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장미 한 송이 천원, 맛있는 곰보 빵 한 개 천원.
값이 같습니다.
만약 당신 수중에 가진 돈이 전부 합쳐서 천원.
둘 중에서 하나를 꼭 사야 한다면
당신은 장미꽃을 사시겠습니까? 빵을 사시겠습니까?
물론 아무리 장미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드라도
그 당시에 배가 고프다면 당연히 빵을 사겠죠?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배가 고프지 않다면....? 상항이 다르겠죠?
빵을 사는 사람과 꽃을 사는 사람으로 나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장미꽃도 시들고 빵도 맛이 덜하겠죠.
조건은 똑 같은데도 장미꽃을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아직도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어느 정도 해결됐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꽃을 사는 사람이 늘어나야 할 때입니다.
다시 말해 문화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우선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데
대학가의 서점이 차츰 호프집이나 성인 PC방으로 바뀌는 게 현실입니다.
지하철을 타 보면 책을 읽는 사람은 한 두 사람뿐이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앉았습니다.
정말 속이 상합니다. 뭔가 끓어올라 속에서 폭발할 것 같습니다.
서점이 문을 닫고, 출판사가 문을 닫고....
이 모든 것이 대학입시의 병폐를 고치지 못한 잘못 된 교육제도 탓입니다.
내 아이가 교과서 이외의 책을 보면 마치 금서(禁書)를 읽는 것처럼 야단을 쳐야하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고 원망스럽습니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러한 간접체험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 데 있어 독서야 말로 가장 좋은 수단이며 동시에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보면 너무나 절망적입니다. 현재와 같이 단순 변별력 판정을 우선시하는 입학시험 입사시험 틀에서는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다가는 일생을 망칠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실정이니 어떻게 내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겠습니까?
책을 읽는 것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버릇을 들이든가 늦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습관화가 되어 있어야 하거늘 전혀 그렇지 못한 현실이기에 서점이 문을 닫고, 출판사가 문을 닫고, 지하철에서 젊은이 대부분이 손에 책 대신 핸드폰을 쥐고 게임에 빠지거나 문자 메시지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손에 천원이 생기거든
설령 배가 좀 시장 하드라도 장미꽃을 사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경제적 사고에서 문화적 사고로 의식전환을 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감동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에게 감동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종교는 바로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가르침이 아닙니까? 특히나 사랑을 제 1덕목으로 가르치는 우리 가톨릭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이며 이 종교에 선택 받은 우리들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자격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들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미사에는 음악이 따르며 그것은 곧 문화적 소양을 쌓는 기초이기도 합니다.
1년에 종교서적 한 권 안 읽고 나는 왜 믿음이 안 생길까 한탄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거저 얻었다 해도 바탕이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씨, 자갈밭에 떨어진 씨,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 비옥한 땅에 덜어진 씨...
그 중에 어떤 씨앗이 큰 나무가 되어 큰 그늘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악한 자에게 빼앗기고, 오래가지 못하고,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 모두가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예순 배. 적어도 서른 배는 낸다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바 있으십니다.(마태 13장 18절-23절)
그러니 이제 우리부터 빵 대신 장미꽃을 사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