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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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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을 만나다
묵주는 성모님과 통화하는 전화 줄이다. 신자라면 매일 기도를 한다. 찬미와 감사 그리고 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듯 성모님을 부르는 것이 기도이다. 그 간절함이 성모 마리아님을 통해 예수님께 전달되기를 바라서이다. 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 도쿄에 있는 친척 할아버지의 초청으로 일본에 간 적이 있었다.
가기 전 신문에서 오기선 신부님이 쓴 일본 아키타에 눈물을 흘리고 양 손바닥에 피가 흐르는 목각 성모님에 관한 기적을 읽었다. 일본에 가면 ‘그곳에 꼭 가보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키타 성모님을 만나기 위해 9일 기도를 시작했다. 일본에 갔지만 언어 소통이 자유롭지 못해 시내 구경조차 누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친척 할아버지께 아키타 이야기를 했더니 그곳에 가는 표가 매진되었다고 하셨다. 내 마음은 너무 간절했다. 만일 ‘돌아가신 어머니가 일본 어느 시골에 생환하셨다면 내가 찾아가 보지 않겠느냐’는 심정이었다. 할아버지 집 바로 옆에 중학교에 다니는 손녀가 있었다.
가톨릭 계통의 중학교에 한국인 여자 선생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여중생을 따라 그 학교의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은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아키타 성모님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도쿄 시내 롯폰기 사정목(四丁目)에 가면 프란치스코 채플센터(성당)에 한국인 신부님과 수녀님이 많이 있다고 했다. 학교 안에 있는 성당에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묵주를 들고 용감하게 버스를 타고 롯폰기를 찾아 나섰다. 한자 간판을 보며 서투른 일본어와 영어로 손짓 발짓을 하며 겨우 성당을 찾았고 한국인 수녀님 한 분을 만났다. 대구에서 오신 김 안토니아 수녀님이다. 나는 친자매를 만난 듯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한 달 전에 아키타에 다녀오셨다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번 금요일 12시에 우에노 역에서 만나 그곳에 가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도 점심도 안 먹은 오후 3시였다. 그때는 잘못하면 조총련에 납치된다 해서 두려웠다. 할아버지께선 “기특하다”며 용돈까지 주셨다. 금요일 수녀님을 만나 기차를 타고 우에노 역을 출발해서 아키타로 갔다. 밤 10시경 도착했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고 날씨가 추웠다. 우에노 역에서 김 수녀님이 그곳 수녀원에 전화해 놓아 일본 수녀님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오셨다.
이곳은 재속 수녀회인 성체봉사회 수녀원이라 했다. 성당 건물은 나지막하고 작았다. 성모상은 성당 왼쪽 구석에 조그맣게 서 계셨다. 성모상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은 주름투성이이고 세속의 괴로움이 밴 애처로운 노파처럼 보였다. 눈을 감았다 다시 떴지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안토니아 수녀님이 나의 손을 끌고 앞에 가서 기도하자고 했다.
성모님의 무릎 아래 가까이서 뵈니 살아있는 듯 목각의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눈동자도 생기가 있고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그곳 수녀원 규칙이 새벽 4시에 기상해서 기도한다고 해서 숙소로 갔다. 묵주 기도로 열심히 성모님을 찾았던 응답을 주신 듯했다.
‘이 세상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어려운 노인들을 성모님 대하듯 열심히 공경하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 같았다. 황소지 아기 예수의 데레사(부산교구 우동본당)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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