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00번째 기사를 송고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정직한 고백... '잡문'이면 어떠리
오늘 500번째 기사를 송고하다... 봉헌기도는 1천번
<오마이뉴스> '기사쓰기' 방의 '기사현황'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이 몇 개인지를 알 수 있다. '등록기사'라는 표기 옆에 '561건'이라는 표시가 현재 올라 있다. 그리고 내가 수령했거나 수령할 몇 백만의 원고료 총액도 함께 볼 수 있다.
기사쓰기 방의 기사현황 판에는 오늘 현재 '561'이라는 숫자가 떠 있지만, 내 컴퓨터의 '문서 방'에는 며칠 전에 올린 맨 마지막 글에 '500'이라는 숫자가 달려 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현재까지 도합 500개의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올린 것이다.
내 컴퓨터 문서 방의 글 숫자와 오마이뉴스 기사현황 판의 등록기사 건수가 다른 이유는 연재 형식으로 올려진 글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가지 글을 여러 개로 나누어 올린 탓이다. 일단은 글이 길어서 적당히 나누어 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별도의 제목을 달아 별개 기사로 처리한 것들도 많다.
그런 연유로 내 컴퓨터 문서 방의 글 수와 오마이뉴스 등록기사 수가 무려 61개나 차이가 난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 현재까지 오마이뉴스에 500개의 글을 쓴 셈이다. 여러 번으로 나뉘어 올려지고 별도의 제목을 가진 글들도 내 컴퓨터에는 하나의 글로 저장되어 있으니….
내가 오마이뉴스에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한 때는 2001년 7월이다. 13일 오전 10시 14분에 '미디어'란에 올려진 '언론개혁 운동의 투명성과 명확한 좌표를 위하여'라는 글이 오마이뉴스 지면에 최초로 게재된 글이다.
그 글을 시작으로, 그리고 그때부터 내 '고정 코너'를 유지하며 만 5년 동안 500개의 글을 썼으니 인터넷상에서 비교적 부지런히 내 '존재 증명'을 해온 셈이다. 나는 대부분의 글을 일단 오마이뉴스에 올리고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정식 기사로 채택해준 다음 그 글을 다른 사이트들에도 올리는데, <가톨릭 굿 뉴스> 같은 경우는 오로지 그 곳에만 올린 종교 관련 글들도 꽤 많다. 헤아려보니 100개도 넘는 것 같다.
그 외의 사이트들에도 그 한 곳에만 올린 특수한 성격의 글들이 꽤 있다. 그런 글들까지 다 합하면 나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상용화하면서 살아온 지난 몇 년 동안 웹상에 참으로 많은 잡문을 썼고, 잡문 속에서 내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온 셈이다.
여기에서 '잡문'이라는 표기에 대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진심으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별스럽지는 않지만 '작가'라는 명색을 지닌 사람이기에 일단은 창작품이 내 본령이다. 소설과 시, 문학적 향기를 지닌 수필이나 논고 따위 문학 장르에 해당하는 글이 아닌 글들은 그냥 편의상 잡문으로 구분한다.
잡문(雜文)은 사전의 풀이대로 '어떤 뚜렷한 형식이 없이 닥치는 대로 쓰는 글'이다. 정말 그것을 실감하면서 글을 쓴다. 어떤 형식이나 격식에 얽매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이 잡문이다. 나는 사전의 풀이와 '자유로움'에 기준하여 '잡문'이라는 표기를 쓸 뿐이지 잡문을 평가절하 하는 마음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짧은 잡문 하나라도 글의 가치를 따져보며, 글에 대한 기본적인 외경심을 갖고 글을 쓴다.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
잡문 하나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내가 부여받은 '달란트'의 소산으로 여긴다. 하느님께 내 글과 노고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글을 쓸 때마다(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성호를 긋고 '봉헌의 기도'를 바치곤 한다.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설 때 내 보따리 속에서 진실과 정직의 이름으로 감히 풀어놓을 수 있는 것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작가 지요하는 끝났다"고 하지만...
내 본업인 소설 창작에 전념하지 못하고 잡문에 열중하며 사는 세월 속에서 갖는 비애도 사실은 크고 무겁다. 오래 전부터 작가로서의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아왔다.
작가로서의 업적이 빈약한 데다가 스스로 능력의 한계도 절감하게 되고, 거기다가 여전히 창작에 전념하지 못하는 난분분한 세월을 살다보니, 어느덧 이순을 목전에 둔 지금에는 체념과 포기의 언저리에서 그저 한숨만 쉬는 꼴이다.
이제는 어디 가서 내가 작가라는 말을 하기도 겸연쩍다. 내가 과연 작가인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도 실은 무안하다. 소설은 쓰지 않고 웹상에 부지런히 잡문만 쓰는 내 꼴을 유심히 살핀 한 친구는 "아무개는 이제 끝났다"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잡문을 많이 쓰다 보면 그 관성에 치여서 고도의 긴장과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소설은 아예 쓸 수가 없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또 어떤 친구는 "아무개는 이제 작가(作家)가 아니고 잡가(雜家)다"라는 말을 했다.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소설 집필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만날 잡문만 쓰고 있으니, 차라리 '잡가'라고 하는 편이 옳다.
하지만 나는 꽤 모욕적인 것 같은(한편으로는 자조적이기도 한) 이 '잡가'라는 말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감은 갖지 않는다. 잡가도 잡가 나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왕 잡가 소리를 들을 바에는 정말 잡가답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잡문 하나도 내 노고와 심령의 소산이므로, 나름의 향기와 생명력을 지닌 글이 되기를 소망한다.
어느 친구의 지적대로 잡문을 많이 쓰다 보니 일종의 '관성'이 생긴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잡문으로 쓸 수 있는 글감들은 늘 넘쳐나는 상태다. 노고에 대한 두려움이나 중압감도 거의 없다. 잡문은 아무 때라도, 밥을 먹다가도 손쉽게 쓸 수 있다. 노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적거려 본 때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소설은 다르다. 노고에 대한 두려움과 중압감이 너무 크다. 진공상태와도 같은 긴장을 얻지 못하면 아예 착수를 하지 못한다. 신경을 분산시키는 일이 전혀 없어야 한다. 옆구리에 낚시 바늘처럼 걸려 있는 일이 있으면 긴장을 모을 수가 없다. 그것은 나의 분명한 약점이고 한계다.
어떻게 신경을 분산시키는 일이 없이 세상을 살 수 있는가. 누구나 수렁 같은 온갖 잡사 속에서 살기 마련 아닌가. 작가라면 기구한 사연도 겪으며 살아야 하지 않는가. 기구한 사연과 역경 속에서도 창작에 매진하여 훌륭한 작품을 써낸 작가들도 많지 않은가. 세상 잡사와 신경 분산을 겪지 않고 오로지 작품 집필에만 몰두할 수 있는 날씬한 조건 속에서 사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그러니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는 것은 핑계일 터였다. 내 능력의 한계를 변명하는(그래서 초라한 작가 명색을 더욱 극명하게 노정하는) 짓일 뿐이었다.
하여 내 마음은 더욱 우울하고 슬프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초조감과 위기의식을 갖는 것조차도 겸연쩍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내 소설이 제값을 받을지 너무도 의문스러운 오늘의 이런저런 문학 환경을 돌아보면 더욱 마음이 위축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절로 의욕이 반감되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소설 작업에 대한 꿈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비록 체념과 포기의 언저리에서 자맥질은 할지언정(그것으로 여유를 가장하기도 하면서), 소설 작업에만 전력투구할 수 있는 세월을 소망하고 있다.
문학청년 시절부터 지금껏 그냥 소재로만 남아 있는 이야기들을 포함하여 아직도 많은 소설 거리들이 쌓여 있다. 그 얘기들을 죽을 때까지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 같다.
육필로 하룻밤에 단편 100매를 썼던 청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가지고 있다. 200자 원고지 한 장에 1만원을 주는 지면에 이틀 동안 150매의 소설을 써서 주고 편집자로부터 감동적인 작품을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추억도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정말 이런저런 낚시 바늘들에 내 몸과 마음이 꿰어 지금 당장에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대신, 앞으로도 당분간은 잡문에 계속 열중하고자 한다. 잡문을 쓰는 것이 내 소설 작업에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결코 아니다.
잡문을 쓰다 보면 훗날 소설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도 종종 얻는다. 내가 쓴 잡문들 중에는 정말이지 나중에 소설로 확대할 수 있는 얘기들이 많다. 어찌 보면 내 잡문 쓰기는 소설 거리들을 비축해놓는 일이기도 할 것 같다.
잡문 쓰기가 어느 모로는 내 '슬픔'들을 지속적으로 응축시키며 명료하게 하는 일이기도 함으로, 또 매일매일 기도하며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관성'을 스스로 지속시키는 일이기도 함으로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잡문을 쓸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오로지 소설 작업에만 전념하는 그 날까지는….
500건의 '잡문', 내 정직한 고백이었네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일을 하면서 오마이뉴스 편집 기자들의 감각과 능력에 감탄한 적이 많다. 아주 가끔은 내 글의 미세한 부분에 편집 기자가 손을 대기도 하는데 나는 대체로 수긍을 하는 편이다. 때로는 의아스럽고 언짢은 경우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화를 내거나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항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감사하고 싶은 것은 내 글의 제목들에 신경을 써준 일이다. 나는 글 내용의 축약인 제목에 대해서는 거의 매번 자신을 갖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제목이 고쳐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고쳐진 제목들은 대체로 마음에 든다. 또 그러다 보니 제목에 별로 고심을 하지 않고 글을 올리는 습관도 생기는 것 같다.
아무튼 별로 고심을 하지 않았거나 미덥지 않았던 제목이 산뜻한 제목으로 바뀌어져 오를 때는 편집자의 감각과 순발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나도 한때는 지역에서 잡지를 만들고 신문을 만들면서 남의 글을 고치고 제목을 바꾸는 일에 남다른 '재간'을 발휘했지 싶은데, 명색 작가라는 사람의 글도 가끔은 미세한 부분에 편집자가 손을 대고 제목을 고쳐주기도 하니, 그것도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이다.
하여간 오늘 현재 오마이뉴스에 500개(561건)의 글을 썼다. 글의 성격 때문에 오마이뉴스에는 올리지 않고 다른 사이트들에만 올린 글들까지 합하면 웹상에 700편이 넘는 글을 썼지 싶다. 물론 나 역시 인터넷을 상용화하며 사는 덕이다.
내가 그만큼 작가로서 창작에 전념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테지만, 나로 하여금 잡문이라도 실컷 쓰게 해준 인터넷 매체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인터넷 매체 덕분에 열심히 현실 발언도 하면서 스스로 존재 증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잡문은 내게 있어 삶의 정직한 고백이다. 진실과 양심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글이며, 내 삶의 명확한 기록이기도 하다. 인터넷 덕분에 삶의 기록들을 많이 장만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덧없고 허무한 세상을 생각하면 그것 역시 저 허공의 티끌 같은 것이지만….
비록 허공의 티끌 같은 것일지라도 내가 시간과 노고를 바치고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기울여 쓴 글들이니(더욱이 하느님께 '봉헌의 기도'를 바치고 쓴 글들이니) 과히 부끄러운 글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컴퓨터의 한 문서 방에 들어 있는 글들의 일련 번호가 500이라는 숫자에 다다른 것을 보게 되니 문득 떠오르고 되새겨지는 감회가 있어, 명색 문인인 내 삶과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 보고자 하는 뜻으로 오늘은 이런 글을 써보았다.
2006-06-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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