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9.17)

스크랩 인쇄

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1-09-17 ㅣ No.149791

 

(십자가 밑의 여인들, 루벤스 작)

2021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8,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강의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이곳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어디에 계시기에 그럴까요?

정답은 유튜브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 유튜브 안에는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강의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도 어떤 자료를 찾다가 어떤 분의

강의를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 훌륭한

강의였습니다이 훌륭한 강의를

그것도 공짜로 봐도 되나 싶더군요.

작년부터 계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강조되는 시기에 유튜브를

활용해 강의하는 것은 접근성도 좋고

비용도 무료라는 점에서 소비자에게는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유튜브의 지식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식을 요리해서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주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를 보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건너뛰기를 하면서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듣는 것도 본인의 노력이 있을 때

그 가치는 더해집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자신의 노력 없이

많은 것을 얻기만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는

주님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를 해주시는 주님만을 원하지,

나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나의 노력이 없으면,

주님의 사랑과 은총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곁에 누가 있었는지를

오늘 복음은 전해줍니다.

열두 제자 외에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여성이 예수님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성차별이 대단했습니다.

여성을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유명한 스승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남자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많은

여성 제자들도 있었습니다차별하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신의 열두 제자를 부를 때처럼

여성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께 의지하려 하였고,

예수님과 함께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아무런 노력도 없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제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제외하고

그냥 주님으로부터 받기만 하려는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어렵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감히 시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루키우스 세네카)

결혼

결혼 생활에 대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20대에는 서로 좋아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 실망하며 살고,

40대에는 서로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 불쌍하고 가여워서 살고,

60대에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되어서 살고,

70대에는 서로 고마워서 산다.”

결혼과 함께 서로 고마워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7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고 이 글을 말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계속해서 실망하고 체념하고

불쌍하고 가엽고의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결혼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너무 많이 들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함께의 가장 제일 원칙 사랑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부활의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063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