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 왔었지요
아마도 1968년의 현실인듯 기억이 남니다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일할때지요
당시 수출 액이 1억불도 안되던 때 였지요
한집의 아버지의 소득이 하루 세끼 때우기에도 부족하면 불행한 일이지요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서 지내던 때였지요
지하자원이 없는 남한의 실정은 뭐하나 해외에 내다 팔아 돈을 벌어들일
수가 없었지요
그저 할수있는것은 옷을 만들어 내다파는 수밖에 없었지요
구로 공단에 공장을 짓고 옷을 만들기 시작했었다고 하지요
아가씨들이 이 공장에서 옷을 만들었지요
이 옷을 수출 했답니다
옷감도 안좋고 디자인도 형편없어서 미국 배화점에서 떰핑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품질이 않좋으니 우리것을 사갈리 없으니 싸구려로 팔고있었다 하지요
우리 나라 전체 해외 수출액이 1억불은 커녕 몇천만불 정도 밖에
안됐었지요
공장내에서 기숙을 하면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공순이라 불렀었답니다
먹고 살기 힘드니 서울로 아가씨들 올라와 이렇게 공장에서 일을 했지요
당시 현대에서 엔진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는
얘기가 떠돌았지요
휘발유나 경유를 순간 폭발시켜 회전력을 얻어내는 자동차 엔진은 열에
대한 변형 이론을 알아야만 하지요
피스톤이 열을 받으면 늘어나 씨린더에 붙어버렸으니 시동이 이루어지지
않지요
아무튼 당시 우리의 공산품 생산 능력은 "0"상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
었지요
결국 기능과 기술 수준을 향상 시키기 위해 일본으로 기술 연수를 떠나는
시대가 있었지요
일본으로 부터 배상금을 받아내고 해외 차관을 어렵게 끌어내 공장을
졌다고 하지요
당시 고속도로를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경부 고속 도로를 깔았지요
울산에 조선 공장을 세우고 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부품은 모두 수입하여
조립하고 바다한가운데에서 철판을 용접해서 껍데기만 만들었다고 하지요
용접하다가 부주의로 떨어져 바닷속으로 빠져 죽는 공원(기능공)도
있었다고 했었지요
이렇게 만든 배는 전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가격이 쌌던것으로 들어 알고
있지요
수출목표액을 정하고 달성 할때마다 기념 행사를 해서 공로기업이나
공로자에게 표창을 했었지요
이렇게 지내다보니 1980년 경인가 그때에는 인력이 부족했었지요
물론 월 소득은 선진국과 째비도 않됐지만 일자리가 많았었지요
점차 수출액은 올랐지만 저품질 공산품으로 이익이 없거나 아애 없어서
아마도 국내 부도상태가 돼서 IMF 시대가 온것으로 여겨집니다
품질 향상을 위해 재일 교포등 해외 교포들의 도움을 받았었다고
신문 보도를 통해 알수 있었지요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내 세계 경쟁력에서 해외 기업과 견주어야
하지요
트럼프가 이런 얘길 했었지요
한국은 부자라고 말입니다
빈곤한 우리를 국민소득 3만불 시대로 이루어낸 고마운 이들이 있었지요
공장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또 지내오면서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 까지
지내왔던 생활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제 익어가는 나이가 됐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열매가 익어가듯 말입니다
(작성: 2021. 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