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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아픔이 매화꽃향기로~순례길118처(당고개/왜고개/용산성직자묘지/용산성심신학교/노고산/한국순교자103시성터)123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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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통의 순간들이 이제는 찔레꽃 가시로 우리의 가슴을 찌릅니다~
춥고 아픈 겨울 이겨낸 천상의 매화꽃 향기 맡고싶어 기도의 산과 언덕을 넘어 당고개 순교성지에 왔습니다~
이해인수녀의 당고개 성지앞 돌에 새겨진 시구중 한 귀절이다.
용산 당고개 성지는 기해박해때 이틀간 10명의 남녀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라한다. 당시 일반신자들은 서소문 밖에서, 사제들은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는데 설을 앞두고 상인들이 대목장에 방해되지 않도록 서소문밖에서 다른곳으로 처형지 이전을 요청하여, 한강가로 조금 나아간 용산 당고개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한다.
설 대목장을 보겠다고.... 사람의 목숨을 짐승한마리처럼 다루었다니...ㅊㅊ 구약의 땅 소돔과 고모라의 2천년전의 세상이나.. 2백여년전의 조선땅이나 끔찍하고 전율스런 잔인성이 인간 모두에게 잠재함을 보여주는게 참으로 슬프다.
박종원아우구스티노/홍병주베드로/권진이아가타/이경이아가타/손소벽막달레나 /이인덕마리아/최양업신부님 모친 이성례마리아 의 일곱명이 .. 다음날 홍영주바오로/최영이 바르바라/이문우 요한 모두 10명의 생명들이 이곳 당고개에서 참수되었다하고...
병오박해때는 성.김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이 새남터로 향한 처형길에서 잠시 쉬어갔던 곳이기도 하다고 전해온다. 운반자가 딸흘리는 신부의 풀어진 상투를 다시 묶어 주었고 보라색 겹저고리를 입은 김대건 신부는 머리를 들어 좌우를 살펴보았다는 전언도 있는..
역시나 당고개 순교성지 성전은 굳게 잠겨있어.. 성전 꼭대기 예수님께 절하고 그옆길 묵주기도의 길을 천천히 밟아 올라가며 성모님과 함께 오늘도 한단. 또한단. 묵주알 끈끈한 정을 나누며 나무 계단을 천천히 올라간다.
3단이 끝나고 오른쪽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늘공원 정원이 펼쳐지고 아담한 한옥 한채 대청마루에 순례객 들 쉬어가노라 앉아들 있고...
앞마당 성모님 품에 예수님 말고 치마자락 끄집어 댕기며 재롱부리는 저 작은 딸래미는 또 누군고?... 사랑스럽기도 해라~!
연결된 또 한단의 묵주알을 돌려봉헌 하곤... 담벼락 돌아가며 이어지는 오늘 두번째 성모님의 손을 잡고 십자가의 길 걸어간다.
한단 한단 마다 만나는 타일모자이크상 속 순교선조들이 오늘의 사람들에게 찔레꽃아픈 믿음위에라야 매화꽃 향기를 피울수 있다는 가르침 주신다.
4시면 문을 닫아걸어야한다며 퇴장을 종용하는 문지기 여직원에게 "12처까지 걸었는데 마지막 조금만 더 걷게 좀 봐주라고" 사정해도 얄짤없는 젊은 아가씨를 뒤로하고 쫓겨나오며?ㅋㅋ "아따~! 조금치의 양보도 배려도 없는 깍쟁이 처자네~"
할수없제.... 하늘정원 밖 나머지 5단의 신비를 편치않은 심기를 안고 또 성모님께 매달려간다. 서소문밖 하늘길.... 당고개 하늘정원....리노할매한테는 " 와 모두가 아리까리하고 . .. 빡빡 한지 모르겠다~!"
오늘도 빡빡한 일정을 안고 다음길 용산한강대로 왜고개를 향해 달려간다. 현재 군종교구청과 주교좌인 국군 중앙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왜고개는 한자로 와현 또는 와서현으로 불리던 곳으로, 옛날부터 기와와 벽돌을 구워 공급하던 와서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한다.
서울 명동 주교좌성당과 중림동약현 성당을 지을 때 사용했던 벽돌도 이곳에서 공급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왜고개는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7위의 순교자가 33년간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2위의 순교자가 43년간 매장되었던 유서 깊은 교회의 성지이다. 또한 왜고개 성지는 1846년 9월 16일 병오박해 때 순교한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이 잠시 모셔졌다가 박해가 진정된 후 미리내로 이장된 역사도 지니고 있다.
이런 역사를 통해 왜고개 성지는 모두 10위의 순교자가 묻혔던 곳으로, 그 중 8위가 1984년 5월 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식을 갖고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따라서 왜고개 성지는 순교성인들이 쉬어간 자리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삶과 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군종교구는 2013년 12월 15일 교회사적 의미를 살리고 순례자들이 좀 더 편안하게 순례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성지를 확장하여 새로 단장하고 축복식을 가졌다. 새로 단장된 성지에는 순교자 현양비와 대형 십자가상, 십자가의 길과 기도처 등이 마련되었다.
어둠이 살짝 내려앉는 언덕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성전뒤 경사진골목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성베르뇌 시메온 주교/성 브르트니에르 유스토신부 성 볼리외 루도비코 신부/성 도리헨리코 신부/프티니콜라 신부/푸르티에 신부/ 성 우세영 알렉시오/성 남종삼 요한/성 최형 베드로의 열분의 초상화가 무심의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성전뒤로 자그마하게 연결된 십사처를 묵상하며 오늘 세번째의 기도로 성모님을 찾는다. 쥐죽은듯 조용한 성전주변! 사람하나 보이지않는 왜고개 성지는 허전하고 외롭다...!!
그옛날 순교자들의 주검들을 잠깐이나마 품어 쉬게해주었던 왜고개성지엔 잠겨있는 성전도... 주말의 군종교구청도.... 그날의 순교자들의 넋들도... 침묵속에 고요한데... 저 아래 철창안 멍멍이 소리만 썰렁한 하늘가로 울려퍼진다.
다음은 효창원로15길에 있는 용산성당이 품고있는 성직자묘지를 향해간다. 성직자묘지는 용산이라는 산의 남쪽자락 용산성당내 양지바른 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때 이근처에는 삼호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한강을 시원하게 바라보는 명승지여서 옛부터 장안의 선비들이 자주 찾는 쉼터였다한다.
성직자 묘지로 꾸며지게 된 시기는1890.2.21 블랑주교가 서거하면서 조선교구에서는 당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사제들의 묘를 한곳에 모을 수있는 성직자묘지를 조성할 필요를 느끼고 후보지를 찾던 중 이곳을 매입해 묘지를 조성하게 되었고,
특히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조선에 들어오지못하고 만주땅에서 병사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가 조선교구 설립 100주년이 되던1931.10.15 에 이곳으로 이장됨으로써 성직자 묘지로서의 뜻이 더 깊어지게 되었다 한다.
어둑한 저녁녘 저만치 한 자매가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뒤를 따라 우리도 십자가의 어머니를 청하고 걸으며 양지바른 언덕에 누워계신 사제들의 안식을 구해본다.
물이 부족하고 귀하던 시절.. 저 아래 좀 사는 동네집을 두드리며 "물한동이만 주이소~~"하며 산복도로 꼭대기 달동네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것없이 물동냥을 나서면 아무말없이 물을 나눠가게 하던 아랫동네 사람들의 물씬한 정의 나눔이 마치도 오늘 용산꼭대기 성당마을 사람들속에서도 찾을수 있을것 같은 향수를 느낀다.
마주치는 성당가족 봉사자자매들의 웃음띈 얼굴과 관심어린 한마디들속 친절은 지쳐있는 나그네에겐 작은 따스함의 기운이 된다.
어둑해져가는 근처를 돌아다니다 용산성심 신학교 정문을 찾아든다. 이곳 또한 감회가 새로운 곳인데.... 역시도 먼발치서 안채를 기웃거려 볼뿐... 학생들도 등교를 미루고 있다는 경비초소 형제님의 친절한 안내말을 듣다 멀리서 미안해하는 성심상께 깊은 절로 대신하고 돌아나온다.
작년 여름 모기와 날파리떼가 득실거려대던 여주 부엉골의 허름한 집한채를 찾아가던 일이 생각난다.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 소재한 부엉골은 1882년에 공소가 설정된 곳이며, 1885년 개교한 예수 성심 신학교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부엉골은 박해기의 배티, 배론 신학교 등을 계승한 신학교터로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있게 한 모태이다.
성소의 못자리를 태동케 한 거룩한 땅은 한불수호조약체결과 함께 이곳 용산으로 자리를 옮겨 왔다하는 내용을 알고 돌아보니 "그 모진 고생을 하고 이리도 좋은 자리로 옮겨왔으니 얼마나 좋았을꼬!"
노고산 성지에 있는 성 앵베르 주교와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의 현양비. 마포구 서강대학교 캠퍼스 내 자리잡은 성지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세 성인의 유해가 4년 동안 안장됐으며,이밖에도 많은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혔던 곳이라 전해온다
성인들의 유해를 수습한 절두산의 박 바오로가 집안의 선산인 삼성산에 이장했다가. 1901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겼다가 명동 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됐고, 현재는 절두산순교성지 지하 성해실에 모셔져 있다.는 기록을 읽어가며 캄캄한 어둠속에서 뿌듯한 감사의 예를 세분께 올리고 또 한강저편을 향해 달려간다.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터가 있는 여의공원로 68은 세종대왕 상이 앉아있는 근처로서 대왕의 오른쪽 손가락을 따라 50여미터 걸어가다보면 어둠속에 앉아 반짝거리고 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의 103위 시성 선언이 있었던 이곳또한 잊지못할 땅이다.
뭐가뭔지도 모르고 어느날 새벽같이 능곡성당 가족들 따라 나들이 나섰던 대단한 길에는 한강다리를 넘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와 수많은 차들의 집결지들.... 호루라기소리 요란함속에 젊은날의 할배손 놓지않으려 애쓰던 촌뜨기 아낙 리노할매는 무슨일이 저기 멀리서 일어나는지 학생때 운동장 줄서며 조회라도 하는 건가?... 뭔 사람들이 이리도 많노?
쌀쌀한 기온속에 옷자락 움켜잡던 기억과 100만이 모인 인파속에 휴지하나 떨어져있지 않다는 경이로운 뉴스특보 소식과 또 그 먼길을 걸어 차로 돌아와 어떻게 돌아갔는지.... 점심나절이 훨씬 지난 시간들은 마치도 외딴곳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12광주리 넘치는 나눔의 풍성함을 안겨주셨던 예수님 시대의 한 장면까지도 연상케 하지만서도 5천명과 백만의 인파는 무지무지~ 어마한 의 느낌일테다.
100년이 넘도록 계속된 박해 중에 만 여명이 순교하였지만 기해박해,병오박해, 병인대박해 때 순교한 분들중에서 1925년에 79위, 1968년에는 24위, 모두 103위가 시복되었고 이들이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모두 시성의 영광을 입게 되었다는 그날 역사의 시간속에서 리노할매는 그저도 어리둥절... 뭐꼬! 뭐꼬!
세월이 수십년이 흐른뒤 오늘에야 그날 활짝열린 천국문을 밟고 영광의 눈부신 순교관을 쓴 103위 영혼들이 호산나의 찬양소리 드높이 하늘나라 들고 있음을 알았구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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