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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배움의 여정 “기도하라, 겸손하라, 차별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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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10-26 ㅣ No.185840

2025.10.26.연중 제30주일 

 

 

집회35,15ㄴ-17.20-22ㄴ 2티모4,6-8.16-18 루카18,9014

 

 

배움의 여정

“기도하라, 겸손하라, 차별하지 마라, 최선을 다하라”

 

 

제가 산티아고 순례여정 다녀온 후 강론때 참 많이 강조했던 주제가 여정입니다. 날마다 회개해야 하는 회개의 여정,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 날로 자유로워지는 자유의 여정등 끝이 없습니다. 삶은 여정임을 실감나게 이해하고자 제가 참 많이 반복해 나눴던 예가 있습니다. 

 

내 삶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할 때, 오전, 오후 어느 시점에 와 있겠느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년사계>로 압축할 때, 봄, 여름, 가을, 겨울중 어느 시점에 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압축할 때 비로소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서 거품이나 환상, 허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진짜 참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배워야 할 것은 끝이 없습니다. 사랑이든 믿음이든 기도든 모두가 배워야 할 것들이며 배움에는 영원히 초보자일뿐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평생 배움의 공부요 평생 배움의 학인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공부중의 평생공부가 사람이 되는 공부입니다. 무엇을 평생 배워야 할지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나눕니다.

 

첫째,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평생공부가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람이 되는 길은 없습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하느님과 사랑과 생명을 소통하며 하느님을 닮아갈 때 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레오 교황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기도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쉬는데 결코 피곤해하지 않듯이, 기도하는데도 결코 피곤해지지 않도록 하자! 숨이 몸에 생명을 유지하여 주는 것처럼, 기도도 영혼의 생명을 유지시켜준다; 사실 믿음은 기도로 표현되고, 진짜 기도는 믿음위에서 산다.”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기도할 때 믿음의 성장이요 이런 믿음은 기도를 요구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에서 진짜 기도를 배웁니다. 둘 다 “오 하느님!” 시작하지만 내용은 천지차이입니다. 

 

우리는 바리사이로부터 기도는 저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우니, 바리사이는 기도의 참 좋은 반면교사가 됩니다. 주님께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주절거리는 자기자랑, 자기만족의 하나마나한 독백입니다. 반면 세리의 기도는 얼마나 진솔한지요! 아주 짧고 강렬한 자비송입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텅 빈 가난한 마음에서 샘솟는 자비송입니다. 정말 우리가 바칠 참회의 기도는 이 자비송하나뿐입니다. 평생 배워야 할 자비송 기도입니다. 배움의 여정에 있어 기도공부 역시 영원한 초보자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이 바로 지혜입니다. 바리사이는 자기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반면 세리는 자기의 가난과 부족함을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입니다. 저절로 겸손이 아닙니다. 반드시 회개와 더불어 자기를 알 때 겸손입니다. 그러니 회개의 여정은 겸손의 여정이 됩니다. 세리의 겸손한 기도와 대비되는 바리사이의 교만한 기도입니다. 

 

꼿꼿이 서서 기도하는 바리사이와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행하여 눈을 들 엄두를 못내는 세리의 대조가 너무 극명합니다.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간 세리의 모습이 우리를 회개에로 이끌고 겸손을 배우게 합니다. 일상 모두가 회개와 더불어 겸손을 배우는 학습장입니다. 

 

공동체내의 관계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에 좌절할 때 상처로 남지만, 이런 모든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겸손과 비움의 계기로 삼을 때 영적성장이요 성숙이겠습니다. 오늘 집회서 역시 겸손한 이의 기도는 흡사 복음의 세리를 연상케 합니다.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 두지 않으니,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바리사이의 장황한 독백의 기도가 제자리에 머물렀던 반면, 가난하고 겸손했던 세리의 짧고 강렬한 자비송 기도는 구름을 거쳐 그분께 도달합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이 둘의 교만과 겸손을 대조시키면서 우리의 겸손을 촉구합니다. 교만으로 자신을 높일 때 낮아지고, 겸손으로 자신을 낮출 때 높아진다는 영적 역설의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셋째, 차별하지 않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요즘 알게 모르게 만연되어 있는 차별과 혐오입니다. 정말 기도하는 사람,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을 닮아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차별과 무시, 혐오 이 또한 무지의 소치이며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하느님을 닮아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가난한 자들이나 약자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차별이 아니라 마땅하고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집회서에서 잘 드러나는 하느님의 진면목입니다.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그분께서는 과부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은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넷째, 최선을 다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초지일관 한결갈이 날마다 복음선포에 최선을 다한 삶입니다. 언젠가의 그날이 아니라 오늘 지금부터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회개한 자의 과거는 불문에 붙입니다. 지나간 일에 회한을 갖거나 미래를 앞당겨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늘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죽어야 끝나는, 살아 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영적전쟁을 치러야 할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이자 학생인 우리들입니다.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바오로의 고백이 흡사 유언처럼 들립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 사도의 믿음의 고백도 감동적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이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우리는 평생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늘 배우고 공부해야할 초보자입니다. 무엇보다, 기도를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차별하지 않는 사랑을 배우고, 날마다 최선을 다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바오로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바치며 강론을 끝맺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우리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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