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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에서 꽂힌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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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에서 꽂힌 말씀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성 베드로 대성전과 성 바오로 대성전 봉헌(11월 18일) “Fecistis domum Dei speluncam latronum. ·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루카 19,46) 어제 우리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그곳의 현실을 보신 예수님께서 눈물 흘려 우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측하시고 탄식하신 말씀(루카 19,41-44)을 읽고 묵상했다. 그리고 오늘 이어서 그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의분(義憤)의 행적을 루카 복음서(19,45-48)에서 읽는다. 오늘의 이 보도 내용에 대한 제목을 성전정화(聖殿淨化)라고 붙인다. 즉, 속된 말로 성전을 청소하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 루카 복음서의 성전정화 기사에서 예수님께서 발설하신 다음과 같은 의노(義怒)의 말씀을 읽는다.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루카 19,46) 라는 말씀이다. 오늘의 이 성전정화를 보도하는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domum patris mei)을 장사하는 집(domum negotiationis)으로 만들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고 보도한다(요한 2,16).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꾼들 난장판을 뒤엎으시면서 일갈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라고, 요한은 “장사하는 집”이라고 하셨다고 보도한다. 마태오 복음(21,13)에는 “강도의 소굴”이라고, 그리고 마르코 복음(11,17)에도 “강도의 소굴”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보도한다. 즉 공관복음 3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개탄하셨고, 요한복음서에서는 “장사하는 집”이라 개탄하셨다. 그러므로 공관복음서의 보도가 예수님의 분노를 훨씬 강하게 전하고 있다. 그런데 마태오와 루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날에 성전정화를 하신 것으로 보도하고, 마르코는 입성하시고 이튿날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도한다. 이러한 공관복음서 3권은 예수님께서 활동의 마지막 단계로 예루살렘 입성 후에 성전정화를 하신 것으로 공통적인 보도를 하는데,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 이 일을 하셨다고 보도한다. 이러한 비교에서 공관복음서의 보도가 더 신빙성이 있는데, 그건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씌운 중요한 죄명 중의 하나가 성전 모독죄였다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그들은 성전의 장사꾼들을 시켜서 이권을 챙기다가 예수님의 방해(?)를 당하고서 “네가 뭔데 행패냐?” 하며 예수님을 죽일 작당을 한다. 이러한 예루살렘 성전의 실상을 오늘날의 성당을 무대로 하여 다음과 같이 꾸며 낸 이야기(fiction)를 해본다. ‘본당의 날’이라면서 멀리 공소의 신자들이 공소회장님 인솔하에 본당의 축제 미사에 참여하러 왔다. 성당 마당에서 본당 신자들로부터 “어서 오세요, 먼 길 오셨네요.” 하는 환영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성당의 문 앞에 다가가니 오늘 행사의 참가비를 내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기념품을 사라고 한다. 그다음 미사 중에 사제의 강론으로 주일헌금에다가 불우이웃 돕기 2차 헌금을 별도의 바구니에 봉헌하라고 한다. 그리고 미사 끝날 무렵에 사제관 개축 공사비로 납부할 신립서를 써서 내라고 공지한다. 이거 정말 몇 차례 돈을 내어야 하는가? 먼 길 시골에서 올라온 공소 신자들은 이렇게 호주머니 털리고 나서 씁쓸한 기분으로 시골 버스를 타고 공소에 돌아와서 공소 회장님에게 말했다. “우리 이젠 본당에 가지 맙시다!” 이러한 픽션은 공소 신자들이 본당 축제에 참여하러 가서 실망한 이야기다. 픽션이 아니고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 한국교회에서 흔히 경험한다. 도시와 지방의 본당에서, 그리고 순례자들이 모처럼 맘먹고 찾아간 성지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 시골 갈릴래아에서 촌사람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성전에서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성전에 바칠 제물인 양이나 송아지나 염소나 비둘기를 시골에서 가지고 온 걸 불량품이라면서 현장에서 제공하는 물품으로 바꾸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화폐로는 성전에 헌금할 수 없으므로 성전 발행의 쿠폰으로 바꾸라면서 그 수수료를 내라고 한다. 앞의 픽션에서 어려운 먼 길로 올라간 본당(예루살렘)에서 여러 번 호주머니 털리고 해괴한 신립서를 써서 제출한 후 뭐라 항의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돌아온 공소 신자들이었지만, 구원의 여정으로 마지막이며 결정적 계기로써 올라간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의 난장판을 보시고 공소 신자들처럼 말없이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 성전(본당)이 아니고 장사꾼 또는 강도의 소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픽션과 오늘 루카 복음의 보도를 합성하여 생각할 것이 있다. 일반의 힘 없는 민초(백성)는 말없이 당하지만, 그 민심(민초들의 마음)은 하늘의 분노(예수님 말씀)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목자들이 오늘의 복음을 들으면서 한국교회 실상을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 오늘 마침 성 베드로 대성전과 성 바오로 대성전 봉헌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교구와 본당과 성지는 과연 ‘아버지의 집’ 혹 ‘기도의 집’인가, 아니면 혹 ‘장사하는 집’인가 또는 ‘강도들의 소굴’인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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