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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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인 내가 책을 쓰고 글을 올리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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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리를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은 아닙니다. 체계적인 교리야 배운 사람들이 하면 될 것이고 저는 성서에 대해서 체험한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려는 대상은 호기심 많은 사람도 아니고 전문적인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성서를 읽고 성인전을 가볍게 읽은 일반 신자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주리고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분들은 구원을 바랍니다. 덕행을 쌓고 싶어합니다. 자유를 목말라 합니다. 그분들은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방법을 몰라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묵묵히 원하는 그분들에게 들으려고 하는 그분들에게 조리있게 말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성서의 지혜에 대해서, 좁은 문에 대해서, 어둔 밤에 대해서, 아가서에 대해서, 산상수훈에 대해서 저는 아직 부자유스럽더라도 신자분들은 자유스러워 지시라고 잘살아 보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묵시록은 새로운 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한시간을 말하면 줄여서 알차게 말해서 좋고 하루를 말하면 자세히 풀어서 말해서 좋고 일생을 말하면 삶이 변화되어 노래가 되게 해서 좋을 일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차안에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늘 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일일이 다 찾아다닐 수는 없고 결국에는 내가 성인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교리상 완덕이야 흉내는 낼 수 있다 하지만 어찌 성인이 되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열망마저도 포기한다면 어찌 그들이 하느님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책 쓸 때는 잘 몰랐었지만 책을 완성해 가면서 보니 곱비신부님 책에서 언지한 대목들을 제가 다 풀었다는 생각입니다. 하기야 누구라도 성서의 통달을 느꼈다면 당연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의 책을 읽으면 성서를 읽게 되어 있고 메시지 책을 접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통달공부를 해가다 보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신자분들은 통달공부야 저의 책을 읽어보면 될 것이고 살아가는 것만 잘 살아가면 될 것이라는 조금은 수월한 마음이 듭니다. 저의 걸어온 길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보시는 바와 같이 무식하고 촌놈이였습니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 희생을 바치고 있을 때 하늘에서 한아름의 빛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간 엎드려저 버렸으며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눈물이 쏟아져 버렸고 그 순간에 신앙에 대한 나의 모든 의구가 풀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서를 보다 머리맡에 덮어두고 자곤 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잠을 자고 있는데 성서에서 “깨어라” 하는 천둥같은 소리가 빛과 함께 튀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나라는 뜻인지,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인지, 복음을 열심히 전하라는 뜻인지, 성서를 열심히 보라는 뜻인지, 항상 잊어버릴 수가 없어서 의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일렌죠지 여사께서 오셔서 광주 임동 주교좌 성당에서 성령세미나가 있다는 말을 저의 작은 어머님께로부터 전해 듣고 성령세미나란 무엇을 하는 것인가 싶어 참석했는데 여러가지 치유도 있었지만 “성서에 대한 갈증이 풀린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군지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더라도 후에라도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셨는데 왜 그 사람만 밝히지 않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지다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외딴 곳에 떨어져 화물차 짐칸에 비스듬히 앉아서 참석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시고 그러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성서를 열심히 보아왔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일렌 죠지 여사께서 해주신 말씀은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 볼 때마다 가끔 떠올려 볼 뿐입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들려왔던 “깨어라” 했던 소리는 너무나 강력하여서 지금도 생생하여서 성서를 연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깨어있도록 아니면 깨어가도록 기억을 상기시켜 주는 중심역할이 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엎드려서 집회서 6장 22절 “지혜는 문자 그대로 지혜라. 아무나 터득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구절을 읽어 내려가다가 가슴속에서 물 속의 공기방울이 솟아오르듯 지혜가 쑥― 솟아 올랐습니다. 그래서 성서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지혜서, 집회서, 잠언서를 연구하게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편 124장 7절 “올무는 끊어지고 우리 영혼은 마치 새와도 같이 사냥꾼의 올무를 벗어났도다” 하는 구절을 읽으면서 영적으로 내 손에서 새가 포르륵 날아가버리는 것을 체험하면서 깜짝 놀라서 성서를 떨어뜨릴 뻔 하였습니다. 갑자기 새가 날아가 버리니까 순간 반사적으로 붙들려고 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에 대한 공부를 하게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강철(바오로) 형제님의 신앙수기「성모님 도우심으로 이룩될 주의 나라 천년왕국」책 덕분에 묵시 3장 8-12절 말씀을 깨달으면서 요한 14장 23-26절의 말씀이 같은 내용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1장 19절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서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듯 동이 트는 것을 체험하고 베드로후서 1장 19절을 깨닫고 재림에 대한 성서 말씀들을 더욱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책 제목(마음 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로 나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는 마음이 되어 침대에 누워있다 하느님께서 갑자기 스며들듯 오시어 팔베게 하시고 나를 끌어 안아 주시는 것을 영적으로 체험하고 왠지 그때 어둔 밤 싯귀의 온갖 풀이가 이제는 만사 땡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후로도 어둔 밤 책을 연구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때인가 ‘정배, 혼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다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묵시 19장 6절 “큰 물소리와도 같고 요란한 천둥소리와도 같은 소리”를 영적으로 들으면서 묵시록을 깨달아 가는데 힘이 되었고 너무나 어려운 부분들은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글을 쓰면서 또는 성서를 되풀이해서 읽어가는 중에 자꾸 깨달아 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는 통달은 기존의 교리를 공부해서 느끼는 통달이 아니라 루가 18장 8절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하는 차원에서 재림시대에 대한 통달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묵시록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늘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왔고 그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교리서나 기타 영성서적, 메시지 등을 검토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찬미하고 덕행을 쌓아갈 수 있도록 지혜롭게 안배하셨다는 생각입니다. 즉 아가서는 세상에서 결혼하는 이치를 비유하여 하느님과 합일하는 것을 깨우쳐 주시고 묵시록의 생명수의 강은 세상에서 농사짓는 법칙을 비유하여 영혼의 농사짓는 법칙을 깨우쳐 주셨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지식은 변변치 못합니다만 모태신앙으로써 또한 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듣고 배워왔던 것과는 다른 것을 말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꼭 같은 말일 바에야 제가 뭐하러 글을 올리고 책을 쓰겠습니까? 저는 이런 글에 대한 부정적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신자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되지 왜 그럴까 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을 쓰지 말고 글을 올리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저가 오기부리는 심정으로는 그럴수 있어도 저의 양심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곱비신부님 메시지 책을 진작 깨달았더라면 너무나 힘들었던 저의 책은 쓰지를 않았을 것입니다.(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하느님께서 메시지로 말고라도 사람의 손으로 묵상하고 쓴 책도 한권쯤은 필요하셔서 이렇게 쓰게 하셨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 지어 가면서 내힘으로는 아찔했던 이 책을 하필이면 왜 나같은 사람이 쓰게 되었나도 생각해 보았지만 차후 누군가가 써야할 책이라는 것과 누군가가 써야할 책이라면 누가 되었던 하느님의 안배로(비록 글을 쓰는 본인은 깨닫지 못했을 지언정) 쓸 수밖에 별수가 따로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저는 꿈에 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외쳐지면서 동시에 세례자 요한이 되어버리는 꿈을 꾸고(꿈이야 어떻겠습니까마는) 제가 해온 일이 그런 일이였고 제가 해가는 일이 재림시대에 세례자 요한 같은 그런 성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공부를 한 사람은 아니지만 성서라면 초등학교 산수책 같고(거룩한 성서를 가볍게 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인전 이라면 숙제가 풀릴 때까지 읽었습니다. 아니 제가 그것을 계획하고 읽었다기보다 상황이 그렇게 읽게 되어서 읽었습니다. 어둔 밤이 무엇인지… 영혼의 성, 칠궁방이 무엇인지 그래서 내 영혼안에 하느님이 임금으로 계시는 우리나라 말로 청와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칠층사다리의 끝은 하늘이요, 긴 터널을 지나면 빛을 보고, 교리서에서도 모든 덕행이 일곱가지라는 것과 정결, 청빈, 순명은 절덕에 포함되는 덕으로써 완덕 생활로 부르시는 덕행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도 요즈음 알쏭달쏭하게 꾸며진 책 보다는 옛날의 성인들의 가르침과 복음 말씀만으로도 더 명확하고 흥미진진하게 말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묵시록에서 1년 12달 다달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저로서는 답답할 뿐입니다. 어찌 이러한 말들을 책의 홍수시대라고 싸잡아서 덮어버릴 수만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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