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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부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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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이 아름다운 이유는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석이 빛을 내지 못한다면 그건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해서 이제 사순 마지막 절정에 왔습니다. 성목요일, 성금요일. 부활성야미사. 부활 대축일 미사 이렇게 전례에 참례하기만 하면 그냥 우리는 부할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온전히 다 전례에 집중하고 참석해 마지막 부활절 미사에서 하는 인사 '부활 축하합니다' 이걸 하면 우리는 과연 부활을 한 것과 같을까요? 여기에서 부활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하고 하실 겁니다. 자 우리는 이걸 논하기 이전에 미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부터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미사는 천상잔치를 이 지상에서 미리 맛보고 재연하는 것입니다. 그걸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고인을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미사에 관한 여러 가지 신학적인 의미를 떠나서 단순히 우리는 그런 거창한 것은 신학자에게 맡기고 누구나 알 수 있는 평범한 가르침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서 실제로 왜 예수님이 수난하시고 돌아가셨는가를 그 숭고한 뜻을 기릴 수 있어야 합니다. 미사 전례 동작 하나 하나 속에 있는 숨어 있는 의미까지 다 알게 되면 그야말로 미사의 가치가 어떤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돌아가신 그 이유만을 아는 선에서 그치면 그 또한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은 죽음이 없는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몸을 입기 위해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했을 때만 성립하는 말입니다. 살아있는데 부활을 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죽음에서 다시 생명으로 변환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육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말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걸 다 아실 겁니다. 무엇이 죽어야 할까요?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단순한 고깃덩어리 육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육신의 행실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행실 즉 인간 본연의 본성이 죽지 않는 한 진정한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가야 하는 본향은 지금 이 육신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만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죄의 최종 종착지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몸이 됩니다. 죽음이 죽음으로만 끝난다면 하느님의 창조사업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제물이 돼 그 제물로 우리를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에서 생명을 입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완전히 죽지 않는 몸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급한 불만 끈 상태입니다. 잔불이 남아 있습니다. 잔불은 우리가 꺼야 합니다. 완전히 꺼진 상태에 이르러야만이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됐을 때만이 부활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잔불은 그럼 무엇을 상징할까요? 바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 그때마다 잔불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잔불을 완전히 진압을 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완전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닙니다. 죄라는 것이 다시는 우리 몸에 기생해 살 수 없는 그런 완전 초죽음이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됐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힘인 권능으로 부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잔불은 십자가를 질 때만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건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희생, 극기, 절제, 인간적으로는 할 수 없는 사랑이지만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사랑해야 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를 지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죄의 본성인 잔불을 완전히 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도 대신 해 주실 수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십자가가 힘들다고 해도 응원과 격려는 해 주실 수는 있어도 대신 짊어져주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죽음을 방조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럴 것 같으면 애시당초 저마다 제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고 굳이 말씀하실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야 아프시겠지만 마음 아프시다고 우리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져 주신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죄를 이기게 된 게 아닙니다. 결국 부활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자기의 십자가를 그때마다 잘 지었을 때만이 부활의 몸을 입을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했을 때만이 온전한 부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보내는 이 사순은 바로 부활의 축소판입니다. 사순 기간 동안 작은 하나 하나 얼마나 계율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며 우리도 우리 일상에서 죄를 짓이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여부에 따라 부활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다시 한 번 더 우리는 이 사순시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양심이라는 거울로 비추어봤을 때 성적이 좋지 않다면 포기해야 할까요? 원론적으로는 부활을 통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그럼 그게 과연 무엇일까요?
지금부터서는 죄를 죽여야 하는 시간보다는 역으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보속과도 같은 것입니다. 사랑으로써 우리가 지은 죄를 보속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도 덮을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단순히 입에 발린 말만으로 하는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겠죠. 정말 진심으로 진심어린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진실하냐에 따라 저는 예수님께만 특별히 유보된, 죄를 사면하실 권한으로 다시 말해 특별사면으로 부활의 몸을 입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이젠 사랑만이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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