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7일 (수)
(녹)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인정넘치는 사람들♬~순례길 158처(홍유한고택지/우곡성지/건사골/곧은정/우련전/왕피리/머루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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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2-06-13 ㅣ No.101016

 

지난 4월30일..

전남 광주교구 순롓길을 마무리하고 5월첫번째 주는 성모신심 미사날이라

정기휴일겸 쉬는 날이고... 2번째 주..3번째 주... 4번째 주까지... 마지막

주까지 내리 쭈욱~ 합당하고 마땅한 이유가 생기는 바람에 성지순례길이

임시휴업처럼 중단되었더랬다.


한주 한주 ...한달이 넘어가다보니 괜스레 우리 하느님. 성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담주엔 꼭 길 떠나리라.... 몇번을 다짐을 해보았지만...

2박3일의 황금같은 휴가 순례길마저 날아가버릴듯한 일이 토요일 오후에 또 발생하고 말았다.

 

"가지마라. 가지마라... 안가도 할일이 얼마나 많이 넘쳐나는데...

유혹의 속삭임인지... 성령의 막으심인지.... 헷갈리는 가운데서도 기어코 단행하고야 말은

경북 안동교구로의 순례길을 6월 첫주일 새벽 5시 조금넘어 출발 시동을 걸어 달린다.


이일 저일들이 걸리적거리며 밍기적거리게 하더니 막판에는 차 까지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전날 세천사네 검정 모하비와 바꿔 타고 길 떠나갔다.

우리차는 23만 킬로의 고달픈 여정의 기록이고.... 세천사네 차는 8만의 편안한 안방

마님같은 차였는데 이차 저차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선 길 나선다.


중부고속도로의 새벽길은 뻥뻥 뚫려 마치도 리노할매네가 전세내고 달려가는

도로인냥.... 갇혀있던 속도 뻥뻥~~ 달려라~ 세천사네 파발마야.. 이랴~~!!이랴~!

전날밤 늦은시간까지 성당가족들과 어울려 즐겁고 신난 만남의 시간을 보내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리노할배는 아침부터 졸린다고 엄살을 부려대지만서도....

아서라~ 리노할매의 하느님께서 무시하라~~ 모른척 하라~ 기도하라시더라...ㅋㅋ


새벽3시에 일어나 싸가지고 온 참치 소고기 김밥으로 아침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속엔

요즘 관산동 성당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 나누며 하느님 뜻을 헤아려 보다보니

어느새 졸음이 싹 가셔 버린듯하다.

엠마오의 두제자가 예루살렘서 일어난 일들을 이해 못한채 걸어가던 모습처럼....


남쪽으로 남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길은 조용한 평화스런 마을들이 군데군데

낮으막이 앉아 세상것 내려놓고 우리네 삶을 닮아보라고 가르친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지만 초월한지 한참된 시간이라

걱정없다.


단양팔경의 이정표를 지나고 죽령터널의 엄청나게 긴 길을 달려나온 끝에

경상북도의 환영표지가 우리를 반긴다.

길가 군데 군데 눈에 뜨이는 풍기인삼... 풍기 인견..의 글기가 풍문으로

알고만 있던 유명한 풍기라는 땅인가 보아 괜히 뿌듯하다.


역시나 비가 오락 가락.... 눈앞을 어지럽혀 댄다.

9시 10분에 도착한 홍유한 고택지는 산속 깊은 마을 끄터머리 동네속에

앉아있다.

부슬거리는 빗길을 이 아침 우리말고 또 다른 가족 한팀이 스템프를 찍고 있다.

조선 천주교가 창립된것보다 30년전에 이미 신앙을 받아들여 심신을 연마한 선각이

있으니 그가 바로 홍유한이며 이곳에서 10년을 수덕생활을 하다가 60세에 세상을

떠났다 한다.


비록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첫인물로 꼽히던 홍유한은

지나친 고행과 절식으로 강건했던 몸이 쇠약해졌으나 오로지 기도와 묵상으로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나자 문수산 골짜기 우곡땅에 안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묵상하며 익명의 그리스도의 한분이었음을 깨달아본다.

끈 풀어져 돌아다니는 개를 염려하며 나타난 선한 얼굴의 아주머니 한사람이

어디서왔느냐며 안부를 묻더니... 여기보다 저어기 우덕성지란 곳을 가보면

구경할것이 많다고 친절하게도 한마디 건네주길레...

교우냐고 물었더니... 아닌데.. 간간히 찾아오는 외부인들이 반갑고 걱정되어

한마디 거들어 준다는 동네 아주머니의 친절을 마주하며

경상북도의 인심의 후함을 감사하게 느껴본다.


30여분 떨어져 있는 우곡성지의 볼거리를 찾아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

이다.

두개의 주차장에 몇대의 차들이 주차되어있는 것을 보며... 꽤 잘 알려진

성진가 보다... 차를 세우는데 곁에서 내리는 또 한부부가 괜히 정겹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본 그네들 또한 서울 어디서 왔다며 반가워한다.


땡그렁 땡그렁 울려대는 산골짝 종소리는 메아리되어 돌아다니며

주일 아침 미사시간을 알려주며 "모여라 모여라~"


엊저녁 특전 미사를 하고온 우리는 바로 산길높이 오르는 십자가의 길을

한달여 만에 감동을 안고 걸어간다.

어머니의 치맛자락 다시 한번 끄집어 댕겨대며....

역시나 오늘도 십자가의 길에는 우리네 할배 할매 만 덩그마니 어머니의

고통을 기억케 새겨달라고 높고높은 골짜기길을 숨가쁘게 올라간다.

1처~2처~...언제나 그랬듯이 14처 꼭대기를 올라서야 나타나는 그땅의 주인공은..

다블뤼주교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했듯이 홍유한은 천주교 서적을 몇 권 읽고,

축일표도 기도서도 없었지만 매월 7 · 14 · 21 · 28일 등 7일째 되는 날을 주일로 정하고

세속의 모든 일을 접어두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또한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키는 정확한 날을 모르는 대신 언제나 가장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으로 규칙을 삼았다. 동시에 육욕을 금해 30세 이후에는 정절의 덕을 실천했다

비록 그는 세례를 받고 교적에 오른 공식적인 천주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학문 연구를 통해 얻은

진리에의 깨달음을 실제 자신의 삶속에서 실천한 경건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뜻을 이어받아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한 후손들이 13명이나 된다.

 

교회 창립의 주역인 순교자 권철신암브로시오 집안과 칠촌 조카인 순교자 홍낙민 루카,,

홍재영 프로타시오, 홍낙민의 아들, 이조이( 홍낙민의 며느리), 103위 성인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바오로) 등의 순교자가 있다.


이에 홍유한 선생 후손들은 선조 순교자들을 현양하고자 했으나 유해를 찾을 길 없어 고심하다가

안동교구와 협의하여 선조인 홍유한 선생의 묘가 있는 우곡 성지에 13위 순교자들을 모두 모시게 되었다.

그래서 2009년 5월 29일 안동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아 13위 순교자들이 순교한 각 순교터의 흙을 담아

가묘를 조성하고 그 앞에 ‘홍유한 후손 순교자 현양비’를 세웠다.

이로써 우곡리의 골짜기는 홍유한 선생과 그 후손 순교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후배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주는 거룩한 땅이 되었다. 고 전해온다.

가파른 산길 14처를 내려와 옆 개천으로 쭈욱 이어지는 바위에 새겨진 7가지 극기의 삶이

다시한번 새로운 계명에의 삶으로 초대한다.

교만을 억누른다/질투를 가라앉힌다/인내로 분노를 이겨낸다/정결로 음란을 이겨낸다/

나눔과섬김으로 인색함을 몰아낸다/절제로 탐욕스런 마음을 이겨낸다/부지런함으로

게으름을 이겨낸다 ..

이상 7가지 극기는 농은 홍유한선생의 수덕생활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이곳 우덕성지에

있는 성당을 칠극성당이라 명명했다 한다.

십사처와 마찬가지로 칠극의 바위를 돌며 주모경을 바쳐드리고 미사가 끝난 성전을

들어가 제대앞에 앉아 묵주의 신비를 바쳐드리며 감사와 찬미의 마음을 올려드렸다.

감실앞 열개의 초를 태워드리며 마음에 안고간 모든이를 위해 봉헌하고...

썰렁스런 관산동 우리 성당의 모든 가족들을 위해 다음주 미사봉헌도 함께 올려드렸다.

아름드리 노송이 꿋꿋이 뿌리박고있는 천혜의 바위산 절벽아래 우리 성모님 고운 치마폭에

아기도령님 걱정없이 안겨있는 모습앞에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12시 50분

문수산자락 예쁜 칠극성당을 빠져나왔다.

여기 또한 천안 성거산보다 더 구불렁 구불렁 이어지는 산길을 어지럽게 돌아내려

봉화군 갈산리 건사골이란 교우촌을 향해 달려간다.

그저도 비는 오락가락거리고.... 할배는 졸려죽겠다고 연신 하품을 해대며 아찔한

고개길마루를 내려온다.


을해박해 때 대구 경상 감옥에서 옥사한 예비신자 이윤집이 살던 교우촌

이라고 알려진 주소에 지금은 서울서 퇴직하고 내려와 살고있는 70 후반의

할배내외가 조용히 살고있더라.


교우촌다웠듯이 이곳또한 깊고깊은 산골짜기 마을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게

병원은 어찌가며. 장보러는 또 어찌가는지 걱정이되어 물어보니 살다보니

그런대로 괜찮다는 할배의 세례명이 알렉산드리아?... 말꼬리를 흐리는 걸보면

아마도 오래된 냉담교우 같은 느낌이 들어도 그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반갑기만 하다.


"들어와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는" 경상도의 따끈한 정을 또 한번 마음에 담고선

다음 교우촌 곧은정 교우촌을 찾아 역시도 빙글빙글 찾아간 그곳엔 빗줄기가

더 굵게 내리고... 바리케이트가 쳐진 골짜기길엔 질컥거리는 땅만 뜬금없어 했다.

복자 김희성이 고신 극기 생활을 하던 일월산 교우촌...곧은정에


우리보다 먼저 와 주차되어 있는 차에 아저씨 한분이 어슬렁 거리길레

"저 분도 우리처럼 교우촌 찾아왔다가 깜깜이 땅앞에 망연자실?"..

유투브안내를 받고 온 남자는 이곳에 있는 땅을 살까하고 찾아온

부동산 땅보러온 사람" 이라는 말에 아이쿠~ 생뚱...!!


돌아서 오는길 할배는

"똑같은 땅을 밟고서도 우리는 성지보러 왔고... 저사람은 땅보러 왔네..."^^


팻말 이정표 하나없는 교우촌 두곳을.. 찾아간 정성만 봉헌하고..

세번째 교우촌 우련정을 찾아 또 주소를 찍고 날아간다.

일월산 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한 이곳또한 아무것도 없어.. 길옆 밭뙈기에 앉아

오락가락 비속에 풀을 메고있는 여자분에게 "거기가 어디냐고 " 물었더니..

"우리집 뒤 바로 옆산이란다." ????....


김대건안드레아 사제의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가 살았던 교우촌인 이곳또한

첩첩 산중에서 화전을 일구며 거친깡조밥과 소금으로 연명하며 외교인들까지

감동시킨 나눔과 섬김의 생활을 실천한 그날의 삶은 지금은 죽어버린 무형의

모습으로 다시한번 인생무상과 버려야하는 깨달음을 배우게 한다.


69살의 젊고 유쾌한 젊은이같은 여인은 생면부지의 우리를 당신집뒤

물이 질컥거리는 수풀우거진 땅으로 안내해주며

몇년전 신부님과 수녀들과 신자들이 찾아와 자기네 집에서 그땅을

바라보며 미사를 올렸다며.... 나름 뿌듯해하는 축복의 마음 가득하다.

대세받고 돌아가신 전남편의 자녀들은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있는데

본인은 이곳으로 재혼해와서 푸성귀 가꾸며 나름 행복하고 바쁘게 살고있다며

천주교하고는 상관이없어도 그런저런 연으로 처음의 홍유한 선조의 삶을 비스무리

닮아있는 것같아 하느님 손길의 오묘함을 깊게 느껴보며

오래지않아 이 집안도 하느님 구원의 역사가 쓰여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기같은 친근함이 마치 관산동성당 반카타리나

형님같은 생각이 들어 고마운 마음에 새벽같이 일어나 싸가지고 간 럭셔리한

금밥 한줄을 건네주니 덩달아 기뻐뛰며 감사해 주니 또 한번 나눔의 행복속에

하느님 내게 머리 쓰다듬어 주시는것같아 몇배로 돌려받는 금금밥..!!.


다시한번 찾아오면 옥수수찌고. 맛있는 밥도 함께 나누자며 아쉬워 하는

일월산 송창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분이 담엔 꼭 세례명의 이름으로 만날수 있기를

빌어보며 2시 47분 영양군 수비면의 왕피리고개를 향해 또 달려간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산. 물 . 공기가 장난이 아니게 푸르고 청량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의 연속이다.

밭에는 농사꾼들의 일손들이 바쁘고 온통 길 양옆으론 하얀 미니 비닐 덮어쓴

고추들의 봄나들이가 가히 열병식이라도 하는 듯한 비오는 날의 대통령

현충원 참배라도 보는듯 일사불란... 흐트러짐 없이 비를 맞으며 자연에

순응하고있다.


"아~ 여기가 영양고추 의 도시 그 영양이구나! " 할배의 감탄스런 말엔

우리집 앞마당 고추와는 비교될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광대함에 나온 감탄사이리라.

"대한 민국 고추는 모두 이땅에서 해결되니 온 영양땅이 고추로 도배되어있네"

3시51분 도착한 왕피리고개는 또 뭣인고?.... 왕피리불며 넘어가던 고갯길?...

왕피천이 시작하는 곳에 세워진 하느님의 종 김강이 시몬이 형성한 통고산 기슭의 교우촌

을 찾아가며 순간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첩첩 산길을 가다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난다는 할배의 말을 듣자마자..

"아부지~ 절대로 그런일은 안일어 날꺼지요?"... 든든한 빽 하느님 아버지를 찾으며

올라가는 산길이 그래도 안심스럽다.


아무것도없는 산골짝길은 위험천만의 낭떠러지 길로 사고라도 날세라

저 아래 검문소같은 움막에서 몇명의 남자들이 보초를 서며 신원을 확인해 대더니

다~아 이유가 있었구나.... 시인하며 그날의 삶의 시간들을 봉인하며 다시 조심스레

내려와 석보면 포산리에 자리한 머루산 성지를 향해 또 달려간다.


4시37분 머루산 가는길엔 높은 건물 아파트같은 건 전혀 보이지않는대신

경관은 기똥찰 정도로 수려한 금수강산이다. 살림살이는 비록 가난해 보여도....

이토록 평화로운 그림과 마음휴식을 제공해주는 이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부러운 마음도 공유해보며 마음이 가난한 행복한 사람들을

좋아라하신 우리 주님의 진복팔단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바꿔타고 간 차의 짙은 선팅유리는 어둠이 짙어지는 바깥풍경을 더 밤처럼 실감나게 보여주고..

그저도 오락가락 굵어지는 빗방울을 제치며 오르고 또 오르는 오지의 산골

해발 600미터의 고산지에 감히 마을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할수없는 곳에

엎드리고 있는 작은 마을들하며.... 목적지에 다왔다고 속삭이는 안내양의

말 따라 내린 질퍽한 땅위엔 아무것도 없고 산속으로 300미터를 더 가라고 한다.

"오 마이갓!.. 어둠이 내려앉고 굵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갈수있는 길은

아닌기라요... 그냥 가입시더... 요 까지 온거로 우리 정성은 바친 기라요."

하루종일을...

내려갈 생각이 아찔한 산길을 수십번은 돌고돌은 것같은 이곳 안동교구의

땅은 끝내주는 정취와 인정만큼 함께 갖게되는 두려움 또한 장난 아니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서 만난 머루산 성지 유철균이란 이름을 가진 이장님과 지나치며 인사나누다

나머지 300미터길 ..오르지못한 성지를 안내해 주겠다며 친절을 베풀어 주었지만....

내려갈길이 무섭고 걱정되어 언젠가 담에라도 올기회가 있으면 꼭 부탁드리겠다고

또한 고마움을 영양김밥 한줄로 전해드리며 호랑이 숨어사는 듯한 골짜기동네를 빠져나왔다..

1801(신유)년 충청도 홍주, 예산 등지에서 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인들이 모여 살면서 이 골짜기에 교우마을이 생겨났다.

1815년 이곳에서 숨어 살던 천주교인 35명이 체포되어 진보와 안동 진영을 거쳐 대구로 압송되었는데,

 

「일성록」에 의하면 이들 중 박사행등 20명은 석방되었다. 당시 안동 옥에 갇힌 최윤금안드레아를 옥바라지 하던

아우 최 마르티노는 붙잡혀 포졸들에 의해 순교했고, 안드레아는 대구로 이송되어 옥사했다.는 기록들을 접하며

이곳 또한 피의 댓가를 치르면서 쟁취한 거룩한 땅이었음을 가슴에 안고 돌아온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을 확인해서인지 그래도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때보다 덜

공포스러웠던 안도와 함께 오늘의 하룻밤 나그네를 재워줄 청송군청옆

모텔을 찾아 가는 초저녁 7시30분의 시간속 청송땅에도 비는 주럭주럭.....


포근하고 기절해 잠들 윈~모텔의 306호 실 문을 밀고 들어간다.


아이구~~ 아부지! 오늘도 참 열심히 살아 움직이게 해주셔서 무지 고맙습니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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