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4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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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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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4-23 ㅣ No.189253

김건태_생명의 빵 III

 

오늘 말씀은 어제의 마지막 말씀, 곧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하신 말씀과 유사한 내용으로 열립니다. 오늘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하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분이 나에게 주신 사람’이 바로 ‘그분이 이끌어 주신 사람’임을 확인합니다.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더욱 체감하고 확신에 이르게 되는 부분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신앙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이끄심, 하느님의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태어날 때 부모님 덕분에, 또는 누군가의 권고에 의해서, 또는 스스로 찾아서 신앙의 길에 들어선 것 같지만,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그것조차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이렇게 고귀하고 위대한 선물을 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할 일이란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이러한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구체적인 신앙 행위로 표현해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하는 약속까지 더해주시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 약속 실현을 위해 우리 주님은 당신을 십자가상 희생제물로 바치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바로 이 약속을 보증하는 표징으로 영원히 머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는 아직 신약성경이 탄생하기 이전이므로, 구약성경을 가르키는) 성경을 통해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웠으면서도, 예수님의 모든 것을 부정하기에 급급했던 유다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분명한 어조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하고 단언하십니다. 성경이 바로 하느님 이끄심의 도구요 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오지 않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듣지도 배우지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구체적인 예가 광야의 양식이었던 만나 제공 사건입니다.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주어졌던 양식인 만나가 예시하는 표징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표징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고도 죽은 조상들의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만나가 육적인 생명 보존에 필요한 양식이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고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배고픔과 목마름 앞에서 불만과 불평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상 희생을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루시어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 미래를 여신 분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그 뜻을 되새기며, 그리고 자주 미사 참여를 통해 그분의 몸을 직접 모시는 가운데, 죽음의 문화를 거두어 치워버리고 생명의 문화를 전파하는 데에 소중하고 유익한 하루, 그분이 주실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임을 전파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44절)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은 단순한 인간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성부께서 우리를 당신 아드님께 이끄시는 은총의 선물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방식은 강제적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로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도 끌려오지 않으면 올 수 없다. 그런데 주님은 놀라운 방식으로 끌어당기신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끌어당기시는 것이지, 폭력이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이끄신다.”(Tractatus in Ioannis Evangelium 26,4)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길은 바로 말씀을 통한 가르침이며(45절), 아들은 그 말씀을 듣는 이를 끌어당기신다.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나는 생명의 빵이다.”(48절)라고 말씀하신다. 이 빵은 단순히 물질적인 양식이 아니라, 참된 생명을 주는 영적인 양식이다. 구약의 만나가 임시적이고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빵은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준다.(50절) 성 이레네오는 성체성사에 대해 이렇게 가르친다. “땅에서 나온 빵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받아들여질 때, 이제 더 이상 보통의 빵이 아니라,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이 결합된 성체가 된다.”(Adversus Haereses IV,18,5) 이처럼 그리스도의 살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며(51절),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한 몸으로 결합시킨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51절) 십자가 위에서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은 단순히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주는 살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성체를 교회의 일치와 연결하여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빵은 하나의 몸이다. 우리는 모두 이 하늘의 빵으로 양육됨으로써 하나의 몸이 된다.”(De Oratione Dominica 23)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와의 일치일 뿐 아니라, 우리 서로를 하나로 묶는 사랑의 성사이다. 

 

우리는 주님의 이끄심을 받아 그리스도께로 왔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살아 있는 빵을 갈망하며, 성체성사를 준비된 마음으로 받아 모셔야 한다. 믿음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잊지 말고, 겸손히 응답해야 한다. 성체는 우리를 살리는 참 생명의 빵이므로, 매일의 삶 안에서 감사와 사랑으로 모셔야 한다. 성체로 하나 된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며 세상에 생명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51절) 이 말씀은 성체성사의 핵심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 성사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받아 모시고, 이미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한다. 아버지께 이끌려 아들에게 나온 우리는, 이제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참된 생명 안에서 하나 되고,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6,51ㄱ) 

 

'나를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 

 

오늘 복음은 계속되는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인

요한 복음 6장 44절에서 51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6,44)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끌어 주신 분은 하느님 아버지이셨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나도 너를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도구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5,14) 라는 큰주제로 시작된 피정 3일 째인 어제의 소주제는 '들꽃도 입히시거늘'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하느님을 닮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들이고,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이 되어 서로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되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사랑이 되는 마음을 나누고 묵상하는 날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하시는 성령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안에 머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살인 '성체'를 받아 먹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그렇게 해 봅시다! 

 

'나 하나 꽃피어'

(조동화) 

 

나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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