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공동묘지 벌초 작업으로 거금 160,000원을 벌었다. 공동묘지가 나의 눈에 확 들어 알바로 나간 것이다. 묘지의 비석을 가만히 보면 은혜가 절로 절로 된다.
나의 장래를 그대로 리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묘지 앞에 선 나는 무슨 욕심을 더 부릴게 조금도 없었다. 오직 주님만 더 강하게 보인다.
천국의 사모가 더 강렬하게 마음속에서 치솟는다. 건데 순간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하루를 더 살면 하루 더 산 만큼 죄만 더 짓는 이 몸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무겁게 내려 앉는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 우리나라 40대 사망율이 매우 높다고 뉴스마다 떠든 것이 기억난다. 그 증거가 이 묘비에 그대로 나타난다. 40대 사망자들이 즐비하다. 나도 이제 40대 후반이니 당신들과 같이 언제 나란히 묻힐 줄도 모르는 인생이다.
솔직히 나는 이제 너무 인생에 지쳐서 주님 저를 속히 데려 가 주세요가 내 노래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완전히 죽었어야 할 큰 위기의 때가 10여 차례 이상이나 있었다. 대체로 주를 떠나 방황하던 10대 20대 젊은 시절에 그랬었다. 30대 중반에도 한 두차례 40대에도 한 차례 정도 있었다.
서른 살 되던 그 해에 내 눈이 열려 성령의 빛이 임하는 체험을 하고 인생이 완전 180도로 방향이 달라졌다. 그러나 인생의 고난은 멈추지 않는다. 단지 그 은혜로 다시 일어선다는 것 뿐이지 어쩌면 고통의 무게는 더 한층 가산된 듯 하다. 한가지 딱 다른 것이 있다면 고통이 클수록 주님이 더 간절해지는 것이다.
이 간절함은 동시에 너는 지금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자문자답이 나의 앞을 가로 막아 선다. 교통표지판 처럼 가로막아 선 표시는 진입금지 령이다. 나의 이 자문자답이 아직은 주께로 가는 당첨란에 진입금지 처럼 나를 짓누른다.
이 진입금지가 있는 이상 아직은 주께서 이 미물에게도 무얼 맡기시고 할 일을 더 하라는 것일 게다고 나 스스로 그렇게 자위한다. 건데, 막상 하루가 시작이 되면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을 위하여 무얼 하는지 참으로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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