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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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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토요일] 마르 12,38-44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께 드리는 정성인 ‘기도, 자선, 단식’을 행함에 있어서 율법학자들의 교만하고 위선적인 모습과 가난한 과부의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을 서로 대비시켜 보여주십니다. 먼저 복음의 전반부에서는 율법학자들을 강도 높게 질타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모든 행위를 “남에게 보이려고”, 즉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과시하여 보여줌으로써 그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기도, 자선, 단식을 실천하는 것은 불결한 것을 멀리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함으로써 거룩하신 하느님과 보다 가까워지기 위함입니다. 즉 그 기도, 자선, 단식은 하느님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재계’(齋戒)인 것이지요. 그런데 종교 지도자라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그런 재계를 행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은 헤아리려고 하지 않고, 그 행동을 통해 자기들이 영광을 누릴 생각만 하고 있으니,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악표양’이 되고 있으니 강도 높게 비판하신 겁니다.
한편, 복음의 후반부에서는 가난한 과부의 소박한 봉헌을 칭찬하십니다. 많은 부자들이 헌금함에 큰 돈을 넣은 것에 비해, 그녀가 봉헌한 돈은 고작 ‘렙톤 두 닢’, 오늘날 우리 화폐가치로 따지면 3천원도 안되는 적은 금액이었는데, 그런 그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시지요. 그건 그녀가 봉헌한 ‘액수’만 보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셨기 때문입니다. 거들먹거리며 큰 금액을 헌금함에 턱하고 집어넣은 부자들 다음 차례에, 보잘 것 없이 적은 금액을 봉헌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자기 처지가 너무나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겨우 저것밖에 안내느냐’며 자신을 비웃고 업신여기는 이들의 모욕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율법학자들처럼 ‘남에게 보이려고’가 아니라, 자신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좋은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했기에, 그런 부끄러움과 업신여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봉헌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런 그녀의 봉헌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참된 재계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녀의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분께 도움이 되고자 하는 그녀의 정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느님 뜻에 맞게 살고자 노력한 그녀의 삶 전체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다른 이들처럼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즉 자신의 ‘일부’를, 그나마도 남들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빼앗기듯 내놓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의 ‘전부’를 하느님께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봉헌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우리와 완전히 하나되기를 바라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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