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에 어릴 적 친구들을 찾는 프로가 있습니다.
대개 연예계 스타들이 게스트로 나와 많게는 50에서 적게는 20여 년 전 초등학교 동창들을 찾는 프로그램인데, 세월에 묻혀 많이 변해버린 친구들을 찾아 긴가 싶다하면 손을 내밀고 “친구야!”하고 외칩니다.
다행히 맞으면 “반갑다, 친구야.”로 응수해주고 아니면 “처음 뵙겠습니다.”하여 보는 이들도 즐겁게 하는 프로입니다.
이런저런 식으로 친구들을 다 찾은 다음 몇 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 뒤풀이하는 과정도 보여주는데 실로 오랜 세월 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감회가 새로워지고 잔잔한 감동도 맛 보곤 합니다.
만일 내가 저 자리에 나가 30여 년 전 친구들을 찾는다면 어떠할까, 과연 한 번에 친구들을 다 찾아낼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테스트를 해 봐도 선뜻 자신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아련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지금 그 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가끔 TV에서 그 프로를 보고나면 이렇게 저렇게 저 혼자 상상 속에 빠져들곤 합니다.
그런데 저에겐 더 각별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나서 자라 멋대가리 없는 고향을 둔 탓에 남들처럼 향수와 함께 더불어 묻어나는 보고 싶은 친구에 대한 마음이 덜 할진 몰라도 저에게도 분명히 보고 싶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이사를 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덕분에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는지는 몰라도 어렸을 적 마을에 대한 애정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친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성당 친구들이 가끔 생각나기도 했는데, 이 프로를 접하고서부터 더욱 그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사를 다니면 이 성당 저 성당을 옮기게 마련인데 다행히 저는 한 성당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었고 그 곳에서 터줏대감 노릇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이사를 다니지 않아 오래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평일이면 늘 학교에서, 또 주일이면 늘 성당에서 그리고 동네에서 함께 뛰놀고 추억을 쌓아왔던 친구들인데 언제인지서부터 소식이 두절되어 만날 길이 없었습니다.
굿뉴스에 드나들었더라면 여기서나마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이곳에서 녀석들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에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그 친구들로부터 기대도 안했던 연락이 온 것입니다.
저를 백방으로 찾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얼마 전부터 몇몇 친구들이 연락이 닿아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만 저만 연락이 되질 않아 늘 녀석들이 모이면 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녀석이 마음을 먹고 이리저리 수소문하고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저의 연락처를 알아냈다며 친구들 연락처를 알려주는데 저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대충 모인다는 녀석들을 감지할 수 있었는데, 그만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들까지......바꿔 말하면 말 그대로 샅샅이 훑어서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김지선 귀환 환영 모임’이란 타이틀로 며칠 뒤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 모임 장소와 시간을 받았고 전 설레는 마음으로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늘 아내에게 녀석들 이야기를 가끔 한 탓에 얼굴은 몰라도 이름 석 자는 꿰고 있는 아내도 덩달아 반가워해줘 기쁨은 한층 더 했습니다.
이윽고 당일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속장소로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교통편을 이용해 꽤 지나다닌 종로거리이건만 보도를 이용해 걸어서 종로 길을 헤맨 게 언제던가, 감회에 젖으며 약속장소에 도착한 순간 환호와 반가움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짧게는 15년에서 길게는 20여 년 만에 만난 어렸을 적 친구들을 만나며 우리는 그때 그 추억들을 안주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추억,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건만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떠오르는 그 당시 일화들, 울고 웃으며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했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데 잘 나간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친구, 이번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이 출판사를 열었다는 친구,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 평범한 주부, 그리고 신부님(우리 동기에서 신부님이 있는데 성함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일들은 서로 달라도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마치 모두가 제 일인 양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날 늦게까지 이어지는 자리였지만 서로가 헤어지기 아쉬워 잡은 손들을 놓기까지 인사들이 길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며칠 전 Y중학교에서 초대를 받아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명예교사로 위촉한다는 ‘위촉장’도 받았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 그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을 때 지금 이 자리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 자리인지를 느끼며 저는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에게 값진 이야기들을 해 주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운동장을 지나 걸어 나갈 때, 전 행복함을 느끼며 오늘 받은 소정의 강의료를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요즘 들어 이어지는 행복한 일들이 비록 큰 재산이 굴러들어오는 일은 아닐지라도 저는 그 이상으로 행운이 제게만 밀려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 때 너무도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며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결코 좌절할 필요가 없구나함을 느낍니다.
그저 교단에 서서 학생들 앞에서 강의 한 번 하고, 어렸을 적 친구들을 몇 십 년 만에 만났을 뿐인데 저는 왜 이리 행복한지, 이 글을 쓰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으니 무슨 조환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