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8월 15일 이곳에 묻힌 일본 수군의 후손들 20여명이 진도를 방문하여 왜덕산을 참배하면서 내동리 부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일본 수군들은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고 합니다. 참배단과 동행한 무라세마키오씨의 말에 의하면 명랑해전에서 선발대에 배치되었던 일본 수군은 [구루시마 수군]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원래 일본 내륙의 세토나이카이를 장악하고 있었던 해적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세로나이카이를 통과하는 일본의 모든 상선들은 이들에게 무조건 10%의 통행료를 바쳐야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휘젓고 다니면서 약탈을 감행했던 왜구들의 본거지가 바로 여기에 있었고, 구루시마라는 섬이 바로 그 핵심 근거지였답니다.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에 속해 있는 구루시마는 조그만 섬이지만, 천혜의 요세였다고 합니다. |
진도의 [울돌목]처럼 구루시마와 육지 사이로는 시속 11노트(20Km)의 급조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배들이 쉽게 공격할 수 없어서 난공불락이었지요. 여기에 구루시마 수군의 본거지인 해성이 구축되어 있었고, 지금도 그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명랑해전에서 이순신장군과 최전선에서 맞붙은 팀이 바로 이 구루시마 수군들 이었답니다. 그 대장은 당시 36세였던 구루시마 미치후사였고, 화살을 맞고 전사했지요. 그보다 5년전에 당항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죽은 친형의 원수를 갚기위해 출전했지만, 동생 역시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왜덕산의 왜군 묘 앞에 놓여진 미치후사의 영정이 놓여져 있다고합니다. 고구려가 수나라의 수십만 대군을 괴멸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은 일본의 수군과 싸워 한번도 진적이 없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