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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테 신부님_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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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10,6)
'복음화의 시작은 나로부터!'
오늘 복음(마태10,1-7)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파견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권한을 주시어 세상 안으로 파견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게 하십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마태10,2-4)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10,5ㄴ-7)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하느님을 모르는 이민족들이나 이방인들에게 가지 말고, 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하셨을까?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스라엘 집안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입니다. 그래서 선민의식(選民意識)이 강했고, 그러한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파견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런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가서 그들을 먼저 하느님의 참자녀가 되게 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나에게 다가온 의미는 '내가 먼저 복음을 믿어야 하고, 내가 먼저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복음화의 시작은 나로부터' 라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 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조욱현 신부님_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파견하시는 장면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한눈에 지도자급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부, 세리, 심지어 사회적 지위나 학식에서 특별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의아한 선택이지만,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예수님은 현재의 모습이 아닌,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보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무지와 연약함을 보시지 않고, 믿음과 순종으로 인해 그들이 하느님을 위해 크게 쓰일 것을 아셨다.” 즉, 하느님의 선택은 능력이나 지위가 아니라, 겸손과 순종, 은총에 대한 열린 마음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5-6절)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파의 우선순위를 보게 된다. 먼저 이스라엘, 즉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 뒤, 복음이 준비된 민족에게 확장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그들이 갈 길과 대상자를 정확히 알게 하셨다. 이는 단순한 지도력이 아니라, 사목적 분별력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구원과 세상의 혼란을 구별하게 하기 위함이다.”(Homiliae in Matthaeum, 76 요약)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사람과 상황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며, 하느님의 뜻과 계획안에서 선포해야 한다.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명확하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7절)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복음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생명과 구원의 능력이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제자들은 세상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도구가 된다.”(Adversus Haereses, III,24,1 요약) 즉,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삶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이다. 우리가 전하는 사랑과 자비, 정의와 진리의 증거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이나 부족함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겸손과 순종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상황을 잘 살피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때에 따라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신앙생활을 개인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삶, 즉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 하느님께 선택받은 제자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살아가야 한다.
김건태 신부님_열두사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열두 제자 명단에서 ‘사도’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흔히 사도로 번역하는 그리스말은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인데, 이는 ‘파견하다’를 의미하는 아포스텔로(apostellô) 동사에서 파생한 용어로서, 직역하면 ‘파견된 자’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하여 예수님에게서 ‘파견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듣고 보고 따라나선 사람들이 많았지만, 열두 사도만은 당신이 몸소 선택하여,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게 하십니다.”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이나 병자 치유 권한이나 동일한 영역에 속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병을 죄의 결과 또는 악령의 소치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더러운 영들이 활동할 수 없는 나라이기에, 예수님처럼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지닌다는 것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드러내는 표징이 됩니다.
열두 사도하면 먼저 대단한 사람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실은 대단한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대단할 뿐입니다! 소위 식자라는 사람들 또는 한자리 꿰찬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던 고기 잡던 어부들, 의심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사람,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으레 죄인으로 취급되던 세리, 로마제국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력 사용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 하다못해 예수님을 팔아넘긴 사람 등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을 기초로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다니, 그 교회에 몸담고 있는 우리로서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은, 사도로 불림을 받았을 때의 이들과 교회의 기초가 된 이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변화는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 가운데 가장 큰 기적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그랬던 사람들을 늘 곁에 두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치시며 위대한 사도들로 양성시켜 나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그 많은 가르침과 기적의 일차적 교육 대상이 제자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 사랑이 위대한 사도라는 이 기적을 일구어낸 것입니다. 열두 사도 확정 후, 예수님은 이들이 앞으로 이루어나가야 할 지고의 사명인 선교의 길로 파견하십니다. 선교 대상은 “이스라엘의 길잃은 양들”입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지 말라”는 말씀 앞에서 다소 당황할 수 있으나, 지금은 시험적인 선교의 길입니다. 훗날 다른 민족들에게 가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다른 민족들에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힘있게 선포하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비 선교의 길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만만한 길은 아닙니다. 가족이나 친척 또는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수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임은 이미 경험을 통해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시 제자들을 위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세례성사로 우리를 부르시고, 참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이끄시고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장애물 역할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제자로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끝까지 살펴주시고 이끌어주심에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 주님의 사랑과 인내에 조금이라고 화답하는 신앙인의 삶을 펼쳐나갈 것을 다짐하고 실천하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7월 7일 김건태 신부님 묵상 하느님의 일꾼들 오늘 복음에서 만나 뵙는 예수님은 쉴 틈 없이 분주히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시는 모습”입니다. 먼저 장소를 가리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아니 당신을 필요로 한다고 판단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을 기초 삼아 세우신 교회의 으뜸 사명인 선교의 핵심과 방법을 온몸으로 직접 보여주십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성부께서 이 세상을 선으로 아름답게 창조하여 인간에게 그 관리를 맡기셨음을 상기시키고,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어김으로써 관계 단절을 초래하자 성자의 십자가상 희생을 통하여 관계를 회복하셨으며, 회복된 이 관계가 훼손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어 온 세상이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을 파견하셨음을 선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야말로 기쁜 소식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 기쁜 소식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치유의 은사를 베푸십니다. 육체적이며 정신적으로 병든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 누구보다도 당신의 현존과 도움을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이 일차 대상입니다. 이들을 고쳐주심은 단순한 치유의 영역을 뛰어넘어, 예수님은 인류와 세상의 고통을 없애실 권능을 지니신 분으로서, 이분과 함께 하늘나라가 이 땅에 구현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표징으로 자리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적극적이며 열정적인 활동에 대한 반응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순수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일로 각인되지만, 누구보다도 신심이 깊고 하느님을 잘 알고 있다고 자처하던 사람들, 곧 바리사이들은 부정 정도가 아니라 ‘마귀의 짓’으로 치부하는, 그야말로 놀라운 속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로지 군중에 대한 ‘가엾은 마음’ 하나로, 가시던 길을 계속 걸어가시며 하시던 일을 계속 이어나가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뒤를 이어 구원사업을 펼쳐나갈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수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표현 속에는, 지금 당신이 하시는 일은 논밭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대고 김을 매고 잡초를 뽑고 등등 농부의 고된 작업과 같은 것이 아니라, 농부에게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인 수확과 같은 것임을 일깨우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험해 보이는 신앙 활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기쁨과 행복의 길임을 인식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우선 제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자 하시며, 이어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애써 다 이루어 놓으신 일, 우리는 가서 거두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농부에게 마냥 기쁘고 행복한 시간과 같은, 수확의 시공 속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러한 초대의 말씀으로 신앙인의 삶 자체가 참 기쁨과 행복의 길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오늘 하루, 비록 우리의 신앙생활이 인내와 희생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오로지 기쁘고 행복한 삶을 선사해주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살피며, 희망을 안고 힘차게 걸어 나가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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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07 |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
11:55 | 박양석 |
| 190506 |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
11:16 | 박영희 |
| 190505 |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테 신부님_묵상 |
10:23 | 최원석 |
| 190504 |
전삼용 신부님_남과 비교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
10:16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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