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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방학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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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6-08-29 ㅣ No.103803

 

                  지난 여름방학을 돌아보며

   


1.

햇볕과 무더위를 피해 요즘에는 주로 저녁에 걷기 운동을 하는데, 어제는 저녁바람에서 살풋한 가을 기운이 느껴졌다. 두 시간을 걸었는데도 땀도 많이 나지 않았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올해의 여름도 이처럼 어느덧 꼬리가 확연하다.

또 어제는 한낮에도 집안에서는 더운 줄을 몰라 선풍기를 틀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거실 청소를 하시면서 "이제는 살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그 말에서 다시 한번 세월의 덧없음을 느꼈다. 어머니의 말뜻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나는 왜 그런 말에서도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는 걸까? 그런 의문에 혼자 슬며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엊그제 27일로 우리 집의 여름방학도 완전히 끝이 났다. 아들녀석은 지난 20일 논산의 고등학교 기숙사로 돌아갔고, 딸아이는 27일 서울 신촌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조카녀석 중 중학생인 큰 녀석은 21일부터, 초등학생인 작은 녀석은 어제 28일부터 2학기 학교 생활을 시작했고, 마누라도 어제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 태안군 남면 진산리 '오키드 타운 식물원'의 '난/허브 축제'를 보면서...  
ⓒ 지요하

덕분에 나도 이제는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한갓진 마음으로 내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실은 그래서 어제 "이제는 살 것 같다"고 하신 어머니의 말이 내게 좀더 실팍한 느낌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무더위가 가시면서 낮에는 집안에 어머니와 나만 남게 된 상황은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반갑고 한갓진 마음 가운데서도 쓸쓸한 느낌을 가져야 했다. 대학생 딸아이에게는 무려 70여 일이나 되었던 여름방학이 금세 지나갔다는 느낌 속에서 또 한번 바람 같은 시간, 덧없는 세월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바람같이 지난 시간이지만, 나는 가족과 함께 여름방학을 잘 지내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신경을 썼다. 가족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만한 좋은 '방학선물'을 안겨주고픈 마음이었다. 우선은 내가 시간을 쓰고 노고를 바치며 어느 정도 금전 지출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 태안군 남면 진산리 '청산수목원'의 '연꽃축제'장에서...  
ⓒ 지요하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일에 그처럼 신경을 쓰는 걸까? 사실은 세월의 덧없음 탓이었다.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무상을 잘 알기에 '가족이 함께 하는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을 좀더 많이 만들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일 터였다.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이승을 하직하시기 전에, 그리고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 어느덧 다 자라서 부모 둥지를 떠나기 전에 이런저런 질 좋은 가족 행사들을 갖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인생 무상의 이치를 베푸시는 하느님께 좀더 잘 나아가기 위한 일이기도 할 터였다. 그것은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기도 할 터이므로….

2.

올해의 여름방학에는 우리 가족에게 두 가지의 의미 있는 나들이 행사가 있었다. 가족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만한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하나는, 7월 30일-8월 2일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큐슈 지역을 관광한 일이다. 이 행사에는 '범(範)가족' 12명이 함께 했다. 김씨, 박씨, 지씨, 한씨 등 4개 성씨가 함께 한 이 가족 행사는 특히 초·중·고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방학선물이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또 하나는, 지난 20일 보령과 부여의 유적지와 명소들을 둘러본 일이다. 고작 일주일 동안의 방학이 끝나 논산의 고등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들녀석을 데려다주면서 가진 일이었다. 태안에서 논산으로 가는 길에서 가까이에 있는 유적지와 명소들이니 그다지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


▲ 보령석탄박물관 전시실에서.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촌 남매의 다정한 모습  
ⓒ 지요하

이 행사에는 중학생 조카녀석도 빠지고, 우리 가족 여섯 명만 함께 해서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원래는 아들녀석 방학 중간에 고등학생 생질아이와 사촌형님의 중학생 손자아이도 데리고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딸아이와 아들녀석이 매일같이 성당의 '청년음악제' 연습에 나가야 하는 사정에다가 나도 이런저런 모임과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사정이 겹쳐서, 결국 아들녀석을 논산에 데려다주는 날로 계획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논산까지 갔다 오려면 밤에나 돌아오게 되고, 내 승합차에 아들녀석의 기숙사 짐도 실어야 하고 해서 고등학생 생질아이와 사촌형님의 중학생 손자에게는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여간 아쉽고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중학생 조카녀석은 방학 내내 인터넷 게임에 빠져 살더니 개학 하루 전에서야 방학 숙제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가족 나들이에 빠지게 되어서 적이 언짢은 마음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런 아쉬움 가운데서도(과거 가족 나들이를 무척 좋아했던 세상 떠난 제수씨에 대한 '추억의 짐'을 안은 가운데서도) 우리 가족은 또 한번 즐겁게 나들이를 했다.

먼저 태안군 남면 진산리 '오키드 타운 식물원'에서 여는 '난/허브 축제'를 구경하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같은 남면 진산리에 있는 '청산수목원'엘 들러 '연꽃축제'를 구경했다. 그리고 보령으로 가서 대천항 근처 음식점에서 왕만두와 해물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 보령석탄박물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00미터 지하 갱도로 내려가기 직전  
ⓒ 지요하

오후에는 '보령성주사지'와 '보령석탄박물관', '개화예술공원'을 들러본 다음 '보령호'의 일부를 보고, 부여로 가서 '궁남지'를 구경했다. 초등학교 3학년 규빈이의 여름방학 '체험현장' 숙제를 위해 사진도 많이 찍었다.

보령석탄박물관에서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400미터 지하 갱도를 내려가고 올라오면서 어머니는 내게 감사하곤 했다. "참 좋은 구경을 했다"고 하시고, "새롬아배 아니면 언제 이런 구경을 허겄나"하시며 즐거워하셔서 나도 덩달아 뿌듯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한숨을 쉬시며 이런 말씀도 하셨다.

"규왕어매가 살어 있으면 되게 좋아라 헐 틴디…. 아주버님 덕분에 이런 데두 와 보구 이런 좋은 구경을 헌다는 말두 허면서…. 또 성진 어매랑 슬기 어매랑이 규왕어매 보구 부러워 죽는다구 헐 텐디…."

3.

우리 가족의 일본 큐슈 관광과 관련하여 한 가지 아쉬운 일이 있다. 우리 태안 성당의 중·고등학생들이 2박 3일 일정으로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 시기가 우리 가족의 일본 여행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무려 네 명이나 그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일이다.

내 아이들이 꽃동네 봉사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정말 아쉽게 생각한다. 꽃동네에 가서 2박 3일 동안 봉사 활동을 하고 온 중·고등부 지도교사와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 방에서 주로 봉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다고 한다. 중증장애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봉사를 하는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다는 것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아이들이 올 여름방학 동안에는 일본 여행 관계로 꽃동네 봉사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런 기회는 또 있을 것이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복지 시설을 찾아가 하루나 이틀 봉사를 하고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뜻깊은 가족 행사를 꼭 만들어 볼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 부여 '궁남지'에서는 과일을 먹으며 잠시 휴식도 하고...  
ⓒ 지요하

가족 나들이를 하면서 오붓함과 즐거움을 누리는 가운데서도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곤 한다. 이 세상의 수많은 불우한 사람들, 가족과 헤어져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불우한 이웃들을 외면한 채로 너무 우리 가족만의 오붓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하여 외식을 할 때는 식사 전·후 기도를 하며 우리 가족이 오붓함과 즐거움을 누리는 가운데서도 이 세상의 불우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하느님께 청하곤 한다.

가족이 함께 하는 오붓함과 즐거움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늘 하느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이 묘한 부담이긴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기회가 되는 대로 가족 나들이를 즐기며 살 생각이다. 그 동안 내 12인승 승합차를 이용하여 동생 가족과 함께 수시로 나들이를 하며 참 재미있게 살았다. 참으로 많은 곳을 가보았다. 중국 여행과 일본 여행도 했다.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딸아이 덕분에 천안 근방의 성지와 명승지들을 여러 곳 가보았는데, 이제는 논산에서 공부하는 아들녀석 덕분에 논산을 가고 오며 여러 곳의 명승지들을 가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3년 동안은 주로 논산 방향으로 가족 나들이를 즐겨볼 생각이다.


▲ 부여 궁남지에서...  
ⓒ 지요하

나는 외국 여행 쪽으로도 한 가지 소망을 갖고 있다. 그것은 가족과 함께 베트남 관광을 하는 일이다. 내가 36년 전에 몸을 놓고 있었던 베트남 전장의 오늘의 모습을 가족과 함께 둘러보는 일이다.

내가 백마사단 도깨비연대 전투병으로 목숨을 걸고 정글을 기었던 베트남 투이호아 지역의 홈바산과 사례오산, 망망계곡 등을 가족과 함께 가보고 싶다. 가까운 장래에(어머니 생전에) 가족과 함께 베트남 관광을 할 수 있기를,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되기를 하늘에 기원한다.  


 2006-08-29 17:03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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