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4일 (수)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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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롓길145처(김제순교성지/고창개갑장터순교지/김제수류성당/장수수분공소/진안어은동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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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2-04-18 ㅣ No.10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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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바쳐 신앙을 지킨 복자 한정흠 스타니슬라오의 순교비가 있는

김제 순교성지 요촌성당을 찾은 시간은 완주 초남이 성지서 부터 부지런히

달려왔어도 어둠이 내려앉는 7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굳게 잠겨있는 성전문 가에 서있는 성모님과 예수 성심상께 깊은 절하고

저만치 공원과 어우러져있는 복자 한정흠의 순교비앞에 묵념하며 이분의

삶의 현장엔 어떤일이 있었나 살펴본다

복자 한정흠 스타니슬라오는 1756년 전북 김제에서 가난한 양반자제로 태어났다.

전주 초남이에 있는 먼친척 유항검의 집에 거주하며 그집 자녀들을 가르쳐오다

유항검을 통하여 천주교를 접했던 그는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해오다 신유박해와 더불어 유항검과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였다한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김제 장터에서 45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는 기록을 읽으며

또 한분의 순교자께 깊은 믿음의 깨우침을 배운다.

 

김제땅에서 하룻밤을 묵을 요량으로 어둠속을 불밝혀가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다. 현양비와 함께 덩그마니 이어진 십자가의 길을 보이지않는다는 핑계로

돌아나올 양심은 안되어 하루종일 피곤하실 어머니를 또 불러 내어 터벅터벅 걸어간다.^^

"밤에도 낮에도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그리고 다음 성지 수류동성당을 향해 달려가며 그곳 근처 모텔에서라도

하룻밤 지낼 요량으로 어둠속을 뚫고 찾아가는데 같은 김제땅이라 가까울줄 알았는데

전주를 끼고 또 한참을 구불구불 돌아가다 산속 깊은 골 까지 가서야 덩그마니 홀로 서있는

성당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한시간을 넘게 달려오다니... ㅠㅠ

"뭐야?..... 골짜기성지도 아닌데 왜이리 깊은 산아래까지 데불다 주노?"

 

저만치 주차장 귀퉁이에 하얀색 승용차한대가 불을 깜빡이며 서 있기에

"저 사람도 우리처럼 멀리서 성지찾아 와서는 어쩔줄 모르는 모양이네...ㅊㅊ"

 

차문이 열리고 남자분 한분이 내려서는 "어디를 찾느냐고?" 물어온다.

"수류동성당을 찾아왔다가 밤이늦어져 근처에서 하룻밤자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왔다가 고창성지를 갈려한다" 했더니....

당신은 성당 사무장인데 저녁미사 끝나고?... 퇴근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한다.

 

"여기는 숙박할 데가 마땅치 않는데 차라리 늦은밤이라도 고창에가서 자고

순례길 돌다 서울로 올라가는 코스를 잡는게 편하지않겠느냐고 조언을 해주는 바람에

솔깃한 마음이 들어 고창 개갑장터 순교성지를 찍고 또 달려간다.

전주를 돌아 정읍을 지나고..... 얼추 2시간을 가까이 달려가서야 도착하는 고창땅

또한 만만치 않은 길이다.

 

초저녁부터 눈까풀이 내려앉는 졸음은 할배한테 미안해서 정신을 차리려 아무리 애를

써봐도 꾸뻑~ 꾸뻑~ 차창을 들이받는다.

겟세마니 동산의 제자들도 이렇게 졸렸나 보다....^^

 

고창군내에 있는 그린파크장 이란 모텔에서 짐을 풀고 뜨거운물로 하루종일의

찌꺼기들을 씻어내곤 그냥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뻗어버린다.

오늘은 4만원 짜리 숙박~~ "쫌은 찝찝하다"는 할배의 궁시렁거림은 이미 자장가처럼....

 

다음날 주일아침 8시30분 고창성당 미사시간에 맞춰서 일찌감치 도착해 성전안

십사처를 할배와 둘이 돌아가며 엊저녁 늦도록 고생한 우리 어머니를 또 불러일으킨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돌아온 작은아들의 비유로 이어지는 주일 강론을 들으며 

모니카성녀의 쭈글쭈글한 주름속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참으로 엄청난 기적의 힘을

발휘했던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위대한 탄생은 그렇게 하느님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미사를 끝내고 또 달려가는 고창개갑장터 순교성지이다.

엄청나게 넓은 작은동산길 쭉 이어 펼쳐진 십사처 또한 만만찮은 길이다.

아직 조성중인 옆에는 순교복자 수녀회가 들어선다고 몇채의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세워져있다.

초원위의 그림같은 집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여

살아갈 그분들의 조용한 삶이 아름답다고만 느끼기엔 짠~한 마음이 드는 리노할매이다.

주일에도 풀을 매는 중년의 두 부부가 햇살 쏟아지는 땅바닥에 앉아 일하고 있는 모습이

괜스레 미안해서 차안에서 두유 두팩이라도 가져와 건네주었더니....

무안할 정도의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에구~ 빵이라도 같이 전해줄걸~" 아쉬워 한다.


복자 최여겸 마티아의 순교터인 이곳 성지는 옛날 아주 큰 우시장이 있던 장소였다한다.

전라도 무장의 양반집에서 태어난 최여겸 마티아는 진산의 윤지충에게 교리를 배웠고.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를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한다.

신유박해때 이곳 개갑장터에서 고향사람들에게 본보기의 참수형을 당하게하여

신앙의 불씨를 사그러뜨리려 했으나 순교의 불꽃은 더욱 활활 타오르기만 했다한다.

넓은 풀밭 광장 한가운데 하늘높이 솟아있는 순교 현양탑엔 야곱의 사다리모양을 한

몇칸의 그림속 최여겸 마티아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형상으로 꾸며진 색유리

벽화의 천국계단이 하늘로 이어져 있다.

청보리와마늘밭이 지천에 깔려있는 길가로 소나무들이 끝도없이 또한 이어지는...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고창땅은 전라북도의 제일 끝자락에서 소리없는 침묵으로

순례객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며 기약도 없는 해후를 아쉬워 한다.

어젯밤 돌아나온 수류성당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은 바쁘다.

아직도 들러야할 곳이 두군데나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도 집에는 밤이 늦어서야

도착하겠다.

어젯밤 그 장미카엘 사무장께서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시며 성당 잠긴문까지 열고

성체조배를 허락한다.

성체조배후 성당역사를 이야기해주며 한국에서 제일 많은 성직자와 수녀들을

배출한 이곳 수류동 성당을 장시간 이야기로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

6.25전쟁때 50여명의 신자들이 저 넘어 언덕으로 끌려가 몰살을 당해 순교했다는 

역사를 가진 이곳 성당은 133년의 역사와 함께 17만평의 넓은 땅을 가진

어미가 품어주는 땅 모악산의 정기를 받은 명당이라며 곳곳의 곳간들을 다 보여주더라^^..

성전앞에는 폭탄으로 만든 작은 종이 맑고 경쾌한 소리로 미사시간을 알려주고..

성전옆 넓다란 등성이를 따라 돌게 만든 십자가의 길 또한 바위산마냥 묵직하게 앉아있다.

마음은 갈길이 바쁘건만 오늘도 빼먹을수 없는 우리의 의무 십자가의 길을

다 마치고 나서야 장수땅 수분공소를 향해 날아간다.

김제서부터 장수로 가는 길또한 대관령 아흔아홉 고개마냥 구불구불...

어지러울 만큼 돌아가는 이산은 신우산이라고 일러 주고 있다.

이곳 또한 길가의 모든 농장과 밭뙈기엔 사과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지만

오늘은 괜히 우울해진다.

 

해발 몇미터나 되는지 높고도 높은 고산중턱에 과수들이 즐비하게 심겨져있고,

몇채의 하우스들이 누워있는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농부들의 고달픈 삶이 그려진다.

 

일년 농사를 지어 먹고살기위해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쉼도없이 움직이며

달려가야할 그네들의 고달픈 삶이 엄두조차 낼수없이 숨가쁠것임을 짐작하기에

괜시리 짠하고~ 우울감 마저 들어오는 기분이다.

 

장수땅 수분공소엔 동네아낙 두분과 할아버지 한분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떨리고 구성진 노래가락처럼 흥얼거리고 있다.

 

조용히 들어가 양팔기도와 함께 주님앞 조배를 끝내고 돌아서나오는 길에

김종환(안드레아)공소 전회장 할아버지와 또 이야기를 나누는 할배는

도대체 바쁜게 없는 양반이다... 해지기전에 나머지 진안땅을 밟아야 되는데...

저 아래 어르신 마나님이 마구 불러댄다..."빨리 와요~ 밥묵어야제~"

아마도 코로나시대에 아무하고나 말섞지 말라고 당부하는 듯한 모션같아 웃는다.

그랬기나 말기나 공소회장 할배는 사람이 그리워서인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머뭇거리며 말꼬리를 잡고 놓지를 않는데....^^

수분공소는 ...

대원군시대에 박해가 일어나던 때 외지에서 피난온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기위해

모인 교우촌에 세워진 공소라고 한다.

1920년대 지어진 한옥성당으로 지금까지도 그모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으며

이춘경이라는 신자를 필두로 병인박해후에는 전라도 뿐이아니라 전국의 신자들이

모여들어 교우촌을 이루며 숨어 살았던 곳이라한다.

 

오늘의 마지막 땅 진안의 어은동공소를 또 찾아 서두른다.


어은동은 이미 1888년에 공소가 설립된 유서 깊은 교우촌이었다.

1876년경 진안 일대에는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충청도 등지에서

전라도 산중으로 피난 내려온 신자들이 삼바실, 절골, 모시골, 절번덕이 등에 흩어져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다. 어은동 공소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고기가 숨은 형상이라고 해서 어은동이라고 부르는 마을.

물고기는 로마 교회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서로를 알아보던 암호이다.

마을 이름 자체가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와 살았던

우리네 신앙 선조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래선지 이 마을사람 대부분이 교우라고 한다.

시간에 쫓겨 공소안 주님앞에앉아 양팔기도만 하고 부지런히

나와 어둠이 내려앉는 길을 달려온다.


저만치 어둠속에 묻혀가는 보이지않는 마을들이 오늘은 쓸쓸하다.

젊은이가 떠나버린 몇가구 되지않는 작은 집안엔 늙은 부모만 덩그마니 홀로앉아

저멀리 짐승들 울음소리 들어가며 더디오는 새벽을 잠깨어 기다리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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