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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인간
닐 기유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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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 시대의 절정기에 있는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쓰임이 파괴적인가 혹은 건설적인가에는 전혀 무관심함을 알 수 있다.
프레드린 손탁의 「고통을 넘어선 사랑, 그리스도교 내의 신비주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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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겔 애플솝은
하늘 나라에 받아들여지자 꽤 기뻤다.
하지만 그것은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다.
평생 여러 정부 기관에서 일하면서
겨우 세 번밖에는 관료주의 법칙을 어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가난한 과부를 위해서,
또 한 번은 불쌍한 노인을 위해서,
마지막에는 불구자를 위해서였다.
이 세번의 과오는 그다지 흠잡을 만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 어려움 없이 하늘 나라의 진주문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나의 실적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이 분명해.
그다지 놀랄것도 없지.
그 모든 서류 작업을 완벽하게 해냈으니
내가 생각해도 이만저만한 업적이 아니지.
행정상의 절차를 세번 정도 위반한 것쯤이야 뭐.
사실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
그는 이렇듯 뿌듯한 마음으로 하늘 나라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이 하늘 나라 탐험을 나서 보니
별로 신통치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니겔 애플솝은
오히려 여러 가지면에서 끔찍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노련한 관료적 시각으로 보건대
하늘 나라는 실망스럽게도 무정부 그 자체였다.

첫째,
어디에도 서류 정리 체제가 없었다.
있다면 커다란 장부 하나가 전부였는데(늘 성베드로가 손에 들고 다녔다),
희미하게 「생명책」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고,
뽑힌 사람들의 이름과 행적이 적혀 있었다.
둘째,
예산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없었다.
꼬치꼬치 캐물은 바에 따르면,
하늘 나라의 군사 비용은 거의 불꽃놀이 정도밖에 쓰이는 것 같지 않았다.
셋째,
하늘 나라의 모든 조직에는 지위 고하가 없었다.
유일하게 천사의 계급만이 9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사실상 9계급 모두가 완전히 동일한 권리와 특권을 누리므로
별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위대한(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판에 따르면)
성인들조차
하늘 나라의 명령 체계상의 지위와 신분에는 전혀 무관심한 듯했다.
넷째,
하늘 나라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계획이나 절차, 법칙 비슷한 것이나 규범 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엄격한 의미에서 무질서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색다른 형태의 조화로움이 곳곳에 배어 있었으니 말이다.),
합리적인 관리를 위해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할 절차 같은 것이
매우 미비한 상태였다.

다시 말하면 그가 본 하늘 나라는
질서 정연한 조직이라기보다는 흥청망청대는 축제 마당 같았다.
니겔 애플솝은 한눈에 그런 어지러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성베드로에게 가서
그런저런 불만들을 털어놓았다.
성베드로는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절충안을 내놓았다.
"자, 들어 봐요, 니겔.
당신처럼 빈틈없는 사람은
이곳의 일처리 방식이 좀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소.
하지만 몇몇 사람만을 위해
하늘 나라 전부를 관료 체제로 재편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한다는 하늘 나라의 목적을 무시할 수도 없소.
그러니, 이렇게 해보는게 어떻겠소?
하늘 나라 일부를 당신 손에 맡기겠소(예를 들면 동쪽 아래 작은 마을).
그곳에 당신 마음에 드는 친구들만 데려와 살게 해도 좋소.
어쨌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한번 해보시오."
물론 니겔은
하늘 나라의 체제를 전면 재조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으므로
성베드로의 타협안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뽑힌 이들의 대부분이 그런 대로 꽤 만족하고 있는 눈치였으니 말이다.
그는 그 제의를 받아들인 다음
'베드로의 조약안'이라 이름하여
개인 서류함에 철해 두고서 소행정 구역을 맡으러 나섰다.
그와 그가 새로 뽑은 지상에서 일평생 공무원으로 지냈던 사람들은
그들의 왕국을 '서류 나라'라 칭했으며,
스스로를 '서류인간'이라 불렀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새로 편성한 하늘 나라의 자치 구역에서
그들은
우선 산더미처럼 쌓인 온갖 서류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전혀 빠짐없이 모든 것을 분류하고,
기록하고 철해 두었다.
뽑힌 이들의 이력서에서부터 가장 먼 은하계의 특징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총망라했다.
컴퓨터가 무리 없이 작동되는 한,
이 집념어린 서류 나라 국민들은 만족했다.
그런데 얼마 후
니겔은 웬지 마음이 꺼림칙해졌다.
그와 그의 관리들은 정말 모든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는 없을까?
지구상에서야 완벽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대견해하며 쉽사리 만족 했지만,
하늘 나라에 온 이상 백 퍼센트 완전 무결함이야말로 그들의 규범이요,
철켈 아닌가?
마침내 그는 그의 관리 체제가 제일이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코자
성베드로에게 순회 시찰을 한 번 다녀오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것은 다른 곳의 관리 방법과
서류 나라의 관리 방법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예상컨대 서류나라가 최고이리라.

성베드로는
하늘 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이가
언제나 기뻐하기를 바랐기에,
이번에도 니겔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니겔은
보고 들은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남기기 위해
필기 도구와 녹음기를 구비하고 출발했다.
우선 그는 지구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는 관리인들의 치밀함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특히 독재주의와 전제주의 정부는
그들의 입장에 맞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있어 가히 천재적이었다.
공무원들은 모든 일을
언제나 문서에 의거하여 처리했다.
그들의 조직 내에는
적당히 얼버무리는 식의 예외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절대로!
그 다음 내려간 곳은 연옥이었다.
불행히도 찾아온 목적을 설명 했는데도 불구하고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다.
연옥 영혼들은
현재 상태로도 충분히 고통받았기에
그곳의 천사가 동정어린 눈빛으로
"외부인들의 정밀한 조사가 유익할 리 없다."라고 말했다.

물론 객관적인 연구 조사가
어째서 기분을 언짢게 한단 말인가.
어쨌든 그는 선택의 여지 없이 마지막 순회 구역인 지옥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어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틀림없이 목적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았다.
혹시 서류 나라로 되돌아온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지옥문에 들어선 순간 그는 너무나도 낯익은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무원들이 줄줄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부지런히 관련 자료들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저장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해진 그는 중얼거렸다.
"이상도 하지! 방향을 잘못 잡았나 보군.
지옥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거꾸로 서류 나라로 거슬러 온 것 같아.
한데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뿐인데,
내가 없는 동안 새로 온 사람들인 모양이지."

바로 그때,
퍽 유능해 보이는 간부 한 명이 따라오더니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루시퍼라고 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제서야 니겔은
자기가 지옥을 옳게 찾아왔으며,
동시에 그것이 그의 서류 나라와 꼭같음을 깨닫고는 아연 실색했다.
애써 다른 점을 찾자면 한 차원 더 효율적이라는 것뿐이었다.
지옥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게 있을 리 없는 니켈은
불쏙 찾아와서 미안하게 되었다고
우물쭈물 둘러대고는 서둘러 하늘 나라로 돌아갔다.
진주문을 들어서는 니겔은 이제 태도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현장 탐험이 괜찮았소?"
성베드로는 시치미를 떼고 놀리듯이 물었다.
니겔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는 지금 극도로 혼란한 상태였다.
자신이 하늘 나라에 만들어 놓은 서류 나라가
어떻게 지옥의 모습과 그렇게도 똑같을 수 있을까?
한참이나 망설인 끝에 그는 셍베드로에게 물었다.
"위대하신 베드로님, 말씀해 주세요.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법칙을 존중하며 준수하는 게 뭐가 잘못된 겁니까?"
성베드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법칙보다 사람을 한층 더 존중한다면 말이오.
하늘 나라와 지옥의 차이점은 바로 그거요.

지옥에서는 사람 보다도 법칙을 더 중히 여기지요.
그러니 거기엔 서류 인간만이 존재하죠.
반면,
하늘 나라에서는 법칙보다는 사람을 더 귀중하게 여기지요.
그래서 이곳엔 사람다운 사람이 삽니다."
니겔은
베드로 성인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따져 물었다.
"그 말씀대로라면,
저야말로 완벽한 서류 인간,
다시 말하면 원리 원칙만 내세우는 극히 행정적인 관리인이었는데,
어떻게 하늘 나라에 올 수 있었죠?"
성베드로는 짓궂게 되물었다.
"완벽한 서류 인간이었다고요?"
니겔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거의 완벽했다는 말씀이죠.
일생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겨우 세 번 법칙을 위반했을 뿐인데 그게 뭐 대수인가요?"

성베드로는 아무 말 없이 커다란 장부(「생명책」)를 펴서
니겔이 지구상에 존재했을 때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곳을 보여 주었다.
한쪽 편에는
업무상의 결정 사항이 적혀 있었다.
관계된 사람들 각자의 형편은 완전히 무시하고
원리 원칙대로만 처리한 것이었다.
맞은편에는
세 번의 법칙 위반 사항이 기입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사항이
'칭찬해 줄 만한 일'이라고 표기된 사항임을 보고
니겔은 순간 자기 눈을 의심했다.
니겔은 고개를 들어 베드로의 애정어린 눈빛을 마주 바라보았다.
베드로 성인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해 주었다.
"자네가
과부와 노인과 불구자를 위해
세 번 법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하늘 나라에 입장이 허락된 걸세."
최근 하늘 나라에서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니겔과 그의 서류 나라 사람들은
서류 나라를 넓은 무도회장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일대 변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영혼에서 샘솟는 아름다운 이야기』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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