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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롓길의 수녀님들♬~141처(고산성당/되재성당/대승리/초남이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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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일 토요일 아침 8시 30분~~ 간밤에 비가 쏟아지고 지금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270킬로의 먼길을 전북 초남이 성지를 향하여 핸들을 잡는 할배를 향하여 "오늘도 부탁해요~" 무거운 짐을 안겨주며 낮동안의 편안한 순례길에 오른다. 가는 중에 뭘 잘못눌렀는지 네비안내양의 지도판이 집으로 가는 거꾸로의 길을 자꾸만 가리키고 있어 빗길에 약간은 불안스런 마음이 들어 혹시? 하느님께서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는 건가?' 싶기도 한데 리노할배 한말씀...."왜 이상한것 손대가지고 이런게 나와...." "옴마야! 나는 아무것도 안만졌는데....'" 한참을 달려가다 결국 어느휴게소에 들러 무조건 이것저것 눌러댔더니 다시 초남이의 그림이 나오는데 바로 할배의 옆버튼이 잘못조작되어 것 봐라며 시시비비를 가려내고야 다시 고속도로의 매끄러운 길을 달려간다. 가는 도중에 방향조정의 키를 누르고 초남이 보다 더 가까이있는 고산성당을 향하여 달려가 1시 16분에 도착하니 거진 5시간을 달려왔던 것이다. 앞뒤 옆문까지 꽉 잠겨있는 성전을 한바퀴 돌아가며 성모님과 모든 성인들께 인사드리고 나오는 하늘은 아직도 잔뜩 찌뿌린채 비를 머금고 있다.
저만치 수녀님 한분이 한적하게 우산들고 걸어나오셔서 인사드렸더니 운동삼아 묵주의 성모님과 함께 산책길 나섰다며 되재성당의 전신이었던 고산성당의 역사를 이야기해주시더니 저만치 멀리 사라져 가셨다. 이데레사 수녀님과의 만남의 인연이었다.
고산본당의 역사는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사와 시작을 같이했다한다. 1791.진산의 윤지충이 순교하고 이후 윤지한 . 충청의 사도 이존창이 운주면 저구리로 이주하면서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한다. 1801.박해후에는 전라도가 전국신도들의 피난지가 되었는데 이들의 관문이 되었다하고 1866.박해후에는 고산지방의 심산궁곡들은 신도들이 이룬 교우촌으로 메워졌다 하며, 1801년 윤제헌의 순교를 시작으로 고산지방의 수많은 교우들이 고산. 전주. 여산옥으로 끌려가 순교했다 한다. 그후 되재본당으로 이주해 본당을 신축하던중 동학혁명을 겪고.. 한국전쟁으로 부근의 모든 본당과 공소들이 전소되어 허허벌판의 불모지에 다시 고산땅에 부지를 매입해 지극히 가난한 교우들의 피와땀으로 1958년 1월에 낙성식을 가졌다한다. 30년이 지나오며 노후된 성전을 다시 지어 1994년 11월에 봉헌해 오늘까지 멋진 모습으로 순례길의 모든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한다.
고산성당을 나와 되재성당을 찾아가는 온 길가는 한우농장들이 즐비하게 줄을 서 이어지고 있어 아니? 갑자기 여기로 횡성한우 마을들이 옮겨져 왔나? 온 동네가 한우를 사육해 먹고사는 마을인가....홍보를 해야제.. 처음 알았네.^^ 1895년 세워진 되재성당은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우리나라 2번째 건립된 성당이자 최초의 한옥성당으로 지어졌다가 아쉽게도 6.25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어 그자리에 1954. 되재공소건물을 새로 세웠다 한다.
조선후기 천주교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중심이되어 형성된 교우촌으로서의 전북 화산면 승치리에 자리한 고개이름으로 지어진 되재성당은 칸막이가 되어었어 남자와 여자의 좌석이 뚜렷히 구분되어있는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게 참 신기한 남녀칠세 부동석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양옆으로 바오로와 베드로의 양쪽 날개로 버티고 계신 주님앞에 꿇어 경배드리고 성모님께 인사드리고, 예수성심상께 또 깊게 절하고
뒤로 돌아올라간 중턱에는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젊은 신부님 두분의 묘가 꽃망울 잔뜩 머금은 동백나무 아래 평안히 누워계신 모습을 쳐다보며 무한한 감사의 마음 전해드린다.
아직도 비가 오락가락 하는 성전마당으로 몇팀의 순례객이 찾아드는 것을 지나쳐가며 다음 목적지인 대승리 (전동성당의 발상지)를 향해 찍고 달려간다. 대승한지마을이란 입간판을 끼고 돌아가는 주소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천호 성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대승리는 전주 지역 선교의 요람인 전동 성당이 세워지기 전 복음의 씨앗이 움튼 곳이다. 훗날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전동 성당을 세우기 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보두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가 1889년 봄부터 1891년 6월 23일까지 2년여 간 이곳에서 사목 활동을 했다. 전동 성당은 본당 설립 1백주년을 맞아 1990년 6월 이 부지를 매입해서 다음해 12월 8일 '전주 전동 천주교회 발상지'라 새긴 기념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이곳 대승리의 역사와 부지를 매입하게 된 경위가 간단하게 적혀 있어 찾는 이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기념비 뒤편으로는 대나무숲이 울창해 보두네 신부와 당시 신앙의 선조들이 지녔던 대쪽같이 굳건한 신앙을 전해 주고 있는 듯하다. 이곳 또한 가는길 양옆으로 온통 순두부간판이 걸려있어 이곳은 두부요리가 기똥찬 마을인가보다... 가늠하며 몇번을 돌아도 눈에 띄지않는 목표장소는 오늘도 눈밝은 할배의 눈에 딱 걸려... "저기 있네~" "어디 어디요 아무것도 안보이구만" 길가한옆으로 차를 세우고 길다란 비닐하우스 옆길을 걸어가는 길에는 새봄의 소식을 알리는 어린쑥들과 봄나물의 삐쭉거림이 사랑스럽다. 질퍽거리는 흙을 밟으며 제법 걸어들어가니 낮으막한 돌십자모양의 비석에 그간의 역사와 발상지로서의 의미가 소상하게 적혀져있는 글들을 보고서야.... "덱끼! 참! 어렵다. 길도없고, 알림판도없는 안타까운 곳"
완주땅의 마지막 순례지인 초남이 가는길은 전주역. 한옥역을 스쳐지나가는 길가로 얼른보기론 꼭 청와대와 비슷하게 생겨있어... "옴마야! 반석아부지.... 청와대가 여게도 있네요.." "그러게... 그래도 윤석열이는 절대로 안들어갈걸... 거기들어가면 죽는줄 알아" 우하하하~ 한바탕 웃어제끼며 찌부퉁한 오늘의 날씨에 스트레스 한방 날려버린다. 4시 37분에 도착한 초남이 마을은 안온하고 조용한 양갓집 뒤뜰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어두스럼한 성전안에 들어가 오늘도 양팔기도로 예수님의 수난을 작은 불편으로 함께 봉헌하고. 그곁 성가정 가족앞에 열개의 초를 봉헌하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더니
수녀님 한분이 우리를 맞아주시며 팔들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좋았다며 초남이 성지의 유래와 역사를 이야기해 주시더라~
호남고속도로와 전주, 익산이 갈라지는 곳에 초남리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이곳이 바로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의 생가 터가 자리한 곳이다. 1754년 초남리에서 태어난 유항검은 1784년 늦은 가을 세례를 받고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함께 전라도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거의 절대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유항검은 전라도 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해 10월에 잠수 되는데 이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이로 인해 유항검의 처 신희, 제수 이육희, 동정부부이자 유항검의 아들 며느리인 유중철과 이순이, 둘째 아들 유뮨철 그리고 조카 유중상이 순교하였과, 이분의 무덤은 전주 '치명자산'에 합장되어 모셔져 있다. 현재 유항검의 처와 제수를 제외한 5명은 현재'하느님의 종'125위로 선정되어 복자로 시복되었다. 전라도 지역에서 최초로 운영되었던 인근의 교리당 터는 주문모 신부가 호남에서 처음으로 미사와 성사를 집전한 장소이기도 하다. 주 신부는 그의 집에 머물며 성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하는 한편 유항검과 함께 여러가지 교리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그림같은 연못에 한가로운 붕어떼는 그날의 참담함을 모른듯 평화롭다. 국사범에게 내려지는 죄목으로 집을 불사르고 집터는 웅덩이로 만들어 3대를 멸한다는 조선왕조 500년사에 가장 큰 형벌이 치뤄진 이곳은 그날 온 마을터가 웅덩이 물바다로 변해있었는데 시대를 거쳐오며 오늘은 작고 예쁜 아담한 하늘담은 연못속에 우리 주님 십자나무에 빠져 하늘 우러러 계신다.
별채마루엔 동정부부 유중철과 이순이 상이 함께 하나이신 천주를 죽음으로 증거하고 있고....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한 시간이라 차를 몰아 이곳에서 떨어져있는 교리당을 찾아간다. 문은 잠겨져 있어 이곳에 모셔진 한국최초의 순교복자 윤지충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윤지현 프란치스코의 유해엔 인사하지 못하고 돌아나와
십자가의 생생한 아픔과 고통을 느껴가며 함께 걸어간다. 제주도 새미은총동산의 십사처의 예수님과 그 일행들의 생생한 실제모습을 닮은 초남이 십사처의 성모님과 만나신 예수님의 찐~한 서로의 눈길에서 한없는 아픔과 참담함과 그리고..... 신뢰를 함께 안아가는 노부부의 마음에도.. 함께 울고싶은 애잔함이 끓어오른다. (내 아들 반석이의 모습이 함께 클로즙되어오는 상황연출이..!!)
전주교구 전체가 거의 유항검과 그 가족들의 순교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의 생각은 전주교구를 순례한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일테다... 아마도! 수녀님 말씀으론... 유항검순교자는 초남리 땅 거의가 그분의 소유일 정도로 부자였기에 전주교구 전체지역을 많은 재물과 가족모두의 신앙의 열정을 합쳐져 천주님을 증거한 복음의 사도역활을 누구보다 충실히 살았다는 말씀을 살갑게 들려주며...
이 작고 조용한 시골의 거룩한 땅 하늘담은 연못속 예수님을 오늘은 수도자의 입을 빌어 그날의 믿음이 전해지고 있음에 감사하며 하느님께~ 영혼담은 찬미를 올려드린다! 150주년된 천호성지 아래 다리실 순교기념관의 문은 오늘도 꼭 다문채 끄떡도 없어.... 다음 코스 초남이 성지를 향해 달려가는 8시50분의 시간이다. 예쁜 연못속에 우리주님 십자가 하나 잠겨있던 그 작고 평화로운 집이 있는 유항검 성가족이 살던 곳....에 도착한 시간 9시47분 집앞 걸려있는 안내문엔 오늘 미사는 11시 교리당에 있다고 적혀있다. 여전히 여름날의 해는 죽기로 원하던 저 성경속 니네베의 요나만큼이나 뜨겁고, 고통스러울 지경으로 땅을 밟기가 힘들지만.... 미사가 시작되기전 이곳 교리당앞의 십자가의 길은 처절하리만큼 그날의 장면들을 연상케하며 고통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게 하는 길이다. 은퇴사제의? 미사집전과 함께 오늘 미사는 성모신심미사로 봉헌되어진다? 세상에... 뜨거운 여름날이라 8월 한달은 성모신심 미사가 없다는 소식을 좀 아쉬워 하며 길나선 우리에게 자비의 하느님 엉뚱하게도 거룩한 이 성지에서 성모님과의 미사를 봉헌하게 하시다니.... 참으로 감사한 은혜의 시간에 주님 찬미받으소서!. 초봉헌과 함께 미사예물을 올리며 거룩한 미사로... 지쳐있는 우리의 몸과마음을 위로하시며 감사로이 순례길 갈수있는 힘을 주시는 우리 아버지는 최고이시다.!^^ [출처] 본향을 향하여♬75~초남이 성지(전주교구)|작성자 리노할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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