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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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왜 오늘날 교회에는 기적이 드물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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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7-02 ㅣ No.19040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를 보시고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 참조)
사람들은 병을 고쳐 주시리라 기대했는데, 그분께서는 엉뚱하게도 죄의 용서를 먼저 선언하십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들이 속으로 수군댑니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구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들의 속생각은 사실 옳았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오직 하느님의 것입니다.
문제는, 눈앞의 이분이 바로 그 하느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쉽겠느냐?"(마태 9,5 참조)
그러고는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명하십니다.
병자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묵상의 열쇠를 얻습니다. 보이지 않는 권한은 보이는 표징으로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눈에 보이는 치유로, 보이지 않는 그 권한이 참됨을 똑똑히 증명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만이 중풍을 일으켜 세우실 수 있으니, 일어선 그 병자가 곧 죄 사함의 살아 있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이 대목은 오늘 우리 교회에 무거운 물음을 던집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그 죄 사함의 권한을 물려받았습니다.
고해성사가 그것이며, 성체성사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권한을 증명할 표징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그 권한을 점점 의심하게 됩니다.
죄가 정말 용서되는지, 저 빵이 정말 그분의 몸인지 실감하지 못하게 됩니다. 
 
솔직히 오늘날 고해소 앞이 한산해지고 성체 앞에 무릎이 가벼워진 데에는, 이 표징의 약함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표징이 받쳐 주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성사에 대한 믿음도 함께 흐려지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표징이라면 무엇이든 좋은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 표징과 거짓 표징을 가르는 영적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그 법칙은 이것입니다.
사탄은 결코 사람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사랑과 치유는 오직 창조주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요승 라스푸틴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를 낫게 했다는 명목으로 황실을 장악하고 온갖 부패를 일삼았습니다.
그토록 사악한 자가 어떻게 치유의 능력을
부렸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는 치유한 적이 없습니다.
황태자의 혈우병은 끝내 낫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심리적 최면과 교묘한 속임수로, 잠시 호전된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입니다. 
 
거짓 표징의 본질이 바로 이것입니다.
병을 실제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은 것 같은 착각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잠깐 통증이 가시고, 스트레스가 풀려 한결 나아진 듯한 그 느낌을 기적이라 부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병의 뿌리는 그대로 남습니다.
결국 황실은 그 가짜 기적에 속아 나라를 통째로 잃었습니다.
하느님은 빛이요 사랑이시지만 사탄은 어둠이요 증오이니, 그 대척점에 선 사탄이 하느님의 참 치유를 베풀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치유는 무엇으로 가려집니까.
참된 치유는 반드시 그것을 베푸는 이의 피 흘림을 동반합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정말로 거두어 가려면, 그 고통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치유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병자에게서 떠난 그 고통은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치유하는 이가 제 몸으로 받아 안습니다.
그래서 참된 치유에는 언제나 피 흘림이 있습니다. 
 
성경이 이를 못 박아 증언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장차 오실 그분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가 매 맞은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 참조) 보십시오.
우리가 낫는데, 매는 그분이 맞으십니다.
우리의 고통이 그분께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치유하시려 택하신 길이 곧 십자가였습니다.
당신의 온 피를 쏟아 우리의 죄라는 병을 당신 몸으로 받아 안으신 것입니다.
일찍이 광야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 가던 백성을 낫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게 하셨습니다.
그 들어 올려진 뱀을 쳐다본 이들이 살아났습니다(민수 21,8-9 참조).
높이 들어 올려진 그 표징은, 훗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로 들어 올려져 피 흘리실 그분을 미리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치유는 언제나, 누군가가 들어 올려져 피 흘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악한 존재는 결코 남을 치유하지 못합니다.
악한 자는 남을 위해 피를 흘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남의 피를 빨아 제 배를 채울 뿐입니다. 
 
모기가 누구를 위해 제 피를 내어 주겠습니까. 거짓 치유자는 모기처럼 사람의 고혈을 짜내어
제 잇속을 채우고, 참 치유자는 제 피를 내어 주어 남을 살립니다.
그래서 참된 치유의 표징이 일어났다면, 그를 행한 이의 본질은 사랑일 수밖에 없고, 그가 선포하는 말씀 또한 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사함의 권한을 증명하시려 굳이 치유의 기적을 택하신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치유하는 그분이 곧 사랑이시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처음의 무거운 물음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왜 이런 치유의
표징이 드물어졌습니까.
교회가 받은 죄 사함의 권한은 조금도 줄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그 권한을 증명하던 표징은 희미해졌습니까.
저는 두렵지만 정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자를 위해 진짜로 피 흘리는 목자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치유는 피 흘림이라 하였습니다.
표징은 사랑의 피 흘림이 있는 곳에서 솟아납니다.
그런데 양 떼를 위해 제 살을 베어 내고 제 밤을 지새우며 제 안위를 손해 보는 그 피 흘림이 줄어드니, 그 피를 타고 흐르던 표징도 함께 줄어든 것입니다.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제 목숨을 양을 위해 내놓지 않기 때문입니다(요한 10,12-13 참조).
삯꾼의 손에서는 결코 기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적은 오직 양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의 피에서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게 먼저 겨누는 칼입니다. 그리고 비단 사제만의 일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작은 목자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목자요, 교사는 학생의 목자요,
봉사자는 약한 이의 목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진짜로 손해 보고, 진짜로 시간을 내어 주고, 진짜로 제 편안함을 베어 내어 피 흘릴 때,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이 낫기 시작합니다.
상처가 아물고,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떠났던 영혼이 돌아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치유의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분명합니다.
다시 피 흘리는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값싼 위로, 잠시 기분만 풀어 주는 가짜 표징을 구하지 말고, 누군가를 위해 내가 먼저 손해 보고
아파하는 참 사랑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 위에서 교회는 다시 표징을 회복할 것이며, 그 표징을 통해 사람들은 고해성사가, 성체성사가 참으로 죄를 용서하고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성사임을 다시 믿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온 피를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갑시다.
그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한 방울의 피를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청합시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위해 피 흘릴 때, 사탄의 가짜 위로는 물러가고, 영과 육을 함께 살리는 참된 치유의 기적이 이 교회 안에 다시 흐르게 될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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