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6일 (목)
(자) 사순 제5주간 목요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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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3월 26일 사순 제5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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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석 [pys2848] 쪽지 캡슐

03:55 ㅣ No.188709

2026년 3월 26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1950년대, 동물행동학자 니코 팀버겐은 갈매기 둥지에 ‘가짜 알’을 넣었습니다. 이 알은 진짜 알보다 더 크고 더 선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알이었습니다. 갈매기는 어떻게 했을까요? 이 가짜 알을 버렸을 것 같지만, 반대로 진짜 알을 버리고 품어도 아무런 결과를 낼 수 없는 가짜 알을 끝까지 품으려고 했습니다. 왜 이런 멍청한 행동을 할까요?

 

본능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연에서는 ‘더 큰 알이 곧 더 건강한 새끼’라는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진짜 알보다 큰 가짜 알에 집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본능이 자기의 진짜 알을 알아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 인간도 그렇습니다. 본능적으로 물질이 좋아하고, 풍요롭고 편안함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기적인 사랑이 미움과 다툼을 만들었고, 물질만능주의의 생각으로 나의 이익만 있자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이 상관없다고 여깁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렇게 살아도 떵떵거리며 잘 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 나라에서도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이 떵떵거리며 잘 살까요? 아마 땅을 치며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너그러울걸, 더 나눌걸, 더 사랑할걸….’ 이런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기준이 아닌 하느님 기준으로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라는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죽음은 하느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영적 죽음인데,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 들린 자의 헛소리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이 스스로에게서 나오지 않고, 유다인들이 ‘우리의 하느님’이라 부르는 아버지에게서 온다고 명확히 하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안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는 하느님 뜻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온전히 알고, 그분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와 친밀하고 완전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아무리 설명해도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요한 8,57)라고 말하면서 조롱할 뿐입니다. 유한한 시간의 틀에만 갇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 유다인의 모습을 따를 때가 참 많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현세적인 이익이나 세속적인 잣대로만 해석하는 모습이 드러날 때입니다. 그래서 정작 내 삶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또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전환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분 뜻에 집중한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포장하고도 주지 않는 것과 같다(윌리엄 아서워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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