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소나무 들은 세월의 풍상(風霜)을 견디고 서있는 것같습니다. 그리고 홍련이 피는 연못속에 서있는 정자인 활래정도 일품입니다. 여름밤 활래정 마루에 앉아 연향을 맡다보면 신선 팔자가 부럽지 않답니다. 또 주변에는 경포대를 비롯하여 삼일포, 설악산,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팔경이 시인과 묵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내놓으라하는 풍류 남아들은 선교장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관동팔경을 둘러보러 다녔을 것입니다. 손님들이 묵는 행랑채의 길이만 해도 60m가 넘고, 23개의 방이 있었답니다. 조선 최고의 저택인 이 집의 큰 사랑채 이름은 열화당 이랍니다. [기쁘게 이야기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수만석을 하는 부잣집이었던 이 집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기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일이었답니다. [열화]야말로 인생최고의 행복이라고 여기면서, 그런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겠지요. |
돈도 가져보고 권세도 가져봤지만, 궁국적으로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일은 다름아닌 인간들 끼리의 이야기에 있었다고 합니다. 열화당이란 편액(扁額)에는 이러한 삶의 철학이 박혀있다고 봅니다. 249회 [김종규 쌀롱]이 나간 뒤에 독자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많은 격려를 받았답니다. 격려를 준 연령층은 주로 50~60대의 장년층 들이었다고 하지요. 우리 사회에 기쁘게 이야기를 나눌만한 [열화]의 장소가 너무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 이었습니다. 가봐야 술집이거나 골푸장 이야기가 주된 화제가 됩니다. 공이 들어갔느니 안 들어갔느니를 가지고 어떻게 한 두시간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요. 그러다 보니 모두가 삶의 공허를 느낍니다. 정년이 되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논하고, 시서화를 이야기하면서 삶의 허무를 극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은 악기의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