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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턴 펀 글
위스크다르 민요
터키군이 한국전에 참전하고, 전쟁후에도 유엔군으로 남아 있었다. 터키군이 한국에 가져온 노래로서는 저도 어려서 이모들에게 무심코 들어서 일부를 지금까지도 외우고 있는 위스크다르라는 터키 민요이다. 이것이 당시로는 터키민요인지도 몰랐고, 위스크다르가 이스탄불의 한 지명인지는 더욱 몰랐다. 당시 기억으로는 "위스크다리 찾아왔더니"로 알고 있어서 다리 이름인줄 알았었다. 위스크다르라는 터키 민요의 진짜 제목은 캬팁이다. 캬팁이란 서기, 비서정도의 공무원을 말한다.
위스크다르는 이스탄불의 아시아 지역이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우리는 위스크다르를 위스크달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위스키달라, 소주달라 .. 하는 식으로 장난스레 기억하고 있다. 위스크다르는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에 있는 마을의 이름이다. 오스만 제국 때에도 중요한 지역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제 2대 황제 오르한 가지가 비잔친의 콘타쿠지노스 황제의 딸과 결혼하고, 장인을 1347년 위스크다르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후 5년만에 위스크다르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위스크 다르는 오스만 제국이 아나톨리아 지역에 대한 원정의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군사 기지 역할을 했고, 시간이 지남녀서 군사는 물론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위스크다르는 옛날에도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한다. 이스탄불을 가장 아름다운 시각에서 보기 위해서는 꼭 위스크다르를 들려야 한다. 위스크다르에서 보는 이스탄불 도시의 실루엣은 한 편의 화폭이 아닐 수 없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활홀감을 자아내게 한다.
저녁 해질 무렵 위스크다르에서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도시의 건물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오스만 제국의 영화가 해협의 푸른 물과 어우러져 해안 저편에서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을 갖게된다. 위스크다르는 그 옛날 위스크다르의 처녀가 해협 건너 이스탄불을 바라보면서 캬팁이라는 노래를 불렀음직한 도시로 남아 있다.
역사의 도시 위스크다르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캬팁이라는 노래이다. 캬팁은 오스만 제국 때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터키의 전통적인 민요이다. 따라서 작가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터키인의 사람을 받으면서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다. 이 민요는 부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곡조가 되고, 빠르게 부르면 흥이 생기는 그런 노래이다. 노랫말을 보면, 위스크다르에 살고 있는 처녀가 젊은 공무원을 사모하는 연가이다. 캬팁의 가사를 우리 말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위스크다르 가는 길에 비가 내리네 내 님의 외투 자락이 땅에 끌리네 내 님이 잠에서 덜 깨어 눈이 감겼네 우리 서로 사랑하는데 누가 막으리 내 님의 깃 달린 셔츠도 너무 잘 어울리네
위스크다르 가는 길에 손수건을 놓았네 내 님을 위한 손수건에 사랑을 담았네 어느새 내 님이 바로 옆에 있네] 우리 서로 사랑하는데 누가 막으로 내 님의 깃달린 셔츠도 너무 잘 어울리네
"위스크다르 가는 길에 손수건을 놓았네", 옛날 터키의 처녀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고백을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녀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손수건을 훌려 사랑을 고백했다. 21세기를 사는 이 시대에 생각해 보면 얼마나 낭만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