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인간이 원죄 및 본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된 것이 인간에 의한 믿음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순종의 공로이기 때문이다.  주석성경의 풀이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믿음'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번역할 수 밖에  없는 우리말 표현의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믿음'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결국 그 믿음은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는 믿음이라고 풀이하는데, 그러나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은 믿음의 주체를 규졍하는 일임으로 주석성경의 풀이가   이해하기 매우 힘들다. 개신교에서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고 한다고 주장할 때, 과연 그것이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가?

(2) 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죄의 용서’ 원리

 

앞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죄가 용서된 ‘죄의 용서’ 메커니즘이 인간의 믿음과는 무관하고 그리스도의 순종에 의한 것이라고하였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해 보고자 한다. 신약 성경 에페소서 1장 7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인간의 죄가 어떻게 용서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기록하고 있다.(여기서 기록된 ‘죄’란 예수 강생 이전에  인간이 지은 원죄와 본죄를 포함하는 의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1,7)

 

첫째,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인간의 죄가 용서되었다.

 

죄의 용서와 관련하여 가장 큰 왜곡은 하느님이 인간 안에 들어오셔서 사시면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해석이다. 왜냐하면, 위의 성경 본문에서처럼 인간은 예수 안에서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사도 바오로가 콜로새 사람들이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지적 개념을 두고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표현하였다.(콜로2,6) 그러나 ‘죄의 용서’ 원리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지적인 개념이 아니고, 그것과는 달리 하느님이 우리 인간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주셔서,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죄가 용서된 순전히 ‘육적 개념’을 의미한다.(콜로1,13-14) 바오로가 기록한 ‘죄의 용서’ 신비는 성모 마리아의 태중에 예수의 강생과 더불어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예수께로 옮겨주시고(콜로1,13), 인간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져 살면서 그분의 몸 안에서 죄가 처단되었다.(로마8,3ㄴ; 1코린1,30)  이 말은 ‘죄의 용서’는 인간과 예수님이 서로 떨어져 분리된 상태에서 이루신 위업이 아니고,  인간의 영혼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인성 안으로 옮겨져 그분께  결합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그분의 피로 죄가 용서되었고(1코린1,30; 에페1,7), 또한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루어 살았기 때문에(1코린12,27) 그분의 생명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로마6,6-7). 그러니 하느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말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 주장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바오로의 서간문들에서 160회 이상 나온다. 대표적인 구절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콜로1,13-14)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1코린1,3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1,7)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로마6,6)

 

교황청에서 복자품 지정이 진행되고 있는 ‘루이사 삐까레타’가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 적어 기록한 『천상의 책』 (시리즈36권, 가톨릭출판사)에 기록된 예수님의 메시지를 보면, ‘구속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인간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고, 구원은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신다. 즉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인간의 죄가 용서되었고, 인간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 신비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간에게 새로운 생명이 전파되는 것은 믿음과 같은 순전히 지적인 행위를 통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사상의 전파와는 달리, 생명의 전파는 생물학적 내지는 초생물학적 현상에 더 가깝다. 여기에는 성령이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추상적이거나 우연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의 몸 안에서 그분의 지체의 지체를 이루어 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1코린1,30; 1코린12,27) 이와 관련하여『천상의 책』에서 예수님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그런데 나의 뜻 안에서는 모든 영혼과 모든 것이 현행 중에 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 추상적이거나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그들 모두를 나와 하나가 되게 하였고, 그들이 나와 함께 바로 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 내가 그들 모두를 위해서 죽었고, 각자의 고통을 다 겪었다. 그러므로 나의 작은 인성은 내 어머니께 잉태된 순간부터 고통과 죽음을 번갈아 겪기 시작하였다. 모든 영혼이 끝없는 바다에 잠기듯 내 안에 잠겨 내 지체들의 지체들, 내 피의 피, 내 심장의 심장을 이루고 있었다.”(『천상의 책』 제12-94, 4-7 참조)

 

인간이 예수님의 ‘지체의 지체가 되었다.’는 말은 인간이 실제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지체를 이루어, 그분의 생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모든 영혼이 내 안에 잠겨 내 지체들의 지체들, 내 피의 피, 내 심장의 심장을 이루고 있었다.”고 풀이해 주신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영속적으로 죄의 용서를 받았고 또한 그분의 지체가 되어 그분의 생명을 받았다. 그분 안에서 살면서 인간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로마6,6-7), 그분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그분의 온몸이 뒤틀리는 참혹한 경련 가운데에서 그분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증언해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재탄생’ 된 신비이다.(갈라6,15; 2코린5,17) 예수님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그러면 내가 언제 그들을 낳았겠느냐?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내가 쓰디쓴 고통의 그 침상에서 온몸이 뒤틀리는 참혹한 경련 가운데 내 삶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였다. 나의 죽음으로 그들은 새로운 삶에 태어났고, 모두가 내 인성의 모든 업적으로 각인되었다. 이는 내가 새로운 탄생을 준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사람에게 내 업적도 내어주어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늘 배은망덕하여 그리도 엄청난 사랑과 고통으로 자기를 낳아준 자기들의 아버지를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천상의 책』 제13권 24,7-8.10)


둘째, 그리스도의 피로 인간의 죄가 용서되었다.

 

에페소서(1,7)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피’는 십자가에서 그분이 흘린 피가 이니다.  대신에  그 피는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옮겨진(콜로1,13-14) 인간의 영혼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성혈을 의미한다.(히브10,22; 로마3,24; 1코린1,30; 콜로1,14; 에페1,7) 죄의 용서 메커니즘을 보면, 하느님은 먼저 예수 안에 ‘속죄판’(헬라어 ἱλαστήριον)을 내세우셨다.(로마3,25)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의 영혼을 예수의 인성 안으로 옮겨주시어(콜로1, 13) 그 속죄판에 예수의 피가 뿌려짐으로써(히브10,22), 그분 안에서 인간의 죄가 용서되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속죄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인간의 죄를 용서하신 별도의 메커니즘을 마련하였다는 의미이다. 로마서 3장 25절에서 “하느님은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다.”는 기록에서 ‘속죄의 제물’은 헬라어 성경에 ἱλαστήριον(Hilsasterion) 즉 ‘속죄판’이며, 이 속죄판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 인간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의미라고 이해된다.(로마3,25, 주석성경 566쪽, 각주번호22 참조) 구약 성경에 하느님은 대제사장으로 하여금 속죄판 위와 앞에 짐승의 피를 뿌리게 하시어 온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또 하느님은 ‘속죄판’ 위에서 인간을 만나주셨다.(탈출25,22) 히브리서는 구약 시대 ‘속죄판’ 위에 뿌려진 짐승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을 예표(豫表)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속죄일의 예식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영원한 속죄의 예표로써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막에는 대사제만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가는데, 그때에는 반드시 자기와 백성이 모르고 지은 죄 때문에 바치는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히브9,7)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히브9,11-12)

 

‘완전한 성막’은 그리스도의 몸의 신비 곧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는 성전을 의미한다.(마르14,58; 요한2,19-21; 2코린5,17) ‘영원한 해방’은 되풀이가 필요없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죄의 용서’가 완전히 실행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인간의 영혼이 죄로부터 영원히 해방되었다.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다고 한 것은(로마3,25)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없애시는 ‘속죄판’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하느님이 예수 안에 세우신 ‘속죄판’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질 때, 그분 안에서 살고 있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간의 죄를 깨끗이 없애시는 신비를 증언해 주고 있다.(콜로1,13; 1코린1,30; 로마8,3ㄴ) 마치 구약 시대 ‘속죄판’ 위와 앞에 짐승의 피를 뿌려,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셨듯이 하느님은 예수 안에서 살고 있던 모든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성혈을 뿌려 죄를 없애주셨다.(히브10,22) 구약 시대 지성소에서 인간의 죄를 사해주셨던 동일한 원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몸 안에서 그분의 피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이루시려고 계획하신 일이 성취되었다.(히브9,23-26)  구약의 지성소에서 계약의 궤 위에 얹은 ‘속죄판’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인간의 죄를 없애주신 원리를 비교해 보면, 지성소의 ‘속죄판’을 통한 죄의 용서(레위16.15)가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 신비(히브10.22)의 예표라는 것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러한 죄의 용서 원리는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순종이 근거가 되었으며, 이러한 죄의 용서에는 인간의 믿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갈라티아서 등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즉 인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번역은 오역이다.

 

⇒ ‘죄의 용서’ 원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은 “예수 아버지”(맑은 샘 출판사) , 제3장 구속의 2중구조 및 새계약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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