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일 (토)
(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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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수원 교구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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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2:00 ㅣ No.187184

다른 신부님들의 글이 올려져 있지 않아 올리시는대로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김건태 신부님_증언하는 신앙인

 

어제에 이어 오늘의 복음은 구원의 역사 속에서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처음 대면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요한이 요르단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세례를 집전하고 있을 때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부정한 행위를 범했을 경우, 그 부정을 씻어 종교의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결례를 명하고 있었고(민수 19,2-10; 신명 23,10-11 등), 이 외적인 정결 의식은 마음의 정화를 상징하는 진정한 뉘우침이 동반될 때 비로소 효과를 지닐 수 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요한이 베푼 물의 세례는, 곧 자기 죄를 고백하며 받는 세례는(마태 3,6), 바로 성령과 불의 세례를 준비하는 단계로서, 전적으로 회개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마태 3,11). 다시 말해서 메시아에 의해 완성될,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부여되는 세례를 위한 준비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요한은 성령의 인도로 “과연 나는 보았다.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였다” 하고 천명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이분은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어린양은 희생제물 가운데 하나로서, 특별히 그 피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내리 닥친 재앙으로부터 구원받음으로써(탈출 12,1-14), 구원의 가치를 지니게 된 대표적인 파스카 제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전승을 발전시켜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흠 없는 어린양으로 고백하기에 이르며(1베드 1,19; 1요한 3,5; 히브 9,14), 특히 오늘 요한은 그분을 가리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고 소리 높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비로소 우리의 죄는 말끔히 씻기고, 구원의 나라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준비하고 메시아가 완성할 세례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격 부여와 함께, 이처럼 어린양의 희생을 통한 구원을 약속하고 보증하는 가장 중요한 성사로 자리하게 됩니다.

 

우리는 미사성제 중 성체 앞에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로다” 하는 사제의 초대 말씀에,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하고 응답하며 주님을 모십니다. 미사 때마다 세례자 요한의 이 초대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구원이라는, 곧 제 영혼 치유라는 놀라운 선물을 거저 베풀어주시는 어린양이신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올 한 해, 이 감사의 마음을, 요한처럼 주님을 이웃들에게, 아직 주님을 모르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잠시 쉬고 있는 주위의 형제자매들에게, 힘 있게 증언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자랑하는 한 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린양의 희생이 우리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구원 약속이며 보증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송영진 신부님_<“나는 저분을 몰랐다.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29-34)”

 

 

 

1)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이라는 증언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으라는 선포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속죄 제물로 스스로 당신의 목숨을

 

바치시는 분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과월절의 어린양과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어린양이 합해진 상징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는 말은,

 

다음 말씀들에 연결됩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3.5).”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믿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해 주시고, 하느님 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분입니다.

 

 

 

2)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은,

 

두 번이나 나오는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라는

 

말과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라는 말입니다.

 

이 말들은, “내가 ‘예수님이 메시아’ 라고 증언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직접 보았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인간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일러

 

주셨고, 그 계시를 믿었기 때문에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시가 진리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체험으로 확증된 일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언제나 항상 믿음이 먼저입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20).”>

 

하느님께서 일러 주셨다는 말은,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루카 10,22).”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하느님을 안 믿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예수님을 안 믿는 종파들이 있습니다.

 

그 경우는 하느님을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님은 하나입니다(요한 10,30).

 

 

 

3) 요한의 증언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의 제자들 가운데 몇 명은 그의 증언을 믿고 예수님에게로

 

갔지만(요한 1,37), 대부분의 제자들은 그의 증언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그의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요한 3,25-30).

 

<세례자 요한은 자기 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가라고 밀어내지는 않았습니다.

 

믿음이란,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제자가 아니더라도,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의 증언을 믿고 예수님에게 간 사람들이

 

몇 명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증언을 알아듣지 못했거나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것은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실 때부터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의 임무 수행은 겉으로만 보면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실패일까? 아닙니다.

 

그의 임무는 ‘선포와 증언까지만’입니다.

 

요한의 선포와 증언을 믿고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은,

 

사람들이 각자 스스로 할 일이고, 요한의 책임은 아닙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예언자입니다.

 

 

 

4) 주님의 ‘부르심’은 당신을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는

 

초대인데, 그런데 구원을 받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우리의 권리도 아니고, 주님의 자비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하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게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했다고 주장하면서, 내놓으라고 요구해서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과정은 ‘나의 몫’이고, 결과는 ‘주님의 몫’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헛된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자비를 간청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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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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