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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한 일본 큐슈 여행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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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8-08 ㅣ No.103080

 

             가족과 함께 한 일본 큐슈 여행 ①





좋은 시절 덕분에 종종 외국 나들이를 한다. 한국소설가협회와 한국가톨릭문인협회 행사에 참여하여 외국 나들이를 한 경험도 있고, 태안문화원 행사로 중국을 여행한 경험도 있다.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대북 지원단체인 '평화3000'의 일원으로 지난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일이다.

외국 나들이를 할 때마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곤 했다. 나 혼자 여행을 한다는 사실에서(물론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이지만) 쓸쓸함과 허전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가 2004년 6월 태안문화원 행사에 참여하여 중국 산동반도를 여행하면서, 앞으로는 가족과 함께 외국 여행을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2004년 8월 최초의 가족 외국 여행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우리 가족 12명으로 단체를 이루어서 3박 4일 동안 중국의 북경과 만리장성을 구경한 일이 그것이다. 이 가족 행사는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여러 가지로 기쁨이 컸다. 팔순이 넘으신 노인네께서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을 너끈히 걸으시는 것을 보는 재미는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을 것 같았다.


▲ 2004년 8월 중국 북경 여행시 이화원 뜰을 걸으시는 어머니
ⓒ 지요하

그때로부터 거의 2년이 지난 시기에 나는 또 한번 가족 여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지난 7월 30일-8월 2일, 3박 4일 일정으로 가족과 함께 일본의 큐슈 지방을 관광한 일이 그것이다.

우선은 태안문화원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태안문화원이 광주(光州) 조이트래블 여행사의 관광상품을 적극 수용하여 일본 큐슈 지방 '문화탐방' 행사를 기획한 데서 우리 가족의 일본 여행 계획도 수립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안문화원의 공문을 접하는 순간부터 나는 가족 여행을 생각했다. 여름방학 시기인 데다가 비용도 저렴했고, 특히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고 오는 것이 매력을 느끼게 했다. 이미 2004년 6월 평택 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을 갔다 온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온 가족이 배를 타고 일본을 가고 오는 오붓한 여행에 부쩍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7월 30일 오후 부산항국제터미널에서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
ⓒ 지요하

게다가 일본에서의 이틀 밤 숙박도 호텔이 아닌 콘도를 이용한다고 했다. 여러 개 호텔 방으로 가족이 분산되지 않고, 콘도 한 채에 온 가족이 함께 들어가서 오붓함을 즐길 수 있으니 참으로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우리 가족 10명 정도가 함께 갈 수 있는지를 태안문화원에 적극 문의해 보았으나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태안문화원은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 원래 계획과는 달리 1진과 2진으로 나누어 두 차례 일본 문화탐방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태안문화원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포기하고 직접 여행사와 교섭하여 우리 가족만으로 단체를 이루어 별도로 일본 큐슈 관광을 하기로 했다.

내가 12인승 승합차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7급 국가유공자인 덕에 고속도로사용료와 주차료 등을 50% 할인 받는 점을 고려하여 내 승합차로 부산까지 가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 여행 인원도 12명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우영 문화원장님이 내 운전 고생을 걱정해주신 나머지 태안신도신용협동조합에 광주 조이트래블 여행사의 일본 큐슈 관광상품 정보를 주신 결과 우리 가족 12명은 '태안신도신협산악회'의 34분과 함께 버스를 이용하여 부산을 가고 오고, 더욱 재미있게 일본 큐슈 관광을 할 수 있었다.


▲ 드디어 '뉴 카멜리아' 호에 오른 다음 저녁 해풍을 즐기며 갑판을 거니시는 어머니와 가족들
ⓒ 지요하

우리 가족 12명은 올해 연세 83세이신 어머니를 비롯하여 우리 부부와 딸아이(대1), 아들녀석(고1), 지난해 12월 엄마를 잃은 후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두 조카아이(중1, 초3), 사촌 형님의 손자(중1), 생질아이(고2), 경기도 안산에서 사는 누이동생과 딸아이(중2), 서울 봉천동에서 사는 처조카(고1) 등으로 김씨, 박씨, 지씨, 한씨 4개 성씨가 모인 형국이었다. 이렇게 4개 성씨가 '한 가족'을 이루고 외국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일 터였다.

딸아이는 고2 시절에, 아들녀석은 지난 5월 일본 수학여행을 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같은 큐슈지만 화산 폭발 위험에 따른 통제로 '아소산'을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아들녀석은 큐슈가 아닌 '오사카/교토/나라' 관광을 했다는 이유로 이번 가족 여행에 동참하기를 원했고, 나는 기꺼이 수용해 주었다.

나는 되도록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가기를 원했고, 아이들을 보며 내내 즐거운 마음이었다. 아이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일본 여행을 할 기회가 또 있겠지만, 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소년 시절에 어른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핵가족 이상의 '범(範)가족'에 대한 체감 경험을 가지게 하고 싶었다. 오래 기억될 좋은 추억거리를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내 의도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일이었다. 어머니 생전에 가까운 일본이라도 구경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든이 넘으신 노인네를 모시고 간다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3박 4일 정도의 일본 여행은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지난해 12월 둘째 며느리를 잃으신 상심 때문에 처음에는 일본 여행을 사양하셨던 어머니도, 당신께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리고자 하는 내 의도를 받아들여 기꺼이 가족 여행에 동참해 주셨으니 여간 고맙고 다행한 일이 아니다.


▲ 일본 큐슈 후쿠오카항에 도착한 7월 31일 아침 뉴 카멜리아 선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 지요하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동생은 이번의 가족 여행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일용직 기술 근로자인 동생은 4일이나 쉬는 데서 생기게 되는 손실을 우려했고, 일속에 파묻혀 살아야 슬픔을 잊을 수 있다고 했다. 가족 여행에 동참하면 아내 생각이 더 많이 나고, 쓸쓸함과 허전함 때문에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런 동생에게 가족 여행 동참을 강권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 일본 여행에 함께 한 우리 가족에게는 '결손'의 모습이 뚜렷하다. 우선 내 조카아이들은 엄마를 잃은 처지이고, 내 사촌 형님의 손자는 3년 전에 아빠를 잃은 처지이다. 또 태안의 생질아이는 10년 넘게 부모와 생이별한 상태로 살고 있고, 안산에서 사는 생질아이도 사업 실패에 따른 후유증으로 아빠가 다소 몸이 불편한 상태다. 내가 두루두루 나름대로 신경을 써줘야 할 아이들이다. 사실은 그런 연유로 이번 일본 여행에 그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고자 했다.)

이런저런 '결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의 일본 여행은 한마디로 재미있고 즐거웠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사이건 아니건 금세 친숙해졌다. 가족 여행의 즐거움을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잘 체감하는 것 같았다.


2006-08-08 16:41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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