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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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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의 일입니다. 10년 전의 일입니다. 한국의 이세돌 9단과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이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바둑만큼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의 승리였습니다. 알파고는 4번을 이기고 1번을 졌습니다. 인공지능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100년 전부터 인류는 인공지능을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과 지능을 따라올 수 있는 인공지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공지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성을 따라올 수 있는 계산 능력, 인간의 지성을 배울 수 있는 정보, 그 정보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학습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의 가능성을 충족할 수 없었기에 인공지능은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인공지능 대신에 ‘통신’ 쪽으로 연구했습니다. 광케이블이 깔리고, 그 고속도로 위에 인터넷이 연결되었습니다. 그 인터넷을 통해서 빛의 속도로 정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통신의 고속도로 위에 정보가 쌓였고,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면서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통해 드디어 2022년에 인공지능인 챗지피티가 등장했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게 인공지능은 말 잘 듣는 ‘비서’와 같습니다. 강론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콩글리시’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맥도 틀리고, 의미 전달도 안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은 저의 강론을 빠른 시간에 영어로 번역해 주었고, 문맥과 의미도 정확하게 번역해 주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없었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번역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달라스 교구에서 보내는 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주었습니다. 영어로 된 공문을 읽는 것보다 한글로 번역된 공문을 읽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쉬었습니다. 덕분에 교구와 소통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은 교황님께서 보낸 문서를 요약해 주었습니다. 교황님의 문서는 “Dilexi Te(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를 우선으로 선택하고, 도와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내용이 길어서 10페이지로 요약을 부탁했더니 인공지능은 보기 좋게 요약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뉴욕에 있는 현대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서 3시간 관람하고, 식사할 수 있도록 부탁했더니 현대미술관에서 3시간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코스를 알려주었고, 근처에 있는 식당도 알려주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니, 인공지능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공지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구세주’가 이 세상에 오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인공지능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라면 구세주의 탄생은 나의 존재를 변화시켜 주는 사건입니다. 인공지능이 정보의 고속도로에서 나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도구라면 구세주의 탄생은 나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사건입니다. 인공지능이 나의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도구라면 구세주의 탄생은 나의 영적인 갈증을 풀어주는 사건입니다. 인공지능은 또 다른 인공지능으로 대체 될 수 있다면 구세주의 탄생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사건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올 때까지 인류는 통신의 고속도로를 만들었고, 그 위에 인터넷을 설치하였고, 인터넷은 수많은 정보를 연결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예언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동방박사는 황금, 유향, 몰약을 준비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린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나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한 번 공적으로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입니다. 그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께서 공적으로 드러난 것은 주님의 성탄, 동방박사의 경배, 세례 때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정의는 창과 칼, 권위와 권력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공정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성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그리고 오늘 제2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빛은 정의롭게 비추지 않습니다. 빛은 공정하게 모든 곳을 비추기 마련입니다. 주님의 영광도 정의롭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모든 곳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많은 성당과 교회는 성탄을 맞으면서 트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예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에 많은 십자가가 붉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불을 밝히고, 트리의 전구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의 신앙의 불을 밝히는 것, 희망의 빛을 비추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주님을 드러내는 주님께 경배하는 참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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