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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하12~13장(다시 일어난 박해. 유다의 활동... 죽은 자들을 위한 속죄제사. 안티오쿠스 유파톨의 유다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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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choi98] 쪽지 캡슐

2006-10-02 ㅣ No.104900

다시 일어난 박해

12

1)이렇게 협정이 체결되자 리시아는 왕에게로 떠나 갔고 유다인들도 집으로 돌아 가 농사를 지었다.

 

2)키프로스 용병대의 사령관이었던 니가노르를 위시해서 지방 영주들 중 디모테오와 겐내오스의 아들 아폴로니우스와 히애ㅔ로니모스와 데모폰은 유다인들이 안정되어 평안하게 살아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3)요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포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은 유다인들에 대해 조금도 악의를 품지 않은 듯이 가장하고, 자기들과 함께 사는 유다인들을 초청하여 자기들이 마련한 배에 그들의 처자와 함께 타게 하였다.

 

4)그것은 온 마을의 공적인 결의에 의한 것이었고 유다인들은 화평 속에 살기를 원했으며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초청을 받아 들여 배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요빠 사람들은 그 배를 침몰시켜 이백 명이나 되는 유다인을 죽여 버렸다.

 

유다의 활동

 

5)유다는 자기 동포가 이렇게 처참하게 학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 부하들을 소집하여

 

6)정의의 재판장이신 하느님께 호소하며 자기 동포를 죽인 자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밤중에 요빠의 부두에 불을 지르고 배를 불태워 버리고 도망치는 자들을 칼로 찔러 죽였따.

 

7)그러나 성문이 닫혔으므로 아무 때고 다시 와서 요빠 사람들을 멸종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며 철수하였다.

 

8)얌니아 사람들도 자기들 사이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에게 똑같은 짓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유다는

 

9)밤중에 얌니아를 습격하여 항구와 함대에 불을 질렀다. 그 타오르는 불길을 백여 리나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에서도 불 수가 있었다.

 

10)유다군이 그 땅에서 약 오 리쯤 되는 거리를 진군, 디모테오를 향하여 가는 길에 오천 명 가랑 되는 아라비아인 한 부대가 기병 오백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습격해 왔다.

 

11)격전 끝에 유다와 그 부하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패배를 당한 이 유목민은 자기들의 가축을 내어 줄 것과 그 밖의 여러 방법으로 유다의 군대를 도와 줄 것을 약속하며 유다에게 화평을 청하였다.

 

12)유다는 그들이 여러 가지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의 화평을 받아 들였다. 그들은 유다와 화평을 맺고 자기들의 천막으로 돌아 갔다.

 

13)그 후 유다는 흙담과 돌담으로 둘러 견고하게 만든 방위를 갖춘 도시를 공격하였다. 이 도시는 카스핀이라고 하며 거기에는 여러 이방민족이 섞여서 살고 있었다.

 

14)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견고한 성벽과 저장해 둔 식량을 믿고 유다와 그 부하들에게 무례막심한 행동을 하고 그들에게 치욕을 주었을 뿐 아니라 모독적인 언사를 서슴치 않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마구 하였다.

 

15)유다와 그의 부하들은 옛날 여호수아가 우주를 지배하시는 위대하신 하느님의 도움으로 성을 공격하는 기구와 성을 파괴하는 기구도 없이 예리고성을 함락시킨 것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기도드린 다음, 성벽을 향하여 맹렬히 돌진하였다.

 

16)이렇게 하여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그 도시를 점령한 다음, 끔찍할 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다. 이렇게 되어 폭이 사, 오백 미터 되는 부근 호수는 피바다가 되었다.

 

17)유다군은 거기에서 약 삼백 오십 리 가량 진군하여 카락스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튜비아인이라고도 불리는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18)그러나 디모테오는 그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미 떠난 후였기 때문에 그 곳에서 디모테로를 잡으려 했던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갔다.  그러나 디모테오는 그 부근 어느 곳에 상당히 강력한 수비대를 남겨 놓고 갔었다.

 

19)마카베오군의 지휘관 도시테오스와 소시파트로스는 그 곳을 막아서 디모테오가 요새에 남겨 놓고 간 만 명 이상 되는 적병을 전멸시켰다.

 

20)그리고 마카베오는 전군을 여러 부대로 나누어 각 부대의 지휘관을 세우고 보병 십 이만과 기병 이천 오백을 가지고 있는 디모테오는 아녀자들과 짐을 카느나임이라고 하는 곳으로 미리 보냈다. 그 지방의 통로는 모두 좁아서 접근하기가 힘들었고 따라서 그 곳은 공격하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었따.

 

22)그러나 유다의 선붕부대가 나타낫을 때에 모든 것을 다 내려다 보시는 분이 적군에게 나타났다. 그래서 적군은 공포에 사로잡혀 앞을 다투어 이리저리로 흩어져 도망갔다. 그러는 통에 그들은 저희끼리 치고 찔러 자기네 편 칼에 죽기도 하였다.

 

23)유다는 더욱 용기를 얻고 추격을 계속하여 그 악당들을 칼로 베어서 적군 삼만 명 가량을 죽였다.

 

24)디모테오 자신을 도시테오스와 소시파트로스의 부하에게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죽는 날이면 자기 밑에 붙잡혀 와 있는 유다인의 많은 부모들과 형제들에게 좋지 못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여러 가지 교묘한 말로 속이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25)디모테오가 이렇게 여러 가지 말로 유다인 포로들에게 손을 대지 않고 고스란히 넘겨 주겠다고 확약을 하기 때문에 유다군은 자기 형제들을 구할 마음에서 그를 놓아 주었다.

 

유다의 계속적인 승리

 

26)그 후 유다는 카르나임과 아테르가티스의 신전을 향하여 진군하고 그 곳을 공격하여 적 이만 오천 명을 죽였다.

 

27)그는 이들 적군을 전멸시키고 승리를 거둔 후 여러 동족이 많이 살고 있는 견고한 도시 에프론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그 곳은 리시아의 본거지였다. 그 성벽의 전면에서 있는 젊은 장사들이 성을 용감하게 지켰으며 성 안에는 많은 전쟁기구와 투석기가 마련되어 있었다.

 

28)그래서 유다군은 어떠한 적군의 병력도 놀라운 힘으로 부숴 버리시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하여 유다군은 그 도시를 수중에 넣고 그 곳에 있는 적군 이만 오천 명을 죽였다.

 

29)유다군은 또다시 그 곳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약 삼백 리 가량 떨어져 있는 스키토폴리스라는 곳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30)그러나 그 곳에 사는 유다인들은 스키토폴리스 사람들의 호의를 입었고 불우할 때 친절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증언하였다.

 

31)그래서 유다와 그의 부하들은 그 곳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앞으로도 자기 동족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는 동안 오순절이 가까왔기 때문에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32)오순절 축제가 지난 후 유다의 군대는 이두매의 총독 고르기아스를 치기 위해 돌진하였다.

 

33)고르기아스는 보병 삼천과 기병 사백을 가지고 그들에게 대항하였다.

 

34)싸움을 하는 동안에 소수 유다인들이 전사하였다.

 

35)바케노르의 부하 중에 도시데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힘이 센 기병이었다. 그는 저주받은 고르기아스를 생포하려고 길을 막고, 있는 힘을 다하여 그의 겉옷자락을 끌어 당겼다. 그 때에 트라키아의 기병 한 사람이 도시데우스를 덮치며 그 어깨를 칼로 내리쳤다. 이 틈에 고르기아스는 마리사로 도망쳐 갔다.

 

36)에스드리스와 그의 부하가 장시간의 교전에서 몹시 지쳤기 때문에 유다는,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자기 편이 되어 주시고 싸움에 인도자가 되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7)그리고는 자기 나라 말로 군가와 찬미가를 우렁차게 부르면서 고르기아스의 군대를 기습하여 패주시켰다.

 

죽은 자들을 위한 속죄제사

 

38)그리고 그 후 유다는 자기 군대를 모아 아둘람이라는 도시를 갔다. 제칠 일이 다가 오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관습대로 몸을 깨끗이 하고 그곳에서 안식일을 지켰다.

 

39)유다와 그의 부하들은 전사자의 시체를 묻어야 할 날이 촉박하였으므로 시체들을 거두러 가야만 했다. 그 시체들을 그 다음날 조상들의 묘소에 운반하여 친족들의 옆에 함께 묻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

 

40)그런데 그 시체 하나하나의 옷을 들쳐 보니 그들은 얌니아의 우상을 부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유다인이 이와 같은 물건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41)그들은 숨은 일을 모두 드러내시는 정의의 재판관이신 주님을 모두 찬양하였다.

 

42)그리고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모두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고결한 유다는 군중들에게 죄지은 자들이 받은 벌이 죽음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이제는 그들도 죄를 짓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43)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가 이와 같이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4)만일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허사이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45)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안티오쿠스 유파톨의 유다 침략

13

1)백 사십 구년에 유다와 그의 부하들은 안티오쿠스 유파톨이 대군을 거느리고 유다 나라를 쳐들어 온다는 소식과,

2)안티오쿠스의 후견인이며 재상인 리시아가 동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보병 십 일만, 기병 오천 삼백, 코끼리 이십 이 마리, 큰 낫으로 장비를 갖춘 병거 삼백 대로 구성된 그리이스군을 거느리고 온다는 것이었다.

 

메넬라오스의 죽음

 

3)그 때에 메넬라오스도 그들 편이 되어 안티오쿠스를 여러 모로 구슬렀다. 그러나 이것은 조국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관직을 유지할 생각으로 한 일이었다.

 

4)왕 중의 왕이신 하느님께서는 안티오크스의 마음에 이 악한에 대한 분노를 일으켜 놓으셨다. 안티오쿠스는 메넬라오스가 모든 화의 근원이었다는 말을 리시아를 통해 듣고 그 지방의 관습대로 이 악한을 베레아로 끌어다가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5)거기에는 높이 이십 오 미터 가량되는 탑이 있었다. 그 속은 재를 가득 채웠고 깔때기처럼 된 장치가 있어서 무엇이든지 던져 넣으면 재 속으로 빠져 들어 가게 되어 있었다.

 

6)누구든지 성물을 훔치거나 그 밖의 극악한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 탑으로 올라 가 탑 속에 떨어져 죽게 하는 것이었다.

 

7)율법을 어긴 자는 이렇게 죽었는데 메넬라오스는 또한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8)재 속에 묻혀 죽었으니, 거룩한 불과 재가 있는 제단에 대해서 그렇게도 많은 죄를 지은 자였던만큼 얼마나 당연한 일이었는가!

 

리시아의 패배

 

9)안티오쿠스왕은 자기 아버지 때보다도 더욱 악랄한 압박을 유다인들에 가하려는 생각으로 진격해 오고 있엇다.

 

10)유다는 이 소식을 듣고 율법과 나라와 성전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이 때야말로 어느 때보다도 주님께서 도와 주셔야 하겠다고 주님께 밤낮으로 호소하라고 백성들에게 명령하였다.

 

11)그리고 최근에 이르러사야 조금 숨을 돌리게 된 이 백성들을 다시 모독적인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호소하게 하였다.

 

12)사람들은 모두 유다의 명령을 실행하며 사흘 동안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단식하며 땅에 엎드려서 자비로우신 주님께 탄원하였다. 유다는 그들을 격려하며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명령하였다.

 

13)원로들과 따로 협의한 끝에 유다는 안티오쿠스의 군대가 유다 땅에 쳐들어 와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전에 유다군이 먼저 진격해 나가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결판을 내기로 결정하였다.

 

14)결과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에게 맡기고 부하들에게는 율법과 성전과 수도와 나라와 전통을 위해서 죽기까지 고결하게 싸우라고 격려한 다음, 유다는 모데인 근처에 진을 쳤다.

 

15)"승리는 하느님의 것" 이라는 표어를 부하들에게 준 다음 유다는 가장 용감한 젊은이들을 뽑아 왕의 막사를 밤에 습격하여 적진에서 이천 명을 죽이고 가장 큰 코끼리와 그 위에 타고 있는 병사를 찔러 죽였다.

 

16)드디어 그들은 적진을 공포와 혼란의 수라장으로 만들어, 승리를 거두어 철수하였다.

 

17)이 작전이 끝난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그것은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이었다.

 

안티오쿠스와 유다인들의 협정

 

18)안티오쿠스왕은 유다인들이 얼마나 대담한지를 잘 알고 교묘한 전략을 써서 그들의 요새들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9)그래서 그는 유다인들의 요새 벳술로 진격해 갔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격퇴를 당하고 또다시 공격했지만 결국은 패주하고 말았다.

 

20)그 때에 유다는 벳술성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을 보내 주었다.

 

21)유다군 중에 로도코스라는 자가 적군에게 비밀을 누설햇다. 이것이 발각되어 그는 붙잡혀 감옥게 갇히고 말았다.

 

22)안티오쿠스왕은 다시 벳술성 안에 있는 사람들과 교섭을 벌여 서로 화해한 다음 거기에서 물러갔다. 그리고 나서 그는 유다와 그의 부하들을 습격하였으나 오히려 더 큰 긍지에 빠지게 되었다.

 

23)그뿐 아니라 자기가 국사를 맡겨 안티오키아에 남겨 두었던 필립보가 절망상태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하여 유다인들에게 화평을 제의하고 그들의 모든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이런 조약을 맺고 나서 그는 희생제무을 바쳐 성전에 경의를 표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경내에 여러 가지 시설을 해 주었다.

 

24)그는 마카베오를 영접하고 헤게모니데스를 프톨레마이스로부터 게라에 이르는 지역의 총독으로 세운 다음,

 

25)프톨레마이스로 떠나 갔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스 시민들은 그 화평조약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실상 그들은 너무나도 분개한 나머지 그 조약의 조문들을 무효화하고 싶어했다.

 

26)리시아가 단상에 나타나 최선을 다해서 변명한 끝에 백성들을 설득시켜서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하여 그들의 호감을 산 다음 그는 안티오키아로 돌아 갔다. 안티오쿠스왕의 원정과 철수는 이상과 깉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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