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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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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6-04-03 ㅣ No.188880

[주님 수난 성금요일] 요한 18,1-19,42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오늘 성금요일 전례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매달려 계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사제와 신자들은 이런 계응을 주고 받지요.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 “모두 와서 경배하세.”

 

십자가는 원래 죽음과 징벌의 상징입니다. 극악무도한 잘못을 저지른 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형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세상 구원이 달렸다’고 하니 선뜻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 그 자체이신 분, 우리를 구원하실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매달리셨다는 ‘사실’의 확인입니다. 그런 슬픈 일이 생긴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은 우리의 고집 때문이고, 그분의 사랑을 믿지 않은 우리의 불신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실 수 없었기에, 당신께서 우리를 위한 ‘희생양’이자 ‘속죄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매달리는 길을 택하신 겁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높이 매달린 구리뱀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받았듯이, 우리도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받도록 하시려는 것이지요.

 

둘째는 온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는지 아닌지의 여부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의미’의 전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즉 우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심으로써, 그분을 죽게 만든 ‘사형도구’였던 십자가에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졌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더 이상 ‘죽음’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시기 위해 죽음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신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지요. 그리고 주님을 굳게 믿고, 우리를 위한 그 사랑과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즉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가르침과 계명을 충실히 따르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구원이라는 큰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에, 보다 자세히는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에 대한 믿음에 달렸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야 하는 우리의 소명을, 그래야만 주님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의 신원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기꺼이, 기쁘게 신앙의 길을 걸어야겠습니다. 성인들이 남긴 다음과 같은 조언들이 그 길을 걷는 우리의 앞을 밝혀줄 것입니다. 

 

“오 하느님, 죽어서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어떤 고통도 달게 받겠습니다. 죽음도 서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사도 바오로 / 콜로1,24) “여러분이 십자가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십자가는 여러분을 사랑할 것이며, 천상의 하느님께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성녀 쥴리 빌리아르)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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