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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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신앙의 유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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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7-16 ㅣ No.190648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 글이 인터넷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묵상글을 원하는 분이 있어서 이 방법을 해도 노출이 될지 안 될지는 테스트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밴드를 개설해서 밴드를 링크했습니다. 제 개인 다음카페에도 올리겠습니다. 다음카페 이름은 “어부베드로 묵상방”으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굿뉴스에 예전에 올린 글 전부는 없지만 그래도 많이 옮겨 놓은 카페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and.us/band/103575934/post/3

 

https://m.cafe.daum.net/fisherpeter/CLS9/24?svc=cafeapp

 

 

 

 

신앙인이라는 정의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 겁니다. 가장 대표적인 의미로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앙이라는 건 단순히 어떤 종교를 선택했다고 해서 신앙인이 되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앙이라는 건 우선 그 종교를 선택을 했든 어쨌든 그 종교의 가르침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가르침을 잘 알아야 올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최근에 묵상한 내용이 있습니다. 신앙은 누군가가 예를 들어 영적인 지도자라든지 누군가가 있어서 신앙을 잘 지도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최근에 체험을 통해서 깊이 안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신앙인입니다. 가톨릭에 입문을 해서 여러 어떤 경로를 통해서 신앙에 대해 많은 이론과 지식, 성경 아니면 강론을 통해서 또는 피정을 통해 알아가는 게 보통의 일반적인 여정입니다. 

 

이때 여기서 우리는 간과하기 쉬운 게 있습니다. 저도 가톨릭에 입문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불현듯 알게 된 사실입니다. 체험을 통해서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언급하기 좀 어렵습니다. 대신 다른 예를 통해서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수로서 부사수에게 기술을 전수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약 아주 한 분야에 뛰어난 명장이라고 하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이 명장이 어떤 특정 사람에게 기술을 전수할 때 그 사람은 명장이라서 전수하는 기술이 아주 대단하고 흠 잡을 데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명장이라고 해서 명장이 가르친 그 기술 방법이 그럼 그 기술을 전수받는 사람이 그대로 했을 때 그 기술을 가장 잘 전수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그럴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며칠 동안 이 사실을 제 개인적인 체험을 통한 것이지만 신앙과는 상관이 없는 것인데도 이 사실을 신앙에 대입에 생각해보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신앙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럼 결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설사 명장이 가르친 대로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건 사실입니다. 아무리 그 기술이 좋다고 해도 그 기술을 전수받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술은 명장이 알려줬다고 해서 그 방법만 생각해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고 그 방법만 고수하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더 좋은 방법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장이라는 그 사람의 인지도를 생각해 더 좋은 방법으로 자기가 더 발전시킬 수 있고 어쩌면 명자이 전한 기술보다도 더 좋은 방법을 원천적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보려고 하는 그 여지조차도 원천봉쇄를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원론적인 방법은 명장의 지도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가 생각했을 땐 그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자기에게 더 좋은 방법을 스스로 강구할 수 있다면 찾아보거나 더 좋은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떤 경우는 명장이 가르쳐준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신앙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신앙은 유연해야 합니다. 한 가지 왕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원칙이 있다고 해도 그 원칙은 기본적인 대원칙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구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다 얼굴이 다르듯이 신앙도 그 사람에게만 맞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부정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일률적인 틀 안에 모든 신앙을 가두어두고 그 틀안에서 벗어나면 잘못된 신앙생활이라고 치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원칙을 부정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앙생활을 어떤 특징 규칙이나 규정에 매이도록 하게 되면 우리가 복음에서 말하는 율법주의를 강조하는 바리사이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신앙이라는 건 어떤 면에서 신앙이라는 걸 통해서 영혼이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신앙이라는 게 짐짝처럼 여기고 어쩔 수 없이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처럼 생각한다면 그 신앙은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그리 썩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그걸 원하시지 않는다는 걸 저는 최근에 확신을 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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