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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문턱에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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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12-09 ㅣ No.232464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들의 배후와 이면에 대해서 대체로 많은 이들이 궁금해 왔다
삶의 이면, 사건의 배후, 이런 말들은 보이는 것들에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들이 계속 머릿 속에서 일기 때문에 나온 말들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실들 속에, 모든 사실들 너머에 있는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거의 모든 인간들 속에 내재해 있는 본성이 아닌가도 한다
알고 싶다 라는 것, 이 욕망 만큼 사람들을 가장 있는 그대로 드러내 주는 테제는 없을 것이다
알면  뭐가 달라져?
사람들이 삶면서 많이 하는 말들이다
그러면 있는 그대로에 대한 난해함이, 사람과 인생에 대한 아이러니와 딜레마가 자연히 생긴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과연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고, 어떤 존재일까
상상과 사실의 경계를 허물고 모호하게 하므로써 그 폭넓은 영역의 거주민처럼 행세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문명의 트릭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인문학적, 과학적 발전과 성취를 대표하는, 대리하는, 대변하는 산물들의 등장들은 그 필요성과 사용처를 가늠하기 어려워 하면서도 예상 밖의 돌연변이적 생리와 생태계에 대한 기대치가 계속 상승일로에 있고 그 꿈을 한껏 부풀려 놓고 있다
문명들은 대체로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자리하기에 그 틀, 곧 프레임과 패러다임의 지속가능성과 연속성에 문제가 발생하면 수용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의 테제가 된다(문명의 생성과 확립이 불가능하다)

모형의 역사, 예형의 역사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작용과 반작용은 그 사실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작동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렇지만은 않은 움직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모든 사실들에는 필요 이상의 진실이 담길 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필요한 만큼만 부합하는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사실들이 그 성질들을 달리 보이고 그 성격상에서 차이들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실들에 대한 언어표명과 표현들은 그 사실성에 대한 지시성만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그 성질들과 성격들에 대한 규정성도 다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이라는 말이 있으면 거짓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 것도 그런 '진실'에 대한 난해함이고 이는 곧 그 사실들에 대해 머릿 속으로만은 성립불가능한 인식의 지평을 나타내 주는 말들의 연관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선과 악이라든지, 참과 거짓이라든지 언제나 모든 사실들의 배후와 이면에 있을 것 같은, 아니면 속에 내재하고 있을 법한 성질이나 성격들은 늘 반대편처럼 대립각을 세우고 대척점으로 근거해 서로 마주 보고 붙어 있다는 것이 다소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놀라움이 없이 어떤 사실들에 비로소 제대로 다가가고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본질들이나 성격들이 통합된 사실들, 그 사실들로 합해져 드러나고 나타날 수 있을까 에 대해서도
모노톤으로 드러나는 사실들의 진실은 과연 흑과 백일까
블랙과 화이트는 엄밀히 말해 서로 반대이거나 대립된다고 할 수 없는 색들에 불과하다
보색개념으로 보이는 색들은 서로를 더욱 뚜렷이 드러내 보이기에 보색인 것이다
뭐가 다르다거나 뭐가 반대되거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실들에 유독 많은 반대의 개념들은 단지 사실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전략적이고 전술적인 의식의 추구일까
그것들(그 사실들을)을 알아 가기 위한?
있는 그대로라는 사실들에 대한 이해는 이제 더욱 깊은 난해함으로 빠져 들고, 그 복잡한 다양성을 단일한 일체와 총합으로 엮어 내고 풀어 내기에는 그 아이러니와 딜레마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는 것이다
그러할 때, 이해라는 말을 돕기 위해 통찰이라는 말이 자연히? 그 조력자와 협력자 이상의 구원자적 의미를 지니고 '생겨난다'
꿰뚫어  본다라는 의미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실들에 대한 이해를 넘은 통찰만이 현재까지는 진실에 대한 가장 가까운 접근법이자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에 있는 그대로 있으면서 아는 경지는 아직까지 그 모든 진실을 지닌 실체로 존재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사람, 곧 인간존재에게 허용가능하며 실현가능한? 그래서 수용가능한 현실태인 동시에 언제나 그 가능태가 아닌가 한다

의식화인 동시에 문명화?
습관과 패턴은 동물성의 창조에서 깊이 고려되어야 할 사항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것처럼 사물성의 창조에 필요한? 네 가지 요인은 그것을 있게 한 진실보다도 그 사실에 더 입각한 이해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물성을 포함한 동물성에는 습관과 패턴, 곧 컨트롤이 가능하고 그래서 길들여질 수 있는(동물 스스로나 동물을 포괄하는 생리와 생태계, 주변환경 속에서) 자기화된 습관과 패턴을 계속 이어가며 지속가능하게 하는 반복된 움직임과 작동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동물들의 생존이란 곧 그러한 사물성이 움직이는 습관과 패턴으로 생존한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면 아담은 그런 동물들에 대한 지시성을 담은 명사를 이름으로 붙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대체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하는 것이 뭘 말하려는 것이고 뭘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여전히 흑과 백, 그리고 모노톤에 불과한 것이지만, 도덕성이라든가 윤리성의 개념, 법치적인 성격이 계속 가해지고 더해지면 그 특성으로 뚜렷이 보는 아차적 관점(일차적 관점은 어디까지나 진실, 혹은 흑과 백이다)이 보다 완성된 개념이거나 상위개념(진실에 더 가깝다고 보는), 혹은 통찰이라고 말하는 그 경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화와 문명화에는 그것다움, 쉽게 말해 인류에는 사람다움이라는 테제가 보다 더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강력한 의미와 가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 사람이란 존재의 실체성을 더 부각시키고 두르러지게 나타내는 것이라는 신뢰와 지지를 두고서 말이다
역사란 곧 그 의식화와 문명화의 진행이며 전개인 것이다
그것을 역사적 사실들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동인과 동력(원동력)
첫 사람들에 대한 창조 이후 역사란 그 사람다움을 사람에게 만드는 자난한 과정과 과업을 이어오는 시간상의 흐름인 동시에 그 의미와 가치의 사실들, 그 진위와 맥락의 가능태와 현실태, 그 실현가능성과 현실가능성의 여러 차원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하다, 모든 것은, 삶과 세상의 모든 사실들은
발전과 성취로 보이는 많은 일들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그리고 구원사는 그 모든 사실들에 대한 어떤 전향적이고도 획기적인 진실이 아닌가도 한다
태생적 창조이후 주어진 사람됨과 성격을 누구도 제 손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흑과 백, 모노톤에서 드러나는 진하고 옅은, 굳고 무른 정도의 차이들일 뿐이고 어느 누구도 다른 범주에 따로 있거나 다른 영역에 달리 머무르고 있는 그런 성질도, 성격도 없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겨자씨에는 자신이 되어야 할 존재의 가능태가 담겨 있다
그러나 겨자씨가 싹트고 자라나 큰 나무가 되는 사실을 눈으로 보지 않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해, 나아가 통찰 속에서만 말해지는 사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씨앗의 원리를 보면 씨앗이 그런 삶의 과정을 원했을 리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체의 형성에 변화가 두어져 있는 만큼 스스로를 완성점에 두고 그 완전체가 되는 데에 삶의 과정 속에서 그 삶을 다 살아야 하는 성장과 완성의 시간과 경로는 나라는 이해와 통찰이 그 완성점과 완전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할 지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겨자씨와 겨자나무가 과연 다른 것인지, 대체로는 같은 것으로 보지만, 가능태와 현실태는 그 삶의 과정 속에서도 동일시되는 성질과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도 되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일구어 내는 게 단지 그 가능태와 현실태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쉽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도자기 하나를 만들 때 도공의 손에서 그 작업의 시작과 끝을 통해 나오는 도자기를 보면서 과연 도공 같은 원리의 손으로 된 것이 과연 어느 정도 자기화의 성장과정을 가지고 벗어날 수 없는 범주의 습관과 패턴으로 자기자신을 형성했다고 해도, 그 과업과 임무를 다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할 때 과연 그게 어느 정도의 의미부여와 가치평가를 통해 그 몫과 값어치에 둘 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 하더라도 겨자씨와 겨자나무가 스스로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여러 명제들과 세상이 부여잡고 다루는 삶의 성격들 속에서는 실체 전체가 아닌 머리와 가슴에만 통해 있는 일들이 많다
죽음도, 출생도
단지 의미부여와 가치평가를 통해서만 사람이 되고 사람다움을 이루며 사람된 삶을 산다는 것이 진실인지 역사는 언제나 변증적인 원리를 철회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 세상의 전반과 세상의 모든 일들을 보여주며 그 모든 것속에 사람도, 사람의 삶도 놓여져 있다는 것만 뚜렷한 사실로 드러내어 보여줄 뿐이다

진정 깨어 있어야 하고 볼 수 있어야 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보고 또 보아도 못 보게, 듣고 또 들어도 못 듣게, 마음이 어둡게 만드는 분도 하느님이다
이 세상에 문 없는 집은 없다
모든 사실들의 진실은 하느님이다

뇌종양이나 폐암, 간암, 위암 몸 속에 어디에서나 종양은 생긴다
암에 걸린 사람치고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암이란 병이 삶에 큰 장애를 만들고 다른 어떤 일도 잘하게도, 다하게도 못하게 만들며 최종적으로는 병상에 드러눕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암에 걸린 사람만이 불행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인들조차(종교인들은 어느 정도 그런 병고나 불행에 대해 신앙적이고도, 신학적인 의미부여와 가치평가를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런 병고와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그 병이 낫고 치료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의사가 수술해야 되고 수술확률이 10%(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밖에 안된다고 해도 암과 같은 병은 보통 시한부선고를 하므로 이래나 저래나 선택지는 그래도 살 수 있는 길로 가게 되므로 환자는 의사의 손에 자신의 육체를 맡기고 자의로 동의하에 수술대에 자신을 올려 놓는 것이다
스스로가 메스를 들고 스스로의 배를 쨀 수 있는 환자란 없다
삶의 문제들이란 대체로 의식화와 문명화가 이루어진 사실들 속에서 그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해결하도록 현실화되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론적으로 그 사실들을 따를 수 밖에, 다른 선택지는 거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기적이라는 것도, 스스로가 이룰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진실 같은 사실이다
사람다움이란 그런 역사 속에서 계속 만들어져 온 것이기도 하다
역사에 대해 전적인 신뢰와 지지를 가질 수는 없어도 세상을 살며 닥치는, 겪는 모든 일들의 상당수는 그 역사적 사실들 속에서 언제나 계속된다
진실을 안다면, 그 진실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가
이 세상 모든 사실들 속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진실을 몰라도, 삶은 여전하고 삶은 계속된다
세상도 그 사실들을 달리 하지는 않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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