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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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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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세리라는 직업은 같은 민족끼리 변절자이자 매국노이며 피도 눈물도 없는 죄인으로 같이 상종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정복자인 로마 황제에게 바치기위해 동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가는것도 마땅치 않은데, 당시에는 로마에서 할당된 세금만 채워 바치면 되고, 그 이상 세리들이 얼마를 받아내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세리들은 자신들의 몫을 최대로 챙기기위해 동족들을 쥐어짜는데 골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마태오에게 예수님이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마태오는 조금의 망서림 없이 즉시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앞으로도 맘만 먹으면 엄청난 재물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모두 포기한채(증명된 현실적인 기대), 증명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기대하며 모든 것을 그것에 걸고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오가 주님의 부름에 망서리거나 따라 나서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계속 부정한 방법으로 쥐어짠 돈을 세고 있겠지요. 역사에는 부패한 관리로 기록되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우리같이 절제된 생활을 하며 하느님을 늘 찬양하는 거룩한 사람(의인)들 놔두고, 어찌 가장 못된 죄인과 어울린단 말인가? 이런 생각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할 수 없는 원인이 되어,십자가에 구세주를 못박게 됩니다.
누가 의인인가?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성실하다고 자부했던 큰아들은 의인인가? 매일 기도와 단식으로 거룩한 생활을 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는 의인인가? 봉쇄 수도원에서 일생을 기도와 관상으로 일관하는 수도자들은 의인인가?
스스로 성실하다고 생각하고,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이 교만과 자만심은 아닐까?
하느님의 은총이 분에 넘치게 나에게 내려옵니다. 그러나 그 은총, 그분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 스스로가 성실했고, 자신의 의지로 의인이 됐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니 그렇지 못한 이웃들이 우습게 보이고, 게으른 탓이라고 질타합니다.
예수님이 마태오를 부르실때 망서림 없이 "예"하고 따라 나서듯이 우리도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구역장, 반장, 단체장을 맡아달라." 고 부르실때 즉시 따라 나서야합니다.
그 부르심이 곧 나를 구원하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묵상하겠습니다.
성지순례에서 본 성경에 나오는 말라죽은 돌무화과 나무를 보았습니다. 성전의 환전상들을 채찍으로 몰아 내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함께, 좀 너무 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본 돌무화과 나무는 그곳에서 전혀 자랄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오히려 생명을 거두어 주는 것이 은총일 수도 있을 정도로....
저를 천주교인으로 부르시던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심각한 죄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 부르심이 주님의 큰 은총이자 구원이었던 셈입니다.
의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회개하면 다 의인일 것입니다. 조금은 의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착각이자 죄악(교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주님의 부르심이 있을까를 기다리며 준비하겠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죄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소위 "소외된 자" (약한 자, 병자, 장애자, 가난한 자, 머리 나쁜 자, 가난한 자, 여자, 어린이, 과부, 천한 직업을 가진 자, 지동설 주장자, 이방인....)는 곧 "죄인"이었습니다. 소외되지 않은 자들로부터 죄인으로 멸시받고, 동네에서 추방되어 벌판에서 살아야 했고 늘 죄인의 굴레를 쓰고 살아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마귀로 단정되어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강한 자들이 소수의 약한 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며 상황은 완전히 반전됩니다. 어제의 거룩한 자들(자칭 의인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들, 부자들, 귀족들, 남자, 유대인....)은 단죄되고, 예수님은 주로 과거에 죄인이던 창녀와 세리들과 어울리십니다. 겸손하게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기적과 은총을 주십니다.
사실 12제자들도 결정적인 순간에 스승을 배신하는 겁장이이며 죄인들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가 그런 요소를 지닌것 같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만으로는 안된다는 그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여야 회개가 가능합니다.
돈많이 번 사람들은 돈 없는 사람들을 게으르고 분수없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죄인시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약하고 성실히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사회적, 구조적 모순으로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부자가 된 것은 좀 운이 좋았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 나와 출세한 분들중에는 입시에 실패하고 소위 일류학교와 일류직장을 못다니는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도 않는 자칭 의인도 많습니다. 마음속으로 우월감과 함께 무능한 인간으로 그들을 죄인시 합니다. 자신이 좀 운이 좋아 입시에도 붙고, 출세도 한 것을 알아야 할텐데....
그런 분들이 자기가 이룬 부와 출세가 자기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과, 그것을 못이룬 분들이 결코 못나서 죄인 취급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부와 출세의 정상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추락할 때입니다. 그제서야 자기가 죄인시하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분들도 자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고귀한 하느님의 작품이라는것과, 소외된 분들을 도와 같이 부와 명예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 교회의 가르침, 신부님의 말씀들은 그런 불행을 당하기전에 스스로 깨닫기를 촉구합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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