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5일 (목)
(백)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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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우리는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의 이득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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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43 ㅣ No.190279

 

찬미 예수님! 오늘도 한 날을 잘 지내셨는지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미사 복음 묵상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상처인 6·25 전쟁이 일어난 날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이맘때 제단에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통일을 간절히 청합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뼈아픈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통일을 원하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더 정확히 묻겠습니다.
우리는 '통일' 그 자체를 원합니까, 아니면 통일이 가져다줄 '이득'을 원합니까.
이 둘은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전혀 다른 것을 바랍니다.
고해소에서 "신부님, 저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는데 잘 안 됩니다"
하며 눈물짓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용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훨씬 클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워하면서 얻는 묘한 쾌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해.
나는 피해자니까 동정받을 권리가 있어."
나아가 상대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고 "내가 너를 용서해 주느냐 마느냐"의 자리에 올라서서 군림하는 즐거움마저 은근히 누립니다.
속으로는 이 미움의 드라마를 끝내고 싶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용서하게 해 주세요" 하고 청합니다.
어느 하느님께서 그 가짜 기도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무서운 진실을 마주합니다.
사람은 결과는 원하면서도 그 결과의 본질은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화해의 '평온함'은 원하지만 화해에 드는 '자기 낮춤'은 원하지 않습니다.
용서가 가져올 '마음의 평화'는 탐나지만, 용서 그 자체, 곧 상대를 나와 같은 자리로 끌어올려 품는 일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가짜가 됩니다.
본질은 빼고 열매만 달라고 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통일 기도가 정확히 이러합니다.
입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지만, 냉정히 보면 분단을 꽤 쏠쏠하게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덕에 방위산업이 번창하고
무기 수출이 막대한 흑자를 냅니다.
어떤 이들은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규율을 배운다며 이 체제를 은근히 긍정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선거철마다 북녘의 위협과 분단의 긴장을 끌어다 제 권력을 연장하는 데 써먹습니다.
이렇게 분단이 주는 달콤함을 속으로 계산하면서 제단에 모여 "주님, 휴전선을 무너뜨려 주소서" 한다면, 이것은 하느님을 기만하는 위선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더 아프게 짚고 싶은 것은 이 노골적인 위선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고 은밀한 문제입니다.
설령 분단으로 이득을 보지 않는 선량한 우리조차, 사실은 통일 그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이 가져올 '편안한 평화'는 원하지만, 통일 그 자체가 요구하는 '하나 됨의 대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갈라선 형제를 다시 내 살붙이로 끌어안는 일, 그 낯섦과 부담과 손해를 감당하는 일, 내 것을 덜어 저쪽을 채우는 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곧 우리는 통일의 열매는 따 먹고 싶지만, 하나가 되는 그 일 자체는 치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는 "하나 되게 하소서"가
아니라 "내 손해 없이 평화만 주소서"였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하나 됨이란 본디 무엇이며 무엇을 요구하는가.
솔로몬 임금의 명재판이 이를 환히 비춥니다(1열왕 3장 참조).
한 아기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제 아들이라 우깁니다.
임금이 칼을 가져와 아기를 반으로 잘라 나누라 하자, 가짜 어미는 통쾌해하며 외칩니다.
"내 것도 네 것도 안 될 터이니 반으로 가르십시오."
가짜 어미, 곧 마귀에게 속한 자는 제가 갖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생명을 찢어 갈라 버리는 쪽을 택합니다.
분열은 생명을 죽이는 사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진짜 어미는 다릅니다.
자식을 잃는 찢어지는 고통을 무릅쓰고, 아기를 살리려 제 소유권을 통째로 포기합니다. 보십시오. 하나 됨을 진정 원하는 사람은, 그 하나 됨을 위해 '제 몫을 내려놓는 고통'을 먼저 받아들입니다.
진짜 어미가 원한 것은 '내가 아기를 차지하는 결과'가 아니라 '아기가 살아 하나로 온전한 것' 그 자체였습니다.
통일을 원한다는 것은 바로 이 진짜 어미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 화해를 청하려면, 먼저 '갈라짐은 악이며 악은 곧 고통'이라는 확신이 영혼에 새겨져야 합니다.
머리로는 죄인 줄 알면서 몸은 죄로 달려갈 때, 영과 육이 갈라진 그 사람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우리는 압니다.
부부가 집에서 매일 으르렁대면서 성당에 와 "우리 자녀는 우애 깊게 하나 되게 하소서"
청하면 그 기도가 하늘에 닿겠습니까. 교우끼리 파벌을 짓고 뒤에서 헐뜯으면서 민족의 일치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성령께서는 일치의 영이시며, 사랑은 둘을 하나로 묶는 신성한 힘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든 공동체든 민족이든, 갈라져 있다는 것은 그 안에 하느님의 은총이 빠져나갔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도대체 왜 하나 됨이 이토록 절대적인 선일까요. 뇌과학이 말하는 '분리뇌 증후군'이 그 까닭을 섬뜩하게 보여 줍니다.
극심한 뇌전증을 치료하려 좌뇌와 우뇌를 잇는 신경 다리, 곧 뇌량을 끊은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뇌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둘로 갈라지자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침에 오른손이 셔츠 단추를 채우면 왼손이 슬그머니 다가와 그 단추를 풀어 버립니다.
아내를 안으려 오른팔을 뻗는데 왼팔이 아내를 밀쳐 냅니다. 한 몸 안에서 끝없는 내전이 벌어지는 지옥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우리 민족도 그러합니다.
하나로 이어지지 못하고 갈라진 생명은 스스로를 공격하며 파멸로 치닫습니다. 
 
성경은 이 하나 됨이 곧 예수님의 마지막 소원이었음을 증언합니다.
수난을 앞두신 그 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참조)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 하나 됨을 위해 단지 기도만 하신 것이 아니라, 갈라진 하늘과 땅을 다시 잇고자 당신 몸을 십자가 위에서 찢기게 내어 주셨습니다.
참된 하나 됨은 언제나 누군가의 자기 내어 줌을 대가로 이루어집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통일을 '구호로 외치는 법'이 아니라 '몸으로 치르는 법'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통일은 철책선이 무너지는 정치적 사건이기 이전에, 우리 마음이 하나로 포개어지는 영적 사건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의 기도를 정직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내 손해 없는 평화를 주소서"가 아니라 "하나 되기 위해 제 몫을 내려놓을 용기를 주소서"라고 청해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는 척하며 우월감을 즐기던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내 가족, 내 이웃, 우리 교우와 끊어진 뇌량을 사랑과 용서로 다시 꿰매지 못한다면, 남북통일은 영영 오지 않을 헛된 구호일 뿐입니다. 
 
우리가 통일의 '이득'이 아니라 하나 됨 '그 자체'를 원하여, 그 하나 됨에 드는 고통까지 끌어안고
피눈물로 기도할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이 한반도에 드리운 미움의 장벽을 허무시고 참된 화해와 일치의 기적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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