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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민족 풍습을 따르는 유다인 / 유다 마카베오[1] / 1마카베오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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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2-06-27 ㅣ No.15595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 이민족 풍습을 따르는 유다인(1마카 1,1-15)

 

마카베오기 상권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 소개로 시작된다. 키팀 땅 출신의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의 임금 다리우스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알렉산드 대왕이다. 키팀은 본디 키프로스의 키티온에 살던 주민들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키프로스섬 전체, 그리고 에게해의 섬들과 마케도니아의 해안 지방을 가리키게 된다. 이 후의 다니엘과 환시가의 시대에는 지중해의 먼 섬들과 해안 지방을 뜻하게 된다. 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리스는 그리스 말과 문화를 받아들인 지중해 동쪽 전역, 곧 그리스 본토, 에게해, 그리고 소아시아의 지중해 변 도시들을 가리킨다.

 

그는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요새들을 점령하고 세상의 임금들을 죽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땅 끝까지 진격하여 많은 민족에게서 전리품을 차지하였다. 세상이 그 앞에서 평온해지니 그는 마음이 우쭐하고 오만해졌다. 그가 막강한 군대를 모아 여러 지방과 민족과 통치자를 굴복시키자, 그들은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 뒤에 알렉산드로스는 앓아눕게 되자 죽음이 닥친 것을 알고는, 젊은 시절부터 함께 자란 대장군들을 불러, 죽기 전에 자기 나라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분할은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기원전 301년에야 결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알렉산드로스는 열두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 그의 장군들은 저마다 자기 영토를 다스렸다.

 

그들은 그가 죽은 뒤에 모두 제 나름의 왕관을 쓰고, 그들의 자손들도 그 뒤를 이어 오랫동안 그렇게 하였다. 거의 150년 동안이다. 이 기간은 특별히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임금들이 통치한 시기를 말한다. 그들은 세상을 악으로 가득 채웠다. 그들에게서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시리아를 다스리던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안티오코스 3세의 막내아들이다. 기원전 190년 말이나 189년 초,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로마 군대에게 패배한 안티오코스 3세는, 에페소에서 막내아들을 로마인들에게 인질로 넘긴다. 이 막내아들은 로마에서 12-13년 동안 인질 생활을 한다.

 

한편, 안티오코스 3세는 기원전 187년에 죽고 에피파네스의 형인 셀레우코스 4세가 그 뒤를 잇는다. 그러자 로마인들은 에피파네스를 풀어 주고 그 대신 셀레우코스 4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를 인질로 삼는다. 기원전 175년 셀레우코스 4세가 죽자 뒤를 이어 그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가 왕위에 오르지만, 우여곡절 끝에 에피파네스가 실권을 잡는다. 그는 나이 어린 임금을 양자로 삼았다가 마침내 기원전 170년에 죽여 버린다. 이 안티오코스 4세는 기원전 175년부터 기원전 164년까지 셀레우코스 왕국을 다스린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기원전 175년이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원년은 기원전 31210월 티스리 달이다.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이 말이 마음에 들어,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기원전 200년에 안티오코스 3세는 유다인들에게 민족 고유의 법을 지켜도 좋다고 문서로 승인해 주었다. 이를 철회하려면 임금의 윤허가 다시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사실 할례는 근동 지방의 많은 민족들 사이에서 실시되었지만, 그리스인들은 몸의 일부를 제거하는 이러한 관습을 보기 흉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스식 경기장에서는 모두 벌거벗은 채 경기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유다인들은 물론 다른 민족들에게도 충격적인 관습이었지만, 아무튼 그리스화한 유다의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그리스인들처럼 벌거벗고 운동 경기를 할 때 할례의 표시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그 흔적을 지우려고 수술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할례는 이스라엘에 소속되어 있다는 신체적 표지이다(1코린 7,18 참조).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그들의 법을 따르면서,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여 자신들을 팔아넘겼다.

 

이렇게 유다인이 이민족 풍습을 따르는 즈음, 안티오코스는 자기 왕국이 튼튼해지자, 이집트 땅까지 지배하여 두 나라의 임금이 되려고 작정하였다.[계속]

 

[참조] : 이어서 ‘6. 안티오코스가 유다인 박해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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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키팀,키프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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