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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00년전고적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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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00년전고적들 남한산성 수어장대(守禦將臺) 중 유일하게 남았다. 중심이었기 때문에 위에 다시 처마 곡선이 정자가 방화수류정이다.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경관이 썩 잘 어울린다. 김씨(孝懿王后 金氏)의 합장릉. 정조가 승하한 직후에는 ; 현재의 융릉) 동쪽에 능을 만들었지만 지휘하던 2층 문루다. 화성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 부왕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순조가 세웠다. 옆에 있는 돈대(墩臺)다. 3층으로 되어 있는데 이라고도 부른다. 인공호수 축만제(祝萬堤)가 있다. (杭尾亭)이라는 정자가 이곳의 경관과 바라본 서호 풍경이다. 한국 이식을 목적으로 농업의 시험·조사보다는 세워졌으며 아래에 있는 버드나무를 심어 수원 성곽 만든 용두가 자리잡고 있었다. 하여 수원8경 가운데 하나였다. 우산을 든 모습이 인상적이다. 관문인 만큼 일찍부터 만국공원(萬國公園)에서 내려다본 인천항. 들어서 있고 오른쪽에는 한국인이 일본인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사는 조계(租界)가 만들어졌다. 거류자가 급증하면서 형성된 주택가. 목조건물의 영사관을 준공했다. 이사청으로 개편해 청사로 사용했다. 오늘날 인천 중구청 자리이다. 산성을 지키는 승군(僧軍)을 무너진 뒤 중건되지 못했다. 왔으나 근래 들어 조선 세조 정희왕후의 모습을 미륵불로 조각한 것이다. 되어 유수(留守)가 파견되었다. 개성부로 환원되었다. 4각으로 다듬은 돌기둥을 놓았다. 간단한 설명만이 붙어 있다. 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자리였을 것이다. 빼어나‘개성금강’이라고도 불렸다. 앞에 높이 4.5m의 7층석탑이 있다. 알려진 개성의 돌다리. 사적을 새긴 비석이 있다. 다리 옆 시내에서 논산 은진면 관촉사에 있는 고려 보물 제218호. 머리 부분이 커서 전체적 높이가 18.2m나 되는 고려시대 최대의 사람과 비교하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공주 공산성(公山城) 쌍수정(雙樹亭)에서 인조는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이곳에 쌍수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조대에 ![]() 공주 진남루(鎭南樓) 공산성의 남문. 높은 석축기단을 좌우 두 석축기단에 걸쳐 누각을 세워 ![]() 충주 충렬사(忠烈祠) 임경업어제비(林慶業御製碑) 충주 충렬사에 배향된 충민공(忠愍公) 정조의 어제비. 임경업은 조선 인조 때의 활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억울하게 고려 무신 최영(崔瑩)과 함께 무속신앙에서 ![]() 충주 약사(藥寺)의 약사전과 삼층석탑 약사는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단호사(丹湖寺)의 옛 이름.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약사전 내에는 고려시대 철불좌상 앞뜰의 3층석탑과 깊게 휜 소나무가 ![]() 충주 관아 비석 조선시대 관아 근처에는 전임 수령을 대개는 수령들의 치적과 무관하게 ![]() 폭포 충주와 제천 사이의 어느 산속에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길이 없다. 물줄기가 용의 모습을 닮았다. 여름철 ![]() 충주 육각당(六角亭) 연꽃이 만발한 연못 한가운데 있는 현재 육각정과 연못은 없어지고 그 자리 ![]() 대구 거리 상점들이 즐비한 대구의 거리. 한복 ![]() 대구 달성공원(達成公園) 달성은 본래 삼국시대의 성곽인데, 도로를 만들어 공원으로 사용했다. 세웠다고 하는데, 사진에 보이는 ![]() 부산 일본인 거리 부산의 일본인 거리. 지게로 ![]() 부산항 부산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 일제는 1905년 전후 경부선 철도 개통과 오가던 배) 취항, 부산항 축항(築港) 부산을 한국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다. 아미산에서 내려다 본 부산항. ![]() 부산 초량 부산 용두산 아래 초량은 숙종대부터 개항 이후 이곳은 일본인 거류지가 되었다. ![]() 부산항 매립지 부산은 연안의 땅이 몹시 좁았기 때문에 1902년 개펄 매립공사를 시작했다. 부두지역이 확대되어 세관과 제1부두가 완성됐다. ![]() 부산항 잔교(棧橋) 1905년 관부연락선이 취항하자 일본에서 이에 일제는 1906년 항만에 철도잔교를 사진은 관부연락선에서 내려 잔교를 건너는 일본인들. ![]() 부산세관 부산이 무역항이 되면서 관세수입이 증가하자 부산세관으로 이름이 바뀐 1906년 무렵 사진은 공사에 필요한 목재를 나르는 장면으로 보인다. ![]() 부산 일본군수비대 1895년 일본군이 부산에 주둔했지만, 수영마저 폐지되고 진위대(鎭衛隊)도 북쪽 기슭에 병사를 짓고 주둔하다가 훗날 ![]() 목포이사청과 우편국 목포는 1897년 개항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일본 기관들이 들어섰고 ![]() 군산 전경 1899년 개항한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미곡반출의 관문이었던 것. 사진에 ![]() 목포 시가 바다가 보이는 목포 시가지. 일본인 거류지로 보인다. ![]() 함흥 남대문 함흥성의 정문으로 남화문(南華門) 왼쪽에 보이는 종각의 범종은 현종 때 오가는 사람이 많고 상점이 보이는 것으로 ![]() 함흥 북문과 성천강 함경도에서 ![]() 함흥 만세교(萬歲橋) 성천강을 가로지른 나무다리로, 군왕의 뜻에서 조선 태조가 붙인 이름이라 한다. 일본군이 1908년 다시 세웠으나, 정월대보름에는 이곳에서 다리밟기 놀이를 했다. ![]() 함흥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 배향과 지방민의 유생들이 모여 있는 누각이 제월루(霽月樓)다.대성전과 ![]() 함흥의 한국인 마을 함흥 어딘가에 있었을 한국인 마을. 물건을 이고 가는 아낙, 아이들, 강아지까지 ![]() 함흥 동문 밖 귀주사(歸州寺) 고려 때 창건된 귀주사는 조선 태조 대웅전 앞에서 일본인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함흥 남문 밖 거리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 한가운데 짐을 분위기로 봐서는 장터인 듯하다. 사진 옆으로 더벅머리 청년이 지나간다. ![]() 회령 시가지 회령은 함경북도 국경지역으로 조선 두만강 연안의 이 도시는 탄광 덕분에 빠르게 회령 시가지에 소달구지들이 분주히 오간다. 전선줄이 하늘을 가른다. ![]() 회령 동문 안 거리 회령 동문 어귀의 풍경. 쉬고 있는 성을 나서는 아낙의 모습이 마냥 평화롭다. ![]() 회령우편국 회령에 설치돼 있던 우편국 전경 ![]() 회령 현충사비(顯忠祠碑) 회령읍내의 현충사에 있는 비. 임진왜란 때 기려 세운 것으로, 높이 182㎝, 너비 60㎝ ![]() 배로 두만강을 건너는 풍경 두만강을 건너면 간도(間島)다. 많은 벗어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간도지방으로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본 관헌들은 ![]() 훈춘(琿春) 시가 훈춘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현의 920년 이른바 ‘훈춘 사건’이 일어나 ![]() 옌지(延吉) 국자가(局子街) 중국 지린성의 옌지에도 한국인이 많이 국자가는 옌지의 중심지인데, 사진은 청나라 ![]() 안둥현(安東縣) 부두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도시로 지금의 단둥(丹東). 한국인들이 만주나 중국으로 나가기 위해 사진은 안둥 부두에 정박한 한국 사람들의 목선이다.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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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942 |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2| | 2020-09-18 | 김현 |
| 97941 | 어느 불효자의 회한의 글|2| | 2020-09-18 | 김현 |
| 97940 | 우리나라 100년전고적들|1| | 2020-09-18 | 강헌모 |
| 97939 | 잃어버린 딸을 만나다 | 2020-09-18 | 강헌모 |
| 97938 | 노인의 날이 되기까지 | 2020-09-18 | 이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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