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일 (수)
(녹)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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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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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6:43 ㅣ No.190377

옛 어른들은 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갓과 관련된 말도 있습니다. 그중에 배밭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밭에서 갓끈을 고쳐 매면, 혹시 배를 따 먹으려는 행동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행동의 신중함을 가르쳐 줍니다. 아무리 내 마음이 깨끗해도, 다른 사람이 오해할 수 있는 행동은 조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중국에도 갓끈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불이 꺼진 사이, 한 신하가 왕이 총애하는 여인의 뺨을 만졌습니다. 그 여인은 그 신하의 갓끈을 떨어뜨렸고, 왕에게 갓끈이 없는 신하가 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모든 신하에게 갓끈을 풀어 버리라고 명했습니다. 왕은 신하의 잘못을 드러내어 벌하기보다, 그 허물을 덮어 주었습니다. 취중에 일어난 잘못을 지혜롭게 용서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과 행동은 이렇게 드러내는 데 있지 않고, 때로는 덮어 주는 데 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나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은 말을 늘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사제인 저도 늘 말을 조심하려고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결정이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쓸데없이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도 조심해야 합니다. 또 때로는 작은 허물을 묻고 가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지난 518, 한국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스타벅스코리아에서 고객을 위한 행사를 기획했는데, 그 행사 제목이 탱크 데이책상 탁이었습니다. 한국인에게 518일은 슬프고 아픈 날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날입니다. 무고한 시민들이 탱크와 전차를 앞세운 군인들에게 맞고, 죽임을 당한 날입니다. 그래서 518일에 기획된 탱크 데이라는 말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책상 탁이라는 말도 한국인에게는 또 다른 슬픈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형제의 사망 원인을 발표하면서 경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 많은 국민이 그 표현을 듣고 분노했습니다. 결국 스타벅스 본사는 공개적으로 사과했고, 스타벅스코리아의 대표는 해임되었습니다. 말 하나, 표현 하나가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일할 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본당 사목을 하는 것과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사목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쉽습니까?” 그때 저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본당 사목도 좋고, 신문을 만드는 일도 좋습니다. 본당 사목은 신경 쓸 일이 많지만, 신자들과 함께 지내며 사목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신문을 만드는 일은 홍보를 다니는 부담이 있지만,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보람이 있어서 좋습니다. 본당 사목도, 신문을 만드는 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감사할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이 쉽고 어려운가가 아닙니다. 그 일이 하느님의 뜻을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셨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새로운 권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구름처럼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면 한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도,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것도 세상을 위한 것이라면 지나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존경받는 것도 감사이고, 조롱받는 것도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중풍병자는 혼자서 예수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중풍병자를 평상에 눕힌 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직접 고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작은 수고와 사랑은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드러납니다. 중풍병자를 평상에 들고 온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들은 큰 기적을 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병을 고칠 능력이 있었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다만 아픈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갈 수 없는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예수님께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됩니다.

 

우리의 몸은 밭과 같고, 우리의 마음은 그릇과 같습니다.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서 열매가 달라집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삶의 향기가 달라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미움과 분노와 욕심과 악한 생각을 담으면 우리의 삶은 악한 기운에 이끌려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악의 지배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얻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우리는 세 가지를 마음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배밭에서 갓끈을 매지 말라는 말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 작은 허물은 덮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고 정죄하는 것만이 정의는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용서가 더 큰 정의입니다. 셋째, 누군가를 예수님께 데려가는 착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병을 고칠 수는 없어도, 아픈 이웃을 예수님께 데려갈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 말씀은 중풍병자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상처와 두려움, 죄와 오해, 분노와 미움에 묶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상처만 붙잡고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미움과 원망의 평상에 누워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다리시는 사랑의 집으로, 공동체의 집으로, 평화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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