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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을 숨쉬는 땅,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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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관 [gabie] 쪽지 캡슐

2006-09-03 ㅣ No.103933

 

 거룩함을 숨쉬는 땅, 성지!

순교선열현양 제등행렬 십자가의 길 기도 후 현양미사 강론

(2006.9.1(금) 20:00-22:00 해미순교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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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순교자를 닮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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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 해미의 생매장순교성지에서 매월 첫 주일 새벽에 순교선열현양미사를 봉헌하던 추억과 그리고 그 매월 첫 주일 전의 금요일(대개 전월 마지막 금요일) 밤에 해미진영(읍성)에서부터 서문밖 순교성지를 거쳐 생매장순교성지에 이르는 ‘순교 길’을 등불 밝혀들고 신자 분들과 함께 걸으면서 십자가의 길 순례기도를 하던 추억을 되살려 오늘 이렇게 옛적의 형제자매들 얼굴을 다시 보며 함께 기도하게 되어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해미본당공동체의 형제자매님들을 보면 그 혈관에 순교선열들의 거룩한 신앙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으로 저의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제가 과거 여기서 6년가량(1985년 4월 11일-1990년 12월 6일) 해미공동체 속에서 사는 동안 저에게 보여주신 형제자매님들의 그 신앙 열정은 가히 순교성지의 사람들다웠지요. 해미공동체의 그 열정적 믿음의 모습들을 회고하자면 아마 제가 여기서 지낸 6년가량만큼이나 그 시간의 분량을 가지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 회고 가운데 몇 가지만 말씀드려봅니다.


제가 해미본당의 초대 주임사제로 부임하던 때의 해미공동체는 당시 모본당(母本堂 : 서산본당)에서 분가(分堂)하면서 어렵사리 공소(公所) 신세를 면하기 위해 임시성당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본당(本堂)으로 승격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때의 해미공동체는 설계상 2층에 성당을 올려 짓기로 하고 아래층(1층)을 이른바 교육관 형태로 가준공(假竣工)한 상태였지요. 그 아래층의 성당은 그래서 천장이 낮은 창고처럼 생겼지요. 이러한 성당의 옥상에 올라가보면 그래서 차후 정식 성당을 올려야 할 계획으로 기둥 철근을 빼놓았고 종탑 역시 그 2층에 들어설 성당을 가상하여 그 뒤통수가 휭 뚫려있는 상태로 옆구리 철근이 삐져나와 있었지요.


해미공동체는 그 출발에서부터 사실상 순교성지를 확보하고 가꾸는 일에 전념하느라고 그 임시성당 그대로 오늘까지 20년 넘도록 옹색하게 지내오다가 올해에 비로소 그 2층에 본 성당을 올려 짓느라고 형제자매들께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제가 듣고 있습니다.


해미공동체의 형제자매님들을 보게 되면 그 얼굴들의 주름살 위에서 저 자신의 삶의 흔적을 느끼는 감회로 가슴이 저리게 됩니다. 그리고 저의 눈에는 그 얼굴들이 어쩌면 여기 해미에서 옛적에 순교하신 그 이름 모를 선열들의 얼굴들인 듯 겹쳐지곤(Overlap 되곤) 합니다.


그러한 해미사람들 가운데 노년에 이른 분들의 모습에서는 신앙으로 가꾸어온 삶의 지난 세월이 훨훨 퍼지는 뭉개 구름인양 마음을 하늘 가운데로 띄워 올리는 감동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그간에 이 공동체 안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더욱 희망의 새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해미공동체 속에 살던 그 시절 매월 첫 주일 새벽에 들녘의 생매장순교성지 야외제단에서 순교선열현양미사를 봉헌하던 추억 속에서는 거기 함께 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특별한 감동으로 떠오릅니다. 수은주가 영하로 한참 내려가던 겨울날 새벽의 그 생매장순교성지 야외제단미사 때에 제대의 물병을 얼어붙지 않도록 손으로 감싸고 서서 복사하던 소년들이 이제는 모두 어른이 되었지요. 그 가운데는 이 해미공동체 출신의 첫 사제도 탄생하였습니다(2004년도 수품 박지목 신부). 그 옛적 겨울날 새벽의 생매장순교성지 야외제단미사 때 복사하면서 제대의 물병을 얼어붙지 않도록 감싸던 그 소년이 사제 되어 지난 2004년 2월 4일 그 손으로 첫 미사의 제물을 하느님께 바치려고 제단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 야외제단 겨울바람에 덜덜 떨리던 어금니 소리만큼이나 우당탕탕 가슴을 때리는 감동으로 전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명 순교선열들께서 피 흘리고 산채로 묻혔던 냇갈 옆의 땅을 사들이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던 그 시절에 저는 먹고 사는 것까지 줄이면서 근근이 돈을 모아가다가 그 성지 한 쪽이라도 사들이게 되면 그 순교의 피로 거룩하게 된 땅을 오늘의 우리가 기도로써 성화(聖化)해야 하지 않는가 하여 매월 마지막 금요일(실제로는 매월 첫 주일 새벽의 생매장순교성지 현양미사를 앞둔 이틀 전의 금요일) 밤에는 신자들과 함께 등불을 켜들고 순교선열들 끌려가시던 길 그대로 걸어서 들녘의 생매장순교성지에 이르는 기도를 하곤 했지요. 해미진영(읍성)의 감옥 터에서 출발하여 성벽 서쪽 지성문(枳城門) 밖 순교 터에서 그곳 ‘순교 자래개돌’에 뜨거운 마음으로 입을 맞추고 나서 순교선열들 죽으시러 끌려가시던 들판 길을 걸어 그분들 중 물속에 떨어뜨려 익사당하여 순교하던 ‘진둠벙’과 생매장으로 순교하던 지점에 이르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던 그 밤길 기도순례를 저는 ‘순교선열현양 제등행렬기도’라고 일컬었었지요.


그런 기도의 밤에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거나 그 밤길 기도에 참석하던 우리 해미공동체의 열심한 신자 분들과 헤어 진지 16년 만인가요 오늘이? 그 얼굴들을 오늘 밤에 여기서 만나는군요. 그 기도의 얼굴들과 함께 지낸 세월을 제가 이 세상에서 차마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세월에 대해서는 아마 제가 세상을 떠나 저승에 가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천당에 가서 해미본당 출신의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아마 가장 반가운 사람들 사이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 떠나 천당에 가게 되면 여기 해미에서 순교한 선열들을 거기 천당에서 만나 그분들과 함께 해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해미에서 순교하신 선열들이 누구누구이신지 지금의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천당에서 만나면 그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얼굴은 아마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라 서로 미리 알고 있던 사이의 얼굴들인 양 우리가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우리 해미사람들이군요! 이제 모두 만나게 되었군요!”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해미사람들은 그 해미의 무명 순교선열들과 닮은 얼굴들이어야 합니다. 그 닮은 사람들의 얼굴들, 그들이 곧 여기 해미에서 지금 살아가면서 하느님 나라를 증거 하는 형제자매들의 얼굴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순교성지에서는 과거의 순교에 이어서 오늘날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거로써 하느님 나라가 계속 드러나야 합니다. 순교선열들께서 피를 흘렸기에 이 땅을 ‘성지(聖地)’라 일컫는 것일진대, 무생물의 건축물이 그 증거라 할 것이라기보다는, 그 피 흘려 거룩해진 땅위에 사는 사람들이 거룩해져야(福音化 되어야) 그 땅이 진정 ‘성지’가 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땅(흙)이 거룩하게 되었다면 거기 사는 생명이(사람들이) 또한 거룩해야 하는 까닭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해미지역민들의 복음화로써 이 땅을 더욱더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거룩함을 숨쉬는 땅이어야 곧 성지입니다.


저의 이러한 말에 대해서 부연설명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 하나를 덧붙입니다. 제가 해미본당에 봉사하실 수녀님들을 모시기 위해서 모 수녀회 본부에 찾아가 간청하던 말을 회상해봅니다. 그곳 장상 수녀님께 제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해미는 이미 거룩한 땅입니다. 수많은 순교선열들의 피로써 이미 축성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땅위의 공기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외교인들이라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숨소리로 숨을 쉬기 때문에 그 공기가 비복음적 공기입니다. 어서 거기에 그리스도 신앙인들의 복음적 숨소리로 거룩한 공기가 가득해져야겠습니다. 전교를 해야 하고, 몇 안 되는 신자들 또한 열심히 믿음을 증거 하는 삶으로써 거기 거룩함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일에 저의 힘이 모자라니 협조할 수녀님을 보내주세요.”


수녀원 어른께 드리던 저의 그러한 간청의 말에다가 또한 제가 여기 해미순교성지에서 순례자들을 맞이하여 강론할 때마다 목이 아프도록 다음과 같이 당부하던 말을 덧붙여 회상해봅니다.

“순례자 여러분, 여기 수천 명의 무명 순교선열들께서 신앙증거로 피를 흘려 축성한 이 거룩한 땅은 오늘날 여러분의 신앙증거와 기도의 발걸음으로 계속 거룩해져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여기서 바치는 기도의 거룩한 숨소리로 이 땅을 계속 축성해주십시오. 그러면 그 기도로써 내뿜는 거룩한 숨소리에 따라 이 땅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동네에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복음이 채워지고 그래서 여기가 성지라는 사실을 우리의 시대에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녀님을 보내달라고 간청하던 저의 말과 순례자들에게 당부하던 저의 말을 회상하는 까닭은, 이곳 해미신자들과 여기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증거 해야 할 신앙의 태도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함축적으로 역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순교선열들께서 목숨 바쳐 증거 하던 이 땅위의 그 신앙을 과거의 것으로 기념하는 것이 이른바 ‘성지’의 모양새는 아니라는 점을 저는 더불어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곳은 과거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곳이라더라 하는 정도가 성지에 대한 안내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다면 박물관 관람안내 정도의 수준일 뿐입니다. 이곳이 성지라 함은 오늘날도 과거나 마찬가지로, 아니 더욱 과거에다가 더 축적되어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 신앙 증거가 계속되어야 하는 까닭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해미순교성지란 무심하게 우뚝 선 기념탑이나 건물에서 그 신앙증거를 읽을 수 있기보다는 여기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신앙증거 때문에 거룩한 곳이라는 이름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주님 십자가의 길’이자 ‘순교자의 길’을 걸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길’ 그리고 ‘순교자의 길’은 옛적에 그러했듯이 고난과 박해의 어둠 속에 주님께서 걸으신 길이요 순교선열들이 걸으신 길입니다. 해서 그 어둠 속의 길을 상징하여 저는 밤길에 그 순교자들의 신앙의 불빛처럼 등불을 켜들고 그 순교의 길을 걷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교선열들이 목숨을 바치던 그 자리에 서면 문득 우리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밝은 길이 펼쳐짐을 체험하지 않느냐고 순례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이 순교의 거룩한 땅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밝은 길은 곧 주님과 함께 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가 9, 23-24)


그렇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 곧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버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우리말에 ‘버린다.’는 말의 뜻은 그릇을 비운다는 뜻도 있지만 쓸모없어서 내버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자기 자신의 목숨도 자기 자신에게서 쏟아 내버려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비운 사람들이었지만, 동시에 쓸모없는 존재처럼 이 세상에서 내버린 처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채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세상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릴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이기에 오늘날 ‘순교’라는 말은 우리와 거리가 아주 먼 옛날이야기 속의 말 같습니다. 그렇듯이 ‘순교’, 그것은 나는 못하는 그런 것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겠다고 서로 싸우는 세상입니다.


흔히 걸핏하면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있는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듯이 자기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우리네 모습에서 거짓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미 고인이 된 동화 작가 정채봉 씨가 ‘간장 종지’라는 책에서 ‘버리는 법’이라는 다음과 같은 우화를 썼습니다.


누가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마음을 비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응답이 왔습니다. “그것마저도 비워야지요.”

그래서 다시 말했습니다. “그것마저라니요? 완전히 비웠다니까요!”

그때 다시 응답이 들렸습니다. “비웠다고 말 내는 것이 비우지 않은 찌꺼기입니다. 완전히 죽지 않은 불에서 살아난 불이 더 무섭거든요.”


그렇습니다. 세상 것으로 우리 자신 안을 채우지 않기 위하여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으로 채워 가는 것이 신앙의 삶이어야겠습니다만, 즉 그런 것이 순교자들이 극적으로 보여준 증거 곧 ‘순교’입니다만, 우리는 나 자신으로 나를 채우고 세상 것으로 더 채우면서도 ‘신앙인’이라고 자칭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운다고 말하는 그 속에 더 무서운 불이 죽지 않고 살아있듯이 우리는 끝내 자신을 비우지 못하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앙 때문에 누가 우리를 죽인다 하지 않아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 마음속으로 되뇌어보아야 합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루가 9, 24)하신 말씀을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시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가 9, 24)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어느 누군가 때문에 자기 목숨을 위태로운 지경에 내어 던진다는 것은 어느 경우일까 생각해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또는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보고 뛰어들어 자기 목숨을 희생한 사람의 살신성인 행위에 대한 보도를 들은 일들이 있습니다만,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몸을 던질 사람의 경우란 아마 자녀의 위급한 상황에 직면한 어머니의 태도에서 볼 수 있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태도란 그 어머니의 모성적 본능이라 간주할 수도 있겠지요. 그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모성애는 자신의 목숨에 대한 본능적 방어를 뛰어넘는 더 큰 본성입니다. 그러한 모성애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와 자녀에게 닥친 위기 중에서 무엇이 급한 것인가 하는 저울질을 해서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몸으로 막아 최우선으로 자녀를 보호하려는 본능의 발로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본능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경우에는 먼저 자신의 생각으로 요모조모 따져보는 선택이 전제 됩니다. “너 이것을 선택하면 목숨을 유지하겠지만, 저것을 선택하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다.”라는 전제를 앞에 두고 나 스스로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본능은 목숨을 유지해야겠다는 쪽입니다. 허지만 그 본능을 뛰어넘어서 목숨을 내어놓는 것을 우리는 ‘순교’라고 일컫습니다.


이러한 순교를 해야 할 처지에 혹은 그와 유사한 선택의 기로에 서본 일이 있었던가 하고 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오늘날 물론 천주교 신앙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위기는 우리에게 닥치지 않습니다. 허지만 살아가면서 신앙인으로서 어떤 취사선택을 나의 자유의지에게 요청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저것을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어느 경우에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이 땅을 딛고 있는 나 홀로의 순간에 나의 양심에 부끄러움이 깃들지 않을 자그마한 결심을 해야 하는 갈등이 나의 자유의지를 흔들기도 합니다.


작은 결심을 해야 하는 그 순간들에 나의 자유의지가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 신앙 선조들의 순교 역사 앞에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교선열들께서는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고 신앙을 증거 했습니다만, 오늘의 나는 자그마한 불편 앞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자그마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은근슬쩍 비굴한 편의를 도모하는 짓을 흔히 저지릅니다. 그러면서 제가 어떻게 선조들의 목숨 바친 순교 행적을 제 입으로 칭송할 수 있겠습니까? 조그만 일로 떳떳하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까지 기꺼이 받아들일 순교정신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앙선조들께서 평소 살아가시는 중에 조그마한 불편을 피하기 위해서 비굴하게 처신한 분들이라면 결코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어떻게 내어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 이익과 세상의 편의를 추구하는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죽이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있지 않고서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히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살이 가운데 이미 죽음을 받아들일 자세로 사셨던 그분들이기에 기꺼이 순교하실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순교 행적 앞에 그래서 부끄러워지는 오늘날의 나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나 자신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이란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렇듯이 신앙으로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자세 즉, 신앙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이란, 곧 참으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 해서 참된 신앙은 세상에서 삶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 수 있는 삶인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라야 정녕 자기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음 앞에서 명분에 급급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모습을 저는 여기 해미에서 무수하게 죽어갔던 이름 없는 순교선열들에게서 상상합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이름 석자 하나 남기지 못하면서 기꺼이 스러져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하는 103위 순교성인들이나 지금 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순교자들의 명단에 낄 수 없는 분들이 해미의 무명 순교선열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해미에서, 수천 명의 순교선열들께서 목숨을 바치신 현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분들의 목숨이 생매장으로 흙 속에 묻혀지면서 그분들의 이름마저 세월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시복 시성식을 해 드릴 수 있을 자료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서 이 세상에서는 그분들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산채로 묻히셨던 이곳 해미의 생매장순교지성지에서는 오늘날의 우리가 기념물이랍시고 만들어놓은 가시적 물건들이나 건물들은 사실상 그 이름 알 수 없는 그분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들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자리에 오늘의 우리 능력을 과시하는 기념탑과 건물보다도 이 황량한 벌판의 흙모래자갈무더기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이 땅이 보전되기를 제안합니다. 그 모래자갈무더기는 어쩌면 옛 순교의 순간에 그 이름 모르는 순교자들의 육신을 묻던 그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감회로 우리 후손들까지 이 벌판을 바라볼 수 있도록 보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그리고 미래의 교회도 그분들의 이름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쓸어 덮었던 모래자갈더미는 그분들의 모습을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신앙적 시각 속에 각인시켜 줄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분들의 의로움을 인정해주지 않던 과거가 그 모래자갈더미로라도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묻혀져 간 그분들이 그렇게 기꺼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던 까닭을 우리는 그 모래자갈더미 앞에서 더욱 실감나게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목숨과 이름까지 묻혀져도 기꺼이 고백하였던 신앙은 결코 묻혀지지 않는다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돌덩어리들은 그래서 역사의 기록이 증거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분들의 신앙고백을 말해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가 19, 40) 하고 말씀하셨듯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을 우리가 오늘 다 하지 못함을 그 돌무더기들이 우리를 향하여 깨우쳐 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다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예수님의 역설적인 선언을 우리는 그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묻힌 현장에서 조금이나마 깨우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가 9, 24).


그렇습니다.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그 역설적인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숨도 그리고 남길 이름도 그분들에게는 별 게 아니었습니다.


하여,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 아니 이름이 남지 않은 무명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오늘에 더욱 소중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익명으로 선행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더욱 고결하듯이 말입니다. 그 까닭은 103위 순교 성인들 중에서 우리 기억의 그늘에 묻혀 있는 성인의 모습이 우리에게 친근한 모습일 수 있고, 더욱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이 한결 그 값을 더할 것이 하늘나라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미의 생매장 순교지 황량한 벌판은 지금도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더 멈추게 하는 곳일 수 있습니다. 이 사회의 저변에 숨어서 하늘나라의 이치를 실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렇게 값어치를 지녀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렇듯이 이름 없는 순교선열들의 모습처럼 오로지 하느님께서 아시면 그것으로 그만인 삶으로 이 땅위에서 하늘을 향한 신앙을 배우고자 그 선열들 가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기로 합시다. 그러한 다짐을 자꾸 다지고 잊지 않기 위해서, 해미공동체 형제자매님들, 그리고 인근 서산지구 형제자매님들, 모든 그리스도인들, 다짐합시다!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여기 찾아와 그 순교선열들의 길을 걸어봅시다. 제등행렬로 그 순교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듯이 신앙의 등불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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