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저는 도저히 용서를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요?"
"아무리 용서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많이 힘이 드시겠군요."
"용서를 하려고 별짓을 다 해보았는데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니 어떡하면 좋을까요?"
"자매님은 누구를 위해서 용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주님요. 주님이 제 죄를 다 용서를 해주셨으니 저도 용서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안되네요."
"물론 주님이 용서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도 있지만, 사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가요?"
"생각해보세요. 용서를 하지 못하는 동안에 자매님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요?"
"책을 볼 수 있나요, 잠을 잘 잘 수 있나요, 일을 할 수가 있나요? 또 용서하지 못하면 건강이 나빠지는 사람이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인가요?"
"하긴 그렇네요~ 신부님. 그렇지만 그래도 용서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을 어떡하지요?"
"어떡하긴요, 그렇게 살다 죽어서 원귀가 되는 길 밖에는 없지요.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를 하고 내 인생을 사느냐 아니면 용서하지 못하고 한을 품은 얼굴로 사느냐 하는 것은 자매님 선택이지요."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사례들을 자주 만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가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너무 무겁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러한 용서는 등급이 높은(?) 고차원의 용서이고, 용서의 첫 단계는 내 머릿속에서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기 집에 들어온 낯선 개를 쫓아내지 못하고 밖에서 짖으면서 찬바람 맞는 강아지 신세가 되고 말지요. 따뜻한 방안에서 사느냐, 바깥에서 한을 품은 얼굴로 사느냐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상계동본당 주임)
pb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