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10.13.“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스크랩 인쇄

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21-10-12 ㅣ No.150307

 

                                                 루가 11, 42-46(연중 28주 수

 

)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인 앞 장면에서 정결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어서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에게 여섯 가지 불행선언을 통하여 신랄하게 질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중에서 바리사이들에 대한 세 가지와 율법 교사들에 대한 한 가지를 들려줍니다.

<첫 번째> 불행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십일조는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루카 11,42)

 

이는 십일조의 율법준수를 부정하거나 율법준수를 질책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결여된 율법준수를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레위기(27,30-33)와 신명기(14,22-29)에 따르면, 주요 곡식과 가축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이를 더 세분화하여 뗄 나무에까지 십일조를 적용할 만큼 율법준수에는 규정 이상으로 열성적이고 철저하고 엄격했지만, 율법의 정신인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행하는 일을 실천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열성은 좋지만, 그릇된 열성은 오히려 위험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 위에 서 있는 열성이어야 합니다. 곧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보다, 그 정신인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불행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루카 11,43)

 

사람들이 그들에게 윗자리를 내어주고 먼저 인사하는 것은 존경의 표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맡은 바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특권적 우월의식과 교만한 과시욕에 몰두했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의 특권의식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사실, 존경받기보다 존경하고, 인사받기보다 인사하고, 섬기받기보다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곧 신앙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윗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합당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불행선언입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드러나지 않은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으면서 무덤인 줄을 모른다.”(루카 11,44)

 

민수기(19,16)에 따르면, 무덤에 닿으면 칠 일간 부정하기 때문에, 회칠하여 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불결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표시하지 않은 무덤처럼, 자신의 부패를 은폐시키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사실, 악보다 더 추악한 것은 마치 선인 양 자신의 얼굴을 꾸미고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된 선일 것입니다.

<네 번째> 불행 선언은 율법 교사들에 대한 것입니다.

                                “너희 율법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루가 11,46)

 

율법 교사들의 언행의 불일치에 대한 질타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자신들은 율법을 실행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는 짐을 지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보다도 조상들의 전통과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존중했고, 그것을 지나치게 세분화하여 모세의 율법 외에도 613개의 규범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결국, 백성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짐을 지워놓으면서도 자신들은 스스로 지키지 안했습니다(마태 23,3).

사실,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들은 그 당시의 종교적 길잡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까지도 파멸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 참된 신앙인이요, 신앙의 참된 길잡이로 살아가라는 강력한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루카 11,42)

주님!

제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신을 믿으면서도 의로움과 사랑을 행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불의와 부패 속에서는 행복이 있을 수 없고,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는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뜻을 행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132 2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