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4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을 보내셨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전삼용 신부님_착한 목자 되기: 행복한 성체 되기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3:46 ㅣ No.190114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9,36) 
 
찬미 예수님! 연중 제11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깊은 연민을 느끼십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기가 꺾여 있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원어 '에르리메노이'는 단순히 의기소침한 상태가 아니라, 맹수에게 갈기갈기 찢겨 길가에 내동댕이쳐진 채 스스로 일어설 힘조차 없는 처참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상처받고 길을 잃어 쓰러진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채찍질도, 훌륭한 설교도 아닙니다.
그들의 찢어진 상처를 보듬고 기를 살려 일으켜 세워 줄 '착한 목자'입니다.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를 보십시오.
그는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도망쳐 싸리나무 아래 쓰러진 채 죽기를 청하였습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1열왕 19,4 참조).
위대한 예언자도 기가 꺾이면 이렇게 됩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그를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시어 구운 빵과 물 한 병을 머리맡에 놓아 주시며 두 번이나 다정하게 깨우셨습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1열왕 19,7 참조).
엘리야는 그 음식으로 힘을 얻어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듯 기가 꺾인 이를 먼저 먹이시고, 완전히 회복시킨 다음에야 사명을 주어 보내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탈출 19,6).
그렇다면 세상을 살리는 사제, 즉 목자란 무엇이겠습니까?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성 그레고리오 나지안조 주교님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가르칩니다.
"먼저 자신이 정화된 다음에 남을 정화시키고, 먼저 자신이 거룩해진 다음에 남을 거룩하게 하며, 먼저 자신이 하느님이 된 다음에 남을 하느님이 되게 하여야 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589항 참조). 
 
그렇습니다. 순서가 핵심입니다.
먼저 자신이, 그다음에 남입니다.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복해진 사람만이 타인에게 진정한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꺼진 초가 다른 초에 불을 붙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내 심지에 불이 활활 타고 있어야, 나는 내 불을 잃지 않으면서도 수백 개의 초에 빛을 옮겨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감히 이 험한 세상에서 타인의 기를 살려주는 목자가 될 수 있을까요?
타인의 기를 살려주고 상처를 끌어안으려면, 아주 명확한 전제 조건이 하나 필요합니다.
바로 '내가 먼저 뼛속 깊이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아, 내 기가 우주 끝까지 살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어떻게 남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이 원리를 가장 뼈저리게 증명해 주는 분이 계십니다.
얼굴의 절반을 덮은 붉은 모반과 상악동 암이라는
가혹한 시련을 이겨내고,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목자가 된 방송인 김희아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며 얼굴의 모반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수없는 조롱과 괴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얼굴에 암까지 찾아와 뼈의 절반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세상을 원망하며 우울증이라는 깊은 어둠의 동굴에 자신을 가두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녀도 하느님께 제발 이 붉은 점을 없애달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기도 중에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바라보시며, 자신보다 더 아프게,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계신 주님의 모습을 가슴 깊이 만난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의 영혼에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아, 주님께서 나를 이토록 끔찍이 사랑하시는구나! 이 점은 흉터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특별히 기억하시는 사랑의 표식이구나!' 
 
자신이 우주의 창조주께 그토록 사무치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녀의 바닥났던 자존감은 하늘 꼭대기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녀는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얼굴의 모반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릴까'만을 생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내가 먼저 사랑받아 행복해지자, 그녀는 비로소 다른 이를 살리는 완벽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길을 걷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날 때, 그녀는 호들갑을 떨며 야단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이를 안아주며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딸! 이만하기 다행이네. 이것밖에 안 다쳐서 참 감사하네. 그치?"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던 아이도, 엄마의 그 굳건한 평화와 감사의 태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아이가 먼저 넘어져 피가 나도 툭툭 털고 일어나며 말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이것밖에 안 다쳤어요. 참 감사하지요?" 
 
야단치고 걱정만 하는 세상의 보통 부모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아이의 기가 꺾일 뻔한 두려움의 순간에, "우리는 이런 작은 일로 행복을 뺏길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감사를 통해 증명함으로써 아이의 영혼을 강인하게 세워준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성 그레고리오 주교님의 가르침처럼, 이것은 사제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파견되는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내가 먼저 십자가의 피와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적 존재로 격상되고 그 압도적인 행복을 누려야만, 세상에서 기가 꺾인 이웃들에게 진정한 연민을 느끼고 그 행복을 전염시키는 '사제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슬픈 얼굴을 한 사람은 결코 기쁨의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내 안의 기를 살리고, 그 행복의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뇌과학과 심리학이 입증하고 모든 성인이 실천했던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인간의 뇌에는 망상활성계(RAS)라는 정보 필터링 시스템이 있습니다.
우리가 결핍과 불만에 집중하면, 뇌는 온 세상에서 불행한 증거들만 수집하여 우리를 지옥으로 밀어 넣습니다.
반대로 "이만해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에 초점을 맞추면, 뇌는 즉시 내 삶에 숨겨진 하느님의 은총과 기적들을 찾아내어 우리를 천국으로 안내합니다. 
 
말씀과 성체로 이미 감사의 조건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씨앗을 키우기만 합니다.
이 감사의 근육을 키우는 가장 훌륭한 훈련이 바로 '잠들기 전 감사 일기 쓰기'입니다.
인간의 뇌는 잠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입력된 감정과 정보를 수면 기간 내내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고 영혼의 무의식에 새겨넣습니다.
하루 종일 남을 흉보고 세상의 뉴스를 보며 분노하다가 잠이 들면, 우리 영혼은 밤새도록 독극물에 절여집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 내 삶에 주어졌던 감사의 조건 5가지를 손가락을 꼽으며 찾아보십시오. 
 
'오늘 아침 무사히 눈을 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실 수 있어 감사합니다.
미운 사람을 향해 한 번 참을 수 있는 인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할 때, '가엾다(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단어는 창자가 끊어질 듯한 극심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냥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창자를 끊어내듯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먹이셨습니다.
이 성체의 사랑을 매일 먹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의 작은 상처에 기가 꺾여 주저앉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는 이 성체의 사랑을 내 삶의 현실로 번역해 내는 가장 위대한 신앙의 언어입니다. 
 
우리 자신이 행복한 성체가 되었음을 믿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찢겨진 세상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거룩하고 행복한 목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성체로 살아가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3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